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당신은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다. 당신의 배우자는 커피 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고 먼저 집을 나섰다. 당신이 주전자를 확인했을 때 커피는 이미 다 말라버렸고, 주전자에는 금이 가 있다. 매일 아침 꼭 커피를 마셔야 하는 당신은 드립식 커피 메이커를 찾아낸다. 당신은 시계를 보며 물이 끓기를 기다리다가 급히 커피를 들이켠 후 집을 나선다. 그러나 주차장에 가서야 열쇠를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신은 평소 보조 열쇠를 문 옆에 숨겨두지만 오전에 집에 들러 책을 가져갈 친구에게 줘버렸다. 마음이 급해진 당신은 그냥 세워놓는 일이 많은 이웃 할아버지의 차를 빌리기로 한다. 그런데 하필 지난주에 제너레이터가 고장 나서 수리를 맡겨놓은 상태다. 이제 남은 수단은 대중교통뿐이다. 이웃 할아버지는 파업 때문에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전화로 택시를 불러보지만 ……
아무리 효율적인 안전장치를 동원해도 피할 수 없는
‘정상 사고’의 위험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지침서!
결국 당신은 어렵게 사정을 설명하고 면접 날짜를 뒤로 미룬다. 물론 당신은 그날 아침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면접에 합격할 확률은 대단히 낮다. 도대체, 이 ‘사고’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매우 세분화되고 시스템화 되어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사회에서 어느 한 부분이 어긋나면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다. 이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기술 역시 고도로 발달하면서 ‘실수’나 ‘사고’에 대비하는 안전장치 또한 눈부시게 진화했다. 조립라인의 수많은 공정 중에서 한두 가지가 잘못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이미 그만한 사고에 대비하는 안전장치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소한 사고가 ‘믿기 힘들 정도로’ 겹쳤을 때다.
위의 예화에서 생긴 문제들은 지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일상에서 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커피 주전자 대신 찾아낸 커피 메이커나 문 옆에 숨겨둔 보조 열쇠처럼 나름대로의 안전장치까지 갖춰두었다. 그러나 아무리 소소한 문제라도 이것들이 겹쳐서 발생할 때는 연쇄반응을 일으켜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중요한 면접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충분히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무엇도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찰스 페로가 말하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의 세계다.
우리는 아무리 효율적인 안전장치를 동원해도 피할 수 없는 ‘정상 사고’(대개 ‘대형 사고’인 경우가 많다)의 위험을 안고 산다. 이 책은 정상 사고란 도대체 무엇이며, 무엇이 정상 사고를 초래하는지, 나아가 정상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진단한다. 1984년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대형 사고 연구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각종 사고 연구의 필독서로 인정받고 있다. 아울러 끔찍한 사고로부터 사람들이 입을 실질적,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지침을 확인할 수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산업 기술이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사고의 세계……
시스템의 속성에 따라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고를 ‘정상 사고’ 혹은 ‘시스템 사고’라고 한다. 정상 사고라는 개념은 언뜻 이상하게 보이지만 시스템의 속성상 예상치 못한 다발적 장애의 상호작용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상’이라는 말은 사고의 빈도가 아니라 시스템의 속성과 관련된다. 죽는 것은 정상이지만 여러 번 죽는 사람은 없다. 시스템 사고는 흔히 발생하지 않지만 한번 발생하면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아무리 산업 기술 및 각종 자동화 장치들이 발달한다고 해도 불가피하게 실수의 위험은 수반된다. 즉 새로운 기술이나 장치는 실수의 확률을 줄이지만 동시에 다른 실수를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자주 일어나거나 익숙한 사고는 그만큼 안전장치나 대응책을 마련하기에 용이하다. 그러나 경험해보지 못한 사고에는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 즉 사고를 줄이고자 고안해낸 장치들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고도 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원전, DNA 재조합, 항공운송, 우주탐사 등의 분야가 특히 그렇다. 이러한 분야의 시스템은 참사의 위험을 항상 지니고 있지만, 시스템의 복잡성과 연계성이 너무 심해서 사고를 예방하는 일이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찰스 페로는 이러한 시스템이 제기하는 위험을 완전하게 제거하는 길은 시스템을 폐기하거나 재설계하는 일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시스템들이 제기하는 위험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찰스 페로가 ‘강하게 결합된’ 시스템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찰스 페로는 궁극적으로 이 책을 통해 사고의 가능성과 그로 인한 인간의 피해를 줄이고자 한다. 사실 고위험 시스템의 사고 발생 가능성은 결코 제거할 수 없을지 모른다. 또한 현실적으로 폐기할 수 있는 시스템의 수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엉뚱한 원인을 지목하거나 더 위험한 방향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방지할 수 있다. 우리는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인재(人災)’를 운운하며 희생양을 찾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물론 안전에 치명적인 ‘원전에서의 납품 비리’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재앙도 상당하다. 또한 운용자가 “셔츠 자락이 벽에서 튀어나온 회로 차단기의 손잡이에 걸리자 제대로 보지 않고 무심코 잡아당겼”다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사고의 60퍼센트에서 80퍼센트는 인재로 기록된다고 한다. 그러나 단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희생양’으로 인간이 선택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불러오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날 스리마일 섬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정상 사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고는 노심 융해로 인한 방사능 유출과 폭발 위험으로 미국 전역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고, 집단적 공황에 가까운 혼란을 야기했다. 공식적으로 이 사고는 운용자의 실수로 인한 것으로 기록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고는 냉각 시스템에서 시작됐다. 냉각수를 거르는 복수 탈염 장치에 불순물이 섞이면서 터빈의 작동이 멈춘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종종 발생하는 것으로 그리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만든 비상 급수 펌프마저 막혀 있어서 문제가 커졌다. 사고 이틀 전에 보수 작업을 한 후 밸브를 닫힌 상태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밸브가 닫혔음을 말해주는 계기가 스위치에 달린 수리표에 가려져 있었다. 따라서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는 밸브가 닫혀 있음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몇 분 후 비상 급수 펌프가 가동되지 않는 것을 확인한 운용자들이 허둥지둥 밸브를 열었지만, 이미 상당한 초기 손상이 진행된 후였다.
이처럼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몇 가지 작은 사고가 겹쳐서 일어난 것이다. 각각의 사고를 떼어놓고 보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하필이면 이것들이 연쇄적인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한번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원전은 그만큼 겹겹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겹쳤을 때는 사실상 예측과 예방이 쉽지 않다(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예측하지 못한 거대한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찰스 페로는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길은 원전을 없애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원전 의존율이 높은 국가에서 당장 원전을 없애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다만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원전 사고를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예방하기 위해서는 안전에 대한 자만이나 안일함을 없애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찰스 페로는 다양한 사례의 정상 사고를 분석하면서 원전을 비롯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