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의 시집
『몸 번역하기』
깨진 언어와 몸으로 열어젖힌 사이공간
상처로 벌어진 틈에서 울리는 쟁쟁한 목소리
캐시 박 홍의 시작은 시였다
불안, 짜증, 수치심, 우울감 등 아시아인으로 백인 사회에서 느끼는 차별의 감정을 낱낱이 쓴 캐시 박 홍의 에세이 『마이너 필링스』는 출간 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고, 미국과 한국의 유력지가 ‘올해의 책’으로 꼽는 등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캐시 박 홍은 자신의 취약한 부분에서부터 시작하는 통렬하고 날카로운 글쓰기를 하는 에세이스트로 이름을 알리며, 『타임스』 선정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시였다. 미국에서 2002년에 출간한 『몸 번역하기』(Translating Mo’um)는 실험적인 텍스트로 진지한 관심을 받았고, 소규모 독립 출판사에서 출간한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상 푸시카트상을 받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알렸다. 그 후 선보인 두 번째 시집 『댄스 댄스 레볼루션』(Dance Dance Revolution, 2008)이 에이드리언 리치의 심사로 바너드 여성 시인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해석이 불가능한 차가운 날을 위해 나는 말을 아낀다”
깨진 언어는 번역될 수 있을까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언어와 몸의 경계, 분열, 충돌을 깊이 파고든 캐시 박 홍의 첫 시집 『몸 번역하기』가 마티의 앳 시리즈 4권으로 출간된다. 『마이너 필링스』의 「서투른 영어」 장에서 그가 고백했듯, “서투른 영어를 들으며 자란 까닭에 내 영어도 서툴렀다. 나는 LA에서 태어났지만, 창피하게도 여섯 살이 다 지나도록, 심지어 일곱 살 때까지도 영어가 유창하지 않았다. … 한인 타운의 교회, 친구, 식구 들의 영어는 짧고, 거칠고, 깨진 영어였다”.(『마이너 필링스』, 130쪽) 깨진 언어, 그것은 시인의 오랜 화두였다.
백인-영어 중심의 사회에서 한국어는 온전히 번역되지 못하며, “쇳소리, 쉰소리, 미개함, 제3세계의 냄새”로 여겨진다고 「동물원」의 화자는 말한다.
가 수상한 자음,
나 장난꾸러기 모음.
다 이민자의 혀
쇳소리 혹은 거친 소리로.
(…)
퇴행된 꼬리 붙은 단어들. 역사의 흉곽은 커다랗게
갈라지고. 호텐토트족 혀 차는 소리는 미개하다 여겨지네.
위생에 집착하시는 어머니 아버지:
오래된 제3세계 냄새를 지우려 하시는 듯.
― 「동물원」 부분
정은귀 영문학자는 “이 시집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곤경의 흔적들이다. 영어만 구사하는 네이티브들은 모르는 곤경, 상처의 흔적이다. 『몸 번역하기』는 시로 기록하는 상처의 흔적이다”(195쪽)라고 말한다.
“우리가 몸과 먼저 연관 짓는 것은 늘 고통이다”
깨진 몸들을 부르다
집에서 한국어를 썼을 뿐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캐시 박 홍은 열병을 앓던 어느 날, 엄마가 몸이 아프냐고 묻는 말에서 ‘아프다’의 뜻을 정확히 알게 된다. 오한과 열기, 두 극에 낀 말을. 그러나 어렵게 배운 말을 내뱉기에 “둔하고 뚱뚱한 혀, 근육을 감싸는 뼈”는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엄마는 항상 내게 물으셨다: 모미 아-파?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몸을 정의한 건 바로 열병이었다,
오한, 뜨거운 기운-
(…)
내가 대답했다: 모미 아파 어마.
열병이 나면 얼굴이 발개진다
뻐근한 열, 불그스레 시야를 가리고
둔하고 뚱뚱한 혀, 근육을 감싸는 뼈가 욱신거린다.
나는 그저 자고 싶었다, 이 몸을 떠나고 싶었다,
― 「몸 번역하기」 부분
정은귀 영문학자의 말대로, 캐시 박 홍의 “다른 문화, 다른 역사를 가로질러 뿌리가 뽑히고 온전히 이식되지 않는 세계에서 한 주체가 대면하는 경험들, 어느 하나로 대표할 수 없는, 재현의 일반 원칙이 통하지 않는 그런 경험을 새기는 언어, 그래서 시는 몸을 번역하는 일이고, 시는 단일한 서정 주체의 단정한 음성이 아니라 복화술사가 여러 겹으로 내지르는 목소리이자 고함이다. 어떤 공간에서도 온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디아스포라 주체의 기록, 그것이 『몸 번역하기』다”(197쪽).
한국어와 영어 사이에서, 아시아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유색인과 백인 사이에서, 인종화된 신체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깨져 있다.
나는 이상한 짬뽕이 된 것 같았다: 팔꿈치에서 코,
정강이에서 눈, 목에서 가슴, 머리부터 발끝까지
(…)
괴물들의 파편들: 호텐토트의 엉덩이,
샴쌍둥이의 가발, 우유부단한 중국놈.
― 「통과의례」 부분
시인은 18-19세기 백인 사회에서 전시되고 구경당했던 유색인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 “괴물”로 언급된 ‘호텐토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코이코이족을 비하하는 명칭으로, 백인 침략자에 의해 매매된 코이코이족 여성 세라 바트먼은 나체로 전시되었고, 시암(Siam, 태국의 옛 명칭)에서 미국으로 간 결합 쌍둥이 칭과 잉 벙커(이들의 등장과 함께 ‘샴쌍둥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역시 ‘프릭 쇼’에 올려졌다. 이들은 『몸 번역하기』에서 「창과 잉의 존재론, 오리지널 샴쌍둥이」, 「토노 마리아의 수치스러운 쇼」, 「호텐토트 비너스」를 통해 어엿한 화자로 자리매김한다.
“그 후 당신은 그를 번역해 달라 하지만 나는 비밀이라고 말한다”
부서진 것들의 사이에서 미끄러지다가도 타고 노는 쾌활함
로마자로 표기한 한국어가 자주 등장하는 이 시집의 독특한 점은, 그 뜻을 따로 설명하는 각주가 없다는 점이다. “모든 적절한 빈칸을 ‘바가지’로 채워주세요”라는 서툰 말로 시작하는 「바가지 번역하기」는 영어 발음과 문법, 적절한 단어의 사용을 언제나 시험당했을 시인이, 이 시집의 잠재적 독자인 영어 사용자들에게 시험을 낸다.
대학 다닐 때, 그녀의 수줍음은 ________로 오해받았다,
그런 부분을 고치려고, 그녀는 피어싱을 했다.
(…)
________는 당신네 동네의 한인 마트에서
색색깔로 살 수 있는 플라스틱 통이다.
― 「“바가지” 번역하기」에서
엉뚱한 의미가 적힌 한국어를 내밀고(“(밉다) 꿀렁거리는 위 / (예쁘다) 부은 다리”, 「중성형 대명사」), 한국말을 들으면 흥분한다는 남자에게 “기역 니은 티귿 리을”을 외주며 뜻을 비밀에 부친다. 서구에서 그리스 신화나 성경을 문학의 중요한 참조점으로 여기고 어디에도 그와 관련해 각주를 달지 않듯, 캐시 박 홍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이 참조한 문화와 언어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서툰 영어 위에서 미끄러지던 그가 어느새 한국어와 영어 사이를, 아시아인과 미국인 사이를, 유색인과 백인 사이를 타고 놀게 된다. “땀이 당신 헐떡거리는 그 하얀 몸을 더럽히도록, // 내 혀가 핥고 있어, 명령하며 핥고 있어, 쉬쉬쉿.”(「그 모든 최음제」)이라고 말하면서. 상처는 틈을 벌리고, 그 틈, 그 사이공간에서 디아스포라의 몸과 언어가 피어난다.
Mo’um의 표준 로마자 표기는 Mom
시집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면 후주가 있다. 단정하고 무심하게 쓰인 주석에서 시인은 ‘몸’(body)의 표준 로마자 표기가 Mom임을 밝힌다. 순간, 이 시집의 제목이 “엄마(mom) 번역하기”로 뒤바뀌고, 디아스포라의 몸-모국-모어가 연결되면서 시들의 의미가 확장된다.
“‘몸’이 ‘맘’(엄마)이 되고, ‘맘’이 다시 ‘마음’이 되는 신비를 읊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