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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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콘텐츠라면 마구잡이로 먹어온 덕후의 지독한 여자 사랑…… 한 레즈비언의 희로애락이 만들어낸 퀴어 영화/드라마 가이드북! 언니들을 좋아했던 여자, 여자들의 관심을 원하고 그들에게 사랑받길 원했던 여자, 내 욕망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걸 눈치채야 했던 여자, ‘왜지? 왜 다른 애들은 나만큼 여잘 좋아하지 않는 거야?’ 의문을 품다가 어느새 ‘좀 이상한 애’가 되어버린 여자. 그런 여자가 어렸을 때부터 빠져든 건 영화와 드라마 등 온갖 영상 콘텐츠였다. 거기엔 현실에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더 크고 넓은 세상이 있었고,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여자들이 가득했다. 거기엔 ‘내 이야기’가 있었다. 넷플릭스도 웨이브도 없던 시절부터 저자는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며 온갖 퀴어 드라마와 퀴어 영화들을 찾아냈다. 반드시 주인공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대놓고 퀴어가 아니어도, 퀴어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요소만 있어도 게걸스럽게 찾아내서 들여다봤다. 자막이 없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도 그저 그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걸 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런 이야기 속 여자들 덕분에 저자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고, 남들과 달라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었다. 화면 속 여자들은 그 자신이었고, 선생님이었고, 미래였다. 성정체성을 깨닫기 전 성장기에 겪은 혼란에서부터 정체화 과정 및 그 이후에 밀려드는 여러 문제들과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의 파고를 영상 속 여자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으로, 연대로, 투쟁으로, 깨부수기로, 문란해짐으로, 자기만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공감과 용기, 감동, 위로,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저자의 삶에 존재한 희로애락과 함께 그가 끈질기게 열성적으로 먹어치운 퀴어 콘텐츠들이 만나 한 권의 퀴어 영화/드라마 가이드북이 탄생했다. 이 책은 지독한 여자 사랑 이야기다. 두근거리는 세계를 보여준 여자들 지독한 여자 사랑 이야기답게 이 책에는 가지각색의 여자들이 소환된다. 날아다니는 여자, 사랑에 당당한 여자, 마녀인 여자, 세상에 맞서는 여자, 벽장을 박차고 나가는 여자, 결혼하는 여자, 싸우는 여자, 사랑 없이도 사는 여자, 운동하는 여자, 머리 짧은 여자, 나이 든 여자, 아픈 여자, 교회 다니는 여자, 가부장의 공간을 부수는 여자, 문란한 여자, 엔딩까지 살아남는 여자까지. 저자는 각종 영화와 드라마에서 만난 여자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많은 성소수자가 삶에서 마주하는 여러 문제들과 엮어내며 열렬한 애정을 쏟아낸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학창 시절 좋아했던 여자 선배들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드라마 〈알고 있지만〉의 솔과 지완의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친구’라는 이름을 여자를 좋아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보호막으로 사용했던 저자의 경험은 드라마 속 ‘찐친’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솔과 지완의 모습과 맞물린다. “자신의 진짜 감정에서 도망치지 않고 숨지도 않는 솔과 지완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거웠다. 이런 이야기를 좀 더 일찍 봤더라면 어땠을까? 동성인 친구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 때때론 솔과 지완처럼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일도 생긴다는 걸 알았다면. 그럼 나도 다른 상상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35쪽) 저자는 이처럼 화면 속 여자들에게서 현실과는 다른, 자신이 꿈꾸는 전개를 깨닫는다. 그렇게 영화 〈세이빙 페이스〉 속 비비안에게서 ‘넘어져도 괜찮아. 내가 다치지 않고 넘어지는 걸 알려줄게’라는 말을 읽어내며 용기를 얻고, 〈이매진 미앤유〉 속 레이철에게서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당당히 쟁취하겠다는 다짐을 배운다. 이런 여자들이 저자를 두근거리게 했다면,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여자들도 있었다. 미처 상상도 시도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뤄내는 영화/드라마 속 여자들을 보며 저자는 늘 처음인 것처럼 사랑에 빠져버린다. 영화 〈하지만 나는 치어리더예요〉의 메건에게서는 자신을 부정하는 세상에 유쾌하게 맞서는 법을 배우고, 또 다른 영화 〈로렐〉에서는 세상과 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러한 배움들은 실제 시위 현장에 발을 내딛게 되는 등 현실 속 행동들로 저자를 이끈다. 미워했던 여자들을 다시 사랑하기 지독한 여자 사랑 이야기라고 했지만, 저자는 그런 자신조차 한때 사랑하지 못한 여자들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운동하는 여자, 머리 짧은 여자, 뚱뚱한 여자, 라이벌인 여자, 아픈 여자 등이 그들이다. 이 여자들을 미워하고 무시하며 그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선을 그었다고 고백하는 저자는 영상 속 여자들을 통해 비로소 이성애중심주의와 여성혐오, ‘정상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고 결국에 이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남자 야구선수들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터에 불려나가 야구장이 비게 되자 그 ‘대체재’로 만들어진 여자 야구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그들만의 리그〉는 평생 재능도 관심도 없다고 생각했던 운동과 운동하는 여자들을 차별 사회에 맞서는 동료로 인식하게 하고, 태국의 퀴어 영화 〈예스 오어 노〉 속 머리 짧은 여자 킴은 이분법적인 성별규범과 역할에 대한 편견을 돌아보게 했다.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 특히 퀴어 여성으로 나이 든다는 게 무엇인지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던 저자의 생각은 60대에 다시 마라톤 수영에 나선 다이애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를 보며 그 물꼬를 튼다. 이렇듯 저자의 여자 사랑 이야기는 비단 성애적 이야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물론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자신의 가슴을 뛰게 했던 여자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 고백도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온갖 여자들은 그들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열어주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엔딩까지 살아남아 세상을 더 퀴어하게 재밌어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다보니 결국은 무언가 바꾸고 싶어진 사람. 그래서 끝까지 살아남고 싶어진 사람. 무섭고 잔인한 비밀을 더는 혼자 간직하고 싶지 않아진 사람. 그래서 기꺼이 마녀가 되기로 결심한 사람. 이 책은 그런 한 사람이 자신을 살려낸 영상 속 무수한 여자들과 그 창작자들을 향해 보내는 기나긴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신인은 그들이 아닌 당신이다. 나의 이야기가 마치 세상에 없는 것처럼, 도통 보이지 않아서 필사적으로 찾아다녀야 했던 사람들. 자기만의 지독한 여자 사랑을 품은 채로 오늘도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퀴어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로 한가득 채워진 이 책을 읽은 우리가 도착할 곳은 퀴어한 세계다. 이 책은 그런 당신이 들려줄 또 다른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