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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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에서 극악한 범죄 행위로 심판받는 행위가 전장에 나선 순간 합법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격려할 때, 젊은이들은 정말 아무런 심리적 갈등 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될까? 그리고 사회로 돌아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까? 데이브 그로스먼의 논의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왜 살인을 연구하는가? 심리학자이자 예비역 중령인 데이브 그로스먼의 말에 따르면, 왜 살인을 연구하느냐고 묻는 것은 ‘왜 성을 연구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살인은 혐오감과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불편한 주제다. 하지만 한 세기 전에는 성도 그랬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탁자의 다리까지 천으로 덮어 가릴 정도로 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조차 터부시했다. 하지만 프로이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저자는 이제 살해에 드리워진 장막 또한 걷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성이 그러했듯이, 불편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해서 죽음과 살해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거부하고 이를 은폐하고 부인하려고만 할 때, 사회는 뒤틀리고 왜곡된 방식으로 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사 이래로 사람들은 죽음과 살해의 장면을 늘 가까이에서 목격해 왔다. 일용한 양식을 만들기 위해 가정주부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했다. 아이들에게 그 일을 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도축장과 냉장고의 등장으로 우리는 음식으로 쓰기 위해 동물을 직접 죽일 필요가 없게 되었고, 양로원과 병원, 장례식장 등은 우리의 시야에서 죽음과 살해의 현장을 치워 버렸다. 하지만 사회가 살해를 위생적으로 방부 처리하는 사이, 이와 반대로 살해를 묘사하고 체험하려는 사람들의 욕구는 강박적으로 커지고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연쇄살인마는 영화의 단골 주제가 되었다. 얼마나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잔인하게 묘사할 수 있는지가 흥행의 관건으로 보일 지경으로 말이다. 살인에 대한 억압과 강박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데이브 그로스먼의《살인의 심리학》은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병리학적 징후를 보이며 터부시되어 있는 살해라는 주제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가 탐구하는 살해의 영역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살인 행위도, 범죄 심리학도 아니다. 그로스먼은 건강한 정신을 가진 평범한 보통 사람, 즉 군인의 살인 행위를 다룬다. 국방의 의무를 짊어지고 전장에 나가 싸우는 이 젊은이들은 바로 당신의 아들이자 친구이고 동료 시민이다. 전장에서 적을 죽이는 행위는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행위일 뿐 아니라 칭송의 대상이 되는 행위다. 싸워 이긴 자는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전쟁은 불가피한 일이고, 그 와중에 저질러지는 살인은 합법적이고 나아가 바람직하기까지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일까? 국가와 사회에서 극악한 범죄 행위로 심판받는 행위가 전장에 나선 순간 합법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격려할 때, 젊은이들은 정말 아무런 심리적 갈등 없이 살인을 저지르게 될까? 그리고 사회로 돌아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로스먼의 논의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살인,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 우리는 할리우드가 묘사하는 전투 장면에 익숙해져 있다. 첨단 기술로 재현해 내는 전투 장면은 놀라울 정도로 박진감 넘치고 생생해서 마치 실제 전투 현장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그로스먼은 할리우드가 묘사하고 있는 전투 장면 대부분은 거짓말이라고 단언한다. 그로스먼은 이 분야 선각자들의 연구 성과들을 검토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다. 그로스먼은 무엇보다 마셜 준장의 탁월한 책 《사격을 거부한 병사들》이 제시하는 통계에 주목한다. 이 책에서 마셜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 보병의 사격 비율은 15-20퍼센트에 지나지 않다고 밝혔고, 이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군 당국을 당혹스럽게 했다. 자신과 동료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병사들은 왜 사격을 거부했을까? 우리는 영화 속에서 제임스 본드, 람보, 인디애나 존스 등 할리우드의 영웅들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가 살해의 본질에 대해 알려주는 바는 아무것도 없다. 실상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로스먼의 논의는 인간의 내면에는 동료 인간을 죽이는 것에 대한 깊은 거부감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장은 “하나마나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그로스먼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당연히 살인은 어려운 일이고 자신은 사람을 죽이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로스먼은 적절한 환경에서 적절한 훈련을 받게 되면 누구라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반대로 자신을 죽이려고 덤비는 자와 맞닥뜨리게 되면 그 누구라도 살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로스먼은 역사적으로 전장에 나갔던 병사들 대다수가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적을 죽일 생각을 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많은 증거들을 제시한다. 살해에 대한 거부감은 병사가 이를 극복하기도 전에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 강력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80만 이상의 군인에게 정신적인 이유로 군복무에 부적합한 것으로 분류되는 F-4 등급을 내리고 이들을 전투에 투입하지 않는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50개 사단에 맞먹는 50만 이상의 병사가 정신질환을 이유로 후송되는 사태를 맞이해야 했다. 왜 전쟁 중에 이토록 많은 정신적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는 걸까? 많은 연구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해 왔다. 그들은 여러 이유들을 제시하며 정신적 손상의 주된 원인은 자신이 죽거나 다칠지 모른다는 병사들의 두려움에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스먼은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며, 살해를 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실제 살해에 뒤따르는 죄책감이 병사들이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로스먼은 또한 현대의 수병과 폭격기 조종사, 정찰병, 의무병, 그리고 대규모 공습을 받은 민간인들에게서는 정신적 사상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이유를 병을 통한 이득 이론으로 설명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논거를 반박한다. 이들에게서 정신적 사상자가 드문 이유는 그들이 사람을 근거리에서 죽여야 하는 정신적 부담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로스먼은 실제 살해 행위 시 일어나는 심리적 과정을 상세히 분석한다. 먼저 물리적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 살인 행위의 심리적 부담의 강도를 소상히 다룬 다음, 권위자의 명령, 집단 면죄, 정서적 거리(문화적 거리, 도덕적 거리, 사회적 거리, 기계적 거리), 피해자의 특성, 살해자의 공격적 성향 등 군인으로 하여금 살해를 가능하게 해주는 여러 요인들을 총체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 이론을 원용해 군인이 살해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염려, 살해, 도취, 자책, 합리화와 수용 등 5단계로 나누어 보여 준다. 이러한 논의에는 수많은 실제 사례들이 제시된다. 인간은 파블로프의 개나 스키너의 쥐가 아니다! 마셜의 연구 결과에 충격을 받은 군 당국은 즉각 병사들의 사격 비율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돌입했고, 연구 결과를 전투 훈련에 응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 전쟁에서 병사들의 사격 비율은 50-55퍼센트로, 베트남 전쟁에서는 90-95퍼센트로 급상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전은 심리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심리전은 적군을 향한 것이 아니라 아군 부대를 향한 것이었다. 군대는 병사들로 하여금 적군의 인격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사격 훈련도 엎드린 자세에서 원형 표적지에 대고 쏘는 대신 갑자기 불특정 지점에서 튀어 오르는 사람 형상의 표적을 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