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권내현 · History
3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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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들어가며 사라진 유유 유유의 가출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딸 결혼과 상속 종친 이지 왕족인 자형 종친의 삶 이지의 편지 처가 재산에 대한 관심 유유의 귀향과 유연의 재판 돌아온 유유 유유의 진위 유연의 재판 유연은 형을 죽였나 상속, 그리고 각자의 이해 탈적, 형의 자리를 빼앗다 형망제급, 장남과 차남 총부, 큰며느리와 작은아들 사림의 세상, 이지의 재판 또 다른 유유의 출현 이지의 재판 상속의 정치적 활용 유연 집안의 상속 문제 유연과 이지를 기억하는 방식 유연의 억울함을 알리다 이지를 위한 변명 백씨는 악녀인가 족보에서 빼다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 적장자의 시대 정약용의 비판 종법과 상속 재산 감소와 상속 상속의 실상 평민과 노비의 상속 유유와 마르탱 게르 두 명의 가출자 유럽의 상속 『오만과 편견』 조선의 적장자 우대 강화 유럽과 조선 마치며 참고문헌 미주

Description

오늘날의 상속 갈등을 조선 상속제의 변화와 유럽과의 비교를 통해 반추한다 어느 노비 가계 2백 년의 기록을 분석하여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란 인상적인 책을 집필했던 권내현 교수(고려대)가 1556년 대구의 한 양반가의 가출 사건에 주목하면서 조선시대 상속의 역사를 담은 신간『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을 냈다. 소재가 된 사건은 이항복이 「유연전」이란 기록으로 남겼는데, 16세기 프랑스의 마르탱 게르 사건과 흡사하다. 균분 상속에서 장자 우대 상속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벌어진 소설보다 극적인 이 실화에는 ‘상속’을 둘러싼 당대인의 욕망과 갈등, 관습과 제도가 응축되어 있었다. 장남 노룻을 해야 할 ‘유유’의 가출과 귀향, 실종은 남은 가족들의 일상에 큰 파문을 던졌다. 8년 만에 돌아온 유유의 진위는 명확하지 않았으며, 상속과 가계 계승을 둘러싸고 그의 부인인 백씨와 동생 유연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여기에 처가의 재산 상속에 관심이 있었던 왕족인 유유의 자형이 끼어들었다. 쉽게 해결될 것 같았던 사건은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데다 훈척 대신이 재판을 편파적으로 이끌면서 뒤틀어진다. 상속 갈등과 결과가 뒤바뀐 재판을 통해 16세기의 일상과 욕망, 관행과 제도, 사법과 정치 현실까지 폭넓게 다루는 이 책은, 이 사건에 그치지 않고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시기를 확장하여 균분 상속에서 장자 우대 상속으로의 전환 과정과 그 실상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본다. 또한 조선시대 상속제도의 변화를 비교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일찍 장자 상속제를 선택한 유럽과 조선을 비교하고 그것이 근대 사회로의 전환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탐색한다. 저자는 유럽이 장남에게 극단적으로 몰아준 장자 상속제로 인해 부가 집중되었고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는 견해는 유럽 중심주의라 일축한다. 균분이란 오랜 상속 관행을 깨고 조선 사회가 장자 우대 상속으로 재편되었던 현실적 배경을 짚어내면서, 장남에게 가계 계승의 명분을 주면서도 나머지 아들들이 상속에서 배제되지 않고 장남 주변에 머물러 살았던 전략적 선택이 한국 사회의 근대 이행의 특징이라 강조한다. 이 책은 16세기 어느 양반의 가출에서 비롯된 비극적 종말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조선의 상속 전반에 관한 흥미로운 여행을 할 수 있게 쓴 독특한 수작이다. 2021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이다. 소설보다 더 극적인 실화 책의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이 사건은 같은 시기 유명한 프랑스의 마르탱 게르 사건과 비슷하다. 유유의 가출과 귀향, 이를 둘러싼 재판이라는 큰 흐름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사건이지만 결말은 완전히 달라지는데 여기에 상속 재산의 향방이 결정적이었다. 사건으로 들어가 보자. 유유가 가출한 후 아버지 유예원이 사망하였다. 동생 유연이 형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하며 살던 중 1562년 자형 이지에 의해 해주에 사는 채응규가 유유라는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듬해 유유는 가출한 지 7년 만에 춘수라는 첩, 정백이라는 아들과 함께 돌아왔다. 문제는 유유의 진위였다. 얼굴과 몸매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지는 틀림없다고 했고, 유연은 의심했다. 친척과 주위 사람 다수가 가짜라 했지만 진짜라 확신하는 의견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채응규는 백씨 부인과의 첫날밤 비밀스런 부위까지 증언하며 진짜라 항변했고, 진위를 가릴 수 주인공 백씨 부인은 침묵하는 대신 정백을 자신의 아들로 거둬들였다. 그런데 진위를 가리는 대구부의 재판이 갑자기 살인사건으로 전환되었다. 보석으로 재판을 받던 채응규가 실종되었고 첩 춘수는 탈적, 즉 형의 자리를 뺏기 위한 친형 살해로 유연을 고발했다. 백씨 부인 또한 유연을 원망했다. 결국 유연은 살인사건 그것도 강상죄를 적용받아 의금부로 이송되었고 고문과 자백 속에 능지처참란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 유연이 탈적을 노리고 형을 죽였을까? 백씨 부인은 왜 시동생 유연을 살인자로 내몰았을까? 자형 이지는 무슨 이유로 채응규를 유유라 확정했으며 또한 유연 재판에 영향을 행사했을까? 해소되지 않은 의구심을 남긴 채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형망제급과 총부권, 16세기 상속의 관습과 제도가 충돌하다 권내현 교수는 종법이 일상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17세기, 늦어도 18세기 이후라면 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 했다. 이 집안의 장남 유치가 아들 없이 죽었지만 아마도 양자를 들여 가계를 이어나갔을 것이고 이때 유유, 유연 혹은 유유의 부인 백씨는 가계 계승과는 관련 없는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즉 가계 계승자에게 더 주어지는 상속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위 이지 또한 상속에서 딸의 몫이 줄어들다 점차 사라지므로 처가 재산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16세기 조선 사회의 일반 양반가에서 종법이 아직 정착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당시 관습은 장남이 자식 없이 죽었을 때 그의 부인이 총부로서 제사를 관리하고 가계 계승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총부권). 반면 법전의 규정은 그 권리를 장남의 남동생에게 부여했다(형망제급). 관습과 제도의 모순이 충돌한 데다 이 시기에 가계 계승자에게 돌아가는 상속 몫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유연이 형을 죽인 이유로 사람들이 생각한 탈적(奪嫡)이란 ‘적통을 빼앗다’, 구체적으로는 집안을 이어 나갈 적장자의 지위를 빼앗아 차지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당시의 탈적과 재산 분쟁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런데 여기서 백씨 부인의 처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백씨가 채응규의 진위를 적극적으로 가리지 않았고 그의 아들(정백)까지 데려다 키운 것은 상속과 가계 계승에서 불안한 위치에 있었던 자신의 처지를 고려한 행위였다. 더 나아가 그녀는 불확실했지만 하나의 안전판이었던 남편(채응규)이 사라지자 시동생 유연을 살인자로 고발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자형 이지는 처가의 재산 상속에 관심이 많았다. 균분 상속의 관행에 따라 죽은 부인의 몫이 처가로부터 올 것이지만 그는 그 이상을 탐냈다. 결국 이지의 욕망과 유연의 죽음은 균분 상속의 틀이 유지되는 가운데 가계 계승자의 몫이 늘어나고 있었던, 하지만 아직 종법은 뿌리내리지 않았던 시대의 소산물이었던 것이다. 이항복의「유연전」은 소설이 아닌 사실의 기록 그런데 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유연이 처형된 지 16년이 흐른 1579년 진짜 유유가 나타난 것이다. 이내 유연이 억울하게 능지처참되었음이 입증되었고,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기 위해 사건의 단초를 만든 가짜 유유, 즉 채응규를 찾아 잡아들이는 일이 우선이었다. 다음으로 채응규가 왜 가짜 유유 행세를 했는지, 그 배후에는 다른 인물은 없는지로 초점이 이동했다. 채응규는 압송 도중 자결했다. 이지는 채응규를 사주한 혐의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지만 춘수가 이지를 지목하는 자백을 했고, 이지는 결국 신문 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유유의 가출에서 시작하여 이지, 채응규, 춘수의 공모를 거쳐 부실한 수사와 재판으로 만들어진 유연 사건은 억울한 죽음과 한 집안의 붕괴라는 파국으로 끝이 났다. 한편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평안도에서 서당 훈장을 하면서 천유용으로 살았던 진짜 유유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버지의 상장례에 참여하지 않아 인륜을 저버린 죄로 100대의 장형과 3년의 도형을 모두 채운 뒤 고향 대구로 귀향했고 2년 만에 죽었다. 이 사건은 어디에 어떻게 기록되어 전해왔을까? 이항복의 「유연전」, 권득기의 「이생송원록」, 사건의 신문 기록인 공초, 실록의 처리 기사, 그리고 많은 관료와 지식인이 관련 기록을 남겼다. 특히 이항복의 「유연전」은 풍부한 문장력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그려져 오늘날 국문학계는 소설로 간주한다. 저자는 「유연전」에 등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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