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새로운* 그래픽 디자인 교육 과정』은 2010년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 개설된 디자인 교육 과정을 압축해 엮은 책이다. 디자인이 단순히 전문가를 위한 직업 교육의 한계를 넘어 모든 이를 위한 교과목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몸소 실천해 보이는 이 책은 일반 독자에게 현대 디자인의 원리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기 주도적 교과서다. 자유과로서 디자인 2018년 7월 13일 금요일 오전, 로스앤젤레스 실버레이크의 한 유서 깊은 건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작가, 교육자인 데이비드 라인퍼트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데이비드는 지난 8년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배경, 관심사, 전공, 진로가 다양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가르쳤던 그래픽 디자인 교과목 세 개를 압축해 하루에 한 과목씩 강연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처음부터 출판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이 강연은 끝나자마자 녹취되었고, 강의실 분위기를 한껏 살린 실험적인 wk형식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문법, 논리, 수사학 등 서양 대학의 전통에서 근간을 이루는 자유과(liberal arts)와 마찬가지로 그래픽 디자인 역시 메시지와 수단을 이해하는 기본 능력으로서 모든 일반 교육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이 되는 그래픽 디자인을 타이포그래피, 게슈탈트, 인터페이스 세 과정으로 나누어 서술한다. 타이포그래피 타이포그래피는 문자 언어가 전달되는 수단을 아우르는 말로, 지난 500여 년간 금속활자, 사진 식자 등 기술 발달과 함께 진화해 왔다. 특히 20세기 후반 디지털 조판 시대를 맞은 타이포그래피는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있지만, 적용되는 기술과 상관없이 도처에 존재하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저자는 타이포그래피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 화가이자 북부 르네상스의 주역 알브레히트 뒤러로부터, 베일에 싸인 인쇄 기술을 대중에 공개한 조지프 목슨, 인쇄 기술과 유통망을 교묘히 이용해 큰 성공을 거둔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 현재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타이포그래피 관점을 설파한 비어트리스 워드 등을 차례로 관통한다. 뒤이어 1978년 7월 2일, 금속활자로 인쇄한 마지막 신문을 발행한 『뉴욕 타임스』 본사 현장을 돌며 사진 식자 시대의 도래를 지켜본 저자는 새로운 형태 생산의 개척자 라슬로 모호이너지, 고급 예술의 경계를 허문 브루노 무나리, MIT에서 학제를 넘나들며 대량생산 메커니즘을 출판 실험한 뮤리얼 쿠퍼, 학술지의 조악한 타이포그래피를 개탄하며 논문 게재를 거부하고 손수 디지털 글자체 기술을 개발한 컴퓨터 과학자 도널드 커누스, 커누스가 개발한 메타폰트를 현재 기술로 복구하고 갱신한 덱스터 시니스터의 작업을 통해 타이포그래피의 역사, 원리, 전용을 살펴본다. 게슈탈트 ‘형태를 부여하다’ 혹은 ‘전체를 만들다’라는 뜻을 지닌 독일어 게슈탈트(Gestalt)는 체코 심리학자 막스 베르트하이머 등에 의해 20세기 전반 많은 논쟁과 실험을 거쳐 그래픽 디자인 교육 체계에 수용되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착시 현상이 바로 게슈탈트 심리학의 한 분과에서 다루는 주제다. 1910년 휴가 중에 우연히 목격한 착시 현상에 호기심을 느끼고 게슈탈트 실험에 착수한 베르트하이머, 헌신적인 모더니스트로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격언을 따라 숟가락, 의자, 시계 등 대량생산품에서 ‘진정한 게슈탈트’를 추구했던 막스 빌, 게슈탈트 심리학을 다룬 여러 저서를 통해 ‘시각적 사고’를 주창한 루돌프 아른하임, ‘시각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읽기를 바란 죄르지 케페스, 관대하고 세심한 언어로 ‘시각 인식력’을 소개한 도니스 A. 돈디스, 1960년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M. 닉슨 간에 벌어진 미국 대통령 후보 토론회 방송을 주도한 조지 코린, IBM, ABC, 웨스팅하우스 등 수많은 기업 로고를 디자인한 폴 랜드, 1960년대 미국을 휩쓴 반문화의 상징이자 제품 카탈로그 『홀 어스 카탈로그』의 발행인 스튜어트 브랜드 등이 이번 장의 주인공이다. 인터페이스 ‘사이에 놓인’ 모든 것을 가리키는 인터페이스는 흔히 떠올리는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범주를 넘어 우리가 세상과 상호작용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고대 이집트의 로제타석부터 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에 처음 세워진 공공 시계탑, 아이폰의 메시지 전달 방식까지 모두 자신의 인터페이스를 가진다. 친숙한 인터페이스는 우리의 시선을 끌지 않지만 새로운 개념의, 아직 오지 않은 인터페이스를 개발할 때면 수면 위로 그 모습이 떠오른다. 260일의 신성 주기와 365일의 태양 주기를 조합해 날짜를 표시한 고대 멕시코 달력, 쿼츠 크리스털을 장착한 최초의 디지털 손목 시계,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했던 올리베티 타자기, 컴퓨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튼튼한 계산기처럼 보여야 했던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프로그람마 101’, 뉴욕 지하철을 위한 (저자가 직접 인터페이스 개발에 참여한) 최초의 마그네틱 카드 발매기,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 없이 백지에서 시작해 16x16 픽셀 안에 모든 것을 집어넣어야 했던 애플 운영체제의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수전 케어 등이 좋은 사례다. 특히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개발이 중단되며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또 다른 사변적 미래로 남은 ‘인포메이션 랜드스케이프’를 비롯해 뮤리얼 큐퍼가 주도했던 새로운 컴퓨터 인터페이스 실험들은 현재 우리가 보는 컴퓨터 인터페이스가 당연한 것이 아닌,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과제 장 중간중간에는 독자가 스스로 수행할 수 있는 과제가 주어진다. 주요 타이포그래피 에세이를 읽고 복사기와 디지털 소프트웨어 등을 이용해 자신이 숙고한 바를 조판으로 구현해 보는 타이포그래피 과제, 문자나 기존 그래픽 언어에 의지하지 않고 ‘정지’(stop), ‘전진’(go), ‘대기’(wait) 같은 단어를 뜻하는 그래픽을 개발해 보는 게슈탈트 과제, RGB와 CMYK 색상 모델의 차이를 이해해 보는 연구 과제, 자신만의 애플 워치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해 보는 도전적인 과제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한국어판 독자를 위해 역자가 마련한 웹사이트에서 교육 지침 및 참고 자료를 내려받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역자가 말한 대로 “실용성과 실험성의 조화로운 결합”이 백미인 이 책은 “복잡하고 네트워크화된 오늘날의 정보와 디자인 세계를 이해하고 형성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한국어판 교육 지침 및 참고 자료 http://a-new-program-for-graphic-desig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