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한국 여성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곱 가지 콤플렉스로 보는 여자들의 생생한 ‘내면 보고서’
1990년대 여성의 현실과 내면에 깊이 자리한 성 불평등 문제를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맏딸 콤플렉스 등 일곱 가지 콤플렉스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많은 여성의 공감을 얻은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1992). ‘여성을 위한 모임’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성의 삶은 월등히 나아지고 한국 사회의 성평등이 완성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에 이르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신자유주의 시장의 무한 경쟁과 자기 계발론의 홍수 속에 전략적으로 여성성을 이용하고 있으며, 이 과정 속에 여성성은 위장되고 왜곡되며 콤플렉스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통계와 인터뷰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과의 밀접하게 소통하며 만든 면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 콤플렉스가 어떻게 변형되고 지속되고 있는가를 추적함으로써, 지금 이 시대 여성들이 처한 현실적 문제와 내면의 딜레마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여성(들) 간의 단절을 넘어 그 속에서 작동하는 젠더 정치학의 차이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장이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기획했다. 새로운 젠더 정치학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여성(들) 사이에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소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머리말〉 중에서
1. 한국 사회의 성평등 현주소, “아직 멀었다”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 이후, 20년 변화상을 추적한 한국 여성의 내면 보고서
2014년 7월 2일, 세계적인 금융 투자 기업인 골드만삭스의 전직 여성 직원들이 회사 내 성차별과 남성 우월적 조직문화에 대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보수 면에서 남성 동료에 비해 21%나 적게 받았고 승진의 기회도 그만큼 적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가장 전문적인 직업군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성차별 문제가 여전히 뿌리 깊음을 알린 사건이었다. 한국의 상황은 이보다 더하다. 오늘날 동등한 교육과 제도적 개선 속에 여성의 지위는 향상되었고 심지어 여성 상위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지만, 성평등에 대한 통념과 달리 개인의 의식과 조직 문화에는 여전히 성차별적인 분업 의식이 깔려 있다. 수치로 보자면 한국의 고학력 여성 취업률은 60.1%로 남성(89.1%)과의 격차는 29%로 OECD 국가 중 격차가 가장 크고, 남녀 간 임금격차도 37.5%로 가장 높다. OECD 회원국의 남녀 간 임금격차 평균은 15%로, 30%를 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직장에서 여성의 승진과 공평한 처우를 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천장지수’는 100점 만점에 15.5점(평균은 53.8점)으로 꼴찌를 기록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여성 취업률이 낮고 임금격차가 커 여성 차별이 심한 나라로, 여성 평등이 모두를 위한 진보라면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라고 말한다.
1992년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를 통해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면서 여성들의 큰 공감을 불러왔던 ‘여성을 위한 모임’이 20년 만에 한국 여성의 현주소를 담은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을 펴냈다. 일곱 가지 콤플렉스를 통해 여성의 심리적 증상을 분석한 전작에서 더 나아가 이 책은 왜곡되고 강화된 기존의 콤플렉스인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와 맏딸 콤플렉스를 대신해 등장한 엄마딸 콤플렉스를 통해 20년의 변화상을 추적하고 있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은 20년 전 여성 콤플렉스가 여성성이라는 억압과 굴레에서 비롯되었다면 오늘날의 여성성은 전략적 필요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시장의 무한 경쟁론 속에서 페미니즘은 종종 자기 계발의 한 양상이나 극단적 여성 이기주의로 오해받곤 한다. 젊은 세대 여성들 역시 기존의 페미니즘이 비판했던 외모 가꾸기 등을 스펙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매력 자본’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결혼과 사회생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전통적 여성성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를 ‘위장된 여성성’이라 이름 붙임으로써, 스스로 원하고 전략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했던 여성성이 이 시대 여성의 내면에 어떤 딜레마와 내상을 남기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책은 표면적으로나마 성평등이 이뤄진 중간계급의 여성들과 달리 여전히 불안정 노동과 성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소외계층의 여성 문제에 주목한다. 계층별 세대별 여성이 겪고 있는 불안과 심리적 문제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를 ‘여성’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묶는다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여성들 간의 단절을 넘어 그 속에서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젠더 정치학의 차이를 발견하고 드러냄으로써 여성 간의 폭넓은 소통을 꾀하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이루고자 한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은 미완의 숙제다. 너무 많은 것들이 은폐되고 지워졌기 때문에 성평등을 위해서 여성이 무엇을 얼마나 더 이루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으며, 결국 성평등은 발견하고 발명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겨 온 여성과 남성 사이의 경계를 발견하고 무너뜨릴 방법을 발명해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의 일상을 짓누르고 고통을 배가하는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를 자각하는 일이 될 수 있다.
-〈21세기 초입에 선 여성의 삶〉 36쪽 중에서
2.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 이 시대 여성들이 못 다한 말들
콤플렉스는 시대적 환경의 복합적 산물로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심화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새로 출현하기도 한다. 20년 전 여성의 심리적 증상으로 지적되었던 신데렐라 콤플렉스, 착한 여자 콤플렉스, 성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지적 콤플렉스, 맏딸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는 노골적인 편견과 불평등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계층을 뛰어넘어 여성 전체의 심리적 한계로 작용했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와 성평등을 위한 법적·제도적 개선이 이뤄진 20년 뒤 과연 한국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에 대한 의문에 본질적으로 답하기 위해 다시 여성 콤플렉스를 불러왔다. 이 책은 성의식은 대체로 개선되었으나 여성이 전통적 여성성을 생존 경쟁의 무기로 전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의식과 행동의 괴리에서 오는 콤플렉스가 더욱 복잡해지고 은폐되어 자각하기 힘들게 되었다고 말한다.
(1) 위장되고 왜곡된 콤플렉스
-착한 여자인 척하고 외모를 잘 가꾸며 남자를 잘 만나는 건 능력이다?
한국 사회가 여성에 기대하는 유연하고 조신한 여성상을 스스로 내면화하여 자기 행동을 억압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는 20년 전에 비해 약화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여성이 실제 사회생활에서 부딪히는 현실과 개선된 의식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점에 주목한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착한 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늘어났으나 결혼이나 사회생활을 위해 착한 여자를 위장하고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으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여성이 막연히 남성에게 보호되어 살아가고 싶어 하는 심리적 의존 상태’를 말하는 신데렐라 콤플렉스는 오늘날 미모와 능력을 모두 갖춘 여성이 높은 신분의 남성과 결혼하기 위해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자기 계발론적 성장 서사로 새롭게 강화되었다. 새로운 남성과의 로맨스를 통해 현실 속 결혼 생활의 난관을 벗어나려고 하는 ‘줌마렐라’ 판타지나, 저조한 여성 취업률과 직장 내 유리천장으로 인해 사회생활에 실패하고 결혼을 통해 사회경제적 안정을 꾀하려는 ‘취집’ 현상 역시 새롭게 등장한 신데렐라 콤플렉스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결혼 풍속도 속에서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망은 점점 더 커진다는 점이다.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