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프롤로그 - 몰락의 에티카_21세기 문학 사용법
제1부 만유인력의 서사학
만유인력의 소설학 - 김영하 강영숙 박민규의 장편을 통해 본 '소설과 현실'
속지 않는 자가 방황한다 - 김훈 소설에 대한 단상
오이디푸스 누아르 - 영화 >올드보이>를 위한 10개의 주석
수음하는 오디세우스, 노래하는 세이렌 - <무진기행>의 한 읽기
아포리아의 제국 - 박성원의 소설
당신의 X, 그것은 에티카 - 김영하의 90년대와 배수아의 2000년대
보유 - 우리가 '소설의 윤리'를 말할 때 너무 많이 한 말과 거의 안 한 말_세 편의 평론에 대한 노트
제2부 전복을 전복하는 전복
문제는 서정이 아니다 - 웰컴, 뉴웨이브
진실은 앓는 자들의 편에 - 2005년, 뉴웨이브 진단 소견
스키조와 아나키 - 2000년대 한국시의 정치학
시적인 것들의 분광(分光), 코스모스에서 카오스까지 - 2006년 여름의 한국시
전복을 전복하는 전복 - 뉴웨이브 총론
보유 - 미니마 퍼스펙티비아_시의 '깊이'에 대한 단상
감각이여, 다시 한번 - 김경주의 시에 대한 단상
보유 시인들이 거기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_필연성과 가능성에 대한 두 개의 단상
제3부 열세번째 사도들
열세 번째 사도의 슬픈 헛것들 - 남진우,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시뮬라크르를 사랑해 - 김행숙,<이별의 능력>
어제의 상처, 오늘의 놀이, 내일의 침묵 - 이민하,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어쩐지 록 스피릿! - 문혜진, <검은 표범 여인>
이렇게 헤어짐을 짓는다 - 이병률, <바람의 사생활>
감춤을 드러내고 드러냄을 감추는 일 - 장석남의 시
애도하는 오르페우스, 그리고 그 이후 - 김근의 시
제4부 그가 누웠던 자리
시선의 정치학, 거울의 주체론 - 이상의 시
그가 누웠던 자리 - 윤동주의 <병원>과 서정시의 윤리학
이 사랑을 계속 변주해 나갈 수 있을까 - 김수영의 ‘사랑’에 대한 단상
시적인 것, 실재적인 것, 증상적인 것 - 황지우의 시론
반성적 에피큐리언의 초상 - 오생근의 시론
불타는 사랑기계들의 연대기 - 김혜순의 연애시
시는 섹스를 한다 - 한국시, 체위의 역사
제5부 고독한 인간의 지도
거대한 고독, 인간의 지도 - 은희경,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아담 - 이기호,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욕망에서 사랑으로 - 천운영, <그녀의 눈물 사용법>
섬뜩하게 보기 -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남근이여, 안녕 - 오현종,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소녀는 스피노자를 읽는다 - 김애란, <달려라 아비>
현실의 비관주의, 문학의 낙관주의 - 김영찬, <비평극장의 유령들>
에필로그 - 울음 없이 젖은 눈 - 김소진에 대해 말하지 않기
발표 지면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
721p



「문학동네」 2005년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하고, 현재 계간 「문학 동네」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인 신형철의 첫 번째 평론집.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소설에 대한 글들을 묶었다. 90년대 이후 이념이 사라진 한국문학계에 어떤 삶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인지를 묻는 윤리학의 출현을 살핀다. 김영하, 강영숙, 박민규의 장편을 통해 본 소설과 현실의 관계, 김훈의 유물론, 박성원의 소설을 특징짓는 아포리아(길 없음, 논리적 궁지)의 재구성,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의 윤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보여준 김영하의 경영학과 배수아의 언어학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2부에는 2000년대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에 대한 글들을 모았다. 저자는 2000년대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흐름을 '뉴웨이브'라고 명명했다. 김민정, 황병승, 김경주, 이민하, 김행숙 등의 시에 나타나는 새로운 에너지의 가능성과 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4부에서는 한국 현대시사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상, 윤동주, 김수영, 황지우, 오생근, 김혜순의 시 혹은 시론을 다룬다. 3부와 5부는 그간 단행본에 수록했던 해설들을 골라 묶었다. 에필로그에는 <소진의 기억>에 실렸던 글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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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첫 평론집
“약력은 짧다. 본인 말마따나 아직 박사학위도 없고, 책 한 권 낸 적 없다. 그런데 실하다 싶은 시집, 소설책의 뒷면에는 수월찮게 그의 해설이 실려 있다. 그에게서 해설을 받으려는 시인, 작가가 줄을 섰다는 소문도 들린다. ‘제2의 김현’이라는, 듣는 이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찬사도 들린다.”(한국일보 2007년 1월 4일자)
지난 2007년, 한 언론은 신형철을 소개하는 기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당시 그는 데뷔한 지 채 2년도 안 된 신예 평론가였다. 대체 무엇이 그를 한국 문학비평의 신화로 불리는 김현에 견주게 했을까?
그는 「문학동네」 2005년 봄호에 평론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오래전부터 문학의 위기와 비평의 죽음이 심상하게 이야기되던 때였다. 특히 자기들만의 세계에 갇혀 독자, 작가들과의 소통을 게을리 했던 비평계는 이제 형식적 권위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무겁고 팍팍하던 비평계에 그의 등장은 신선한 활기를 몰고 왔다.
우선 그의 비평은 독자들과 벽을 쌓고 지냈던 그간의 비평들과는 달리, ‘소통’을 내세웠다. 무엇보다 그의 비평은 쉽고 친절했으며 재미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평론가로는 보기 드물게 자기 문체를 가졌다는 평을 들을 만큼 스타일이 유려했다. 70~80년대 비평의 시대가 지나간 이후로 침체되었던 비평계에서 단연 발군이었던 것이다.
이 젊고 발랄한 비평가의 출현에 맨 먼저 시인과 소설가들이 환영했다. 위의 기사에서 보듯, 웬만한 시집과 소설책 뒤에는 그의 해설이 실려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2007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해설을 씀으로써 ‘가장 인기 있는 해설가’로 꼽히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한국일보 2008년 2월 3일자)
그렇게 독자, 작가들과의 소통을 중심으로 활발한 비평활동을 펼쳐오던 그가 등단한 지 4년이 되어서야 첫 평론집을 펴낸다. 그의 비평처럼 평론집의 출간 또한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것일까.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평론가들과 비교해도 한참 늦다. 이제까지 썼던 글들을 추려 모은 것이라 분량도 여타 평론집의 두 배가량(724쪽)이다. 이 섬세한 평론가가 4년 동안 이뤄온 자신의 비평세계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여기 그의 소통의 흔적들이 “부풀어오른 빵처럼 수북이” 담겨 있다.
문학은 몰락의 에티카다
그는 ‘책머리에’에서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몰락한 자들의 숭고한 표정에 매료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 몰락 이후의 첫번째 표정이야말로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평론집의 제목이 ‘몰락의 에티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의 에티카다. 온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이 이런 것이라서 그토록 아껴왔거니와, 시정의 의론(議論)들이 아무리 흉흉해도 나는 문학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가지런해지던 날 나는 책을 묶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제목은 그때 정해졌고 결국 바뀌지 않았다. 그 책을 이제야 낸다. _‘책머리에’에서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소설에 대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90년대 이후 이념이 사라진 한국문학계에 어떤 삶이 진실하고 아름다운 삶인지를 묻는 윤리학의 출현을 살피고 있다. 김영하, 강영숙, 박민규의 장편을 통해 본 소설과 현실의 관계, 김훈의 유물론, 박성원의 소설을 특징짓는 아포리아(길 없음, 논리적 궁지)의 재구성,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한국문학의 윤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보여준 김영하의 경영학과 배수아의 언어학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윤리적으로 급진적인 소설들이 문학적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의 동료 평론가들의 비평을 언급하며 소설의 윤리를 주제로 한 일반론으로 나아가자는 글로 결론을 맺으며 또다른 서론을 열고 있다.
2부에는 2000년대에 등장한 젊은 시인들에 대한 글들을 모았다. “70년대 산(産) 2000년대 발(發)” 젊은 시인들의 시는 이제껏 한국문학이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매혹을 품고 있었다. 그 새로운 흐름을 혹자는 ‘미래파’(권혁웅)라고 명했고, 혹자는 ‘다른 서정들’(이장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뉴웨이브’라고 명명했다. 그는 김민정, 황병승, 김경주, 이민하, 김행숙 등의 시에 나타나는 새로운 에너지의 가능성과 미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그들의 모험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의 비평은 이 새로운 흐름을 방해하는 보수적인 목소리를 만났을 때는 차가운 결기를 내뿜기도 했다. 이 새로운 흐름에 대한 주목을 “성급하게 새로움을 강조하는” “호들갑”이라고 비판한 비평가에게 김수영의 말을 끌어와 예술사의 전진은 아주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고, 그 차이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고 반박하고, “난무하는 서브포에트”를 폄하하는 비평가에게는 시에서 중요한 것은 문법을 지키는 게 아니라 ‘시적인 것’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신랄한 일침을 가한다.
그가 한국시사의 초안처럼 읽어달라고 당부하는 4부에서는 한국 현대시사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이상, 윤동주, 김수영, 황지우, 오생근, 김혜순의 시 혹은 시론을 다루고 있다. 4부 마지막에 지젝의 ‘체위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에서 계기를 얻어 한국시를 ‘섹스’의 측면에서 부각시켜 바라본 글(「시는 섹스를 한다」)은 특히나 흥미롭다.
3부와 5부는 그간 단행본에 수록했던 해설들을 골라 묶었다. 작품 끝자락에 들어가는 해설은 “평론가가 소진하는 장소”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지만, 그는 독자, 작가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자 해설 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자신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평론가를 꿈꾸었을 만큼 오랜 시간 훌륭한 해설들의 애독자이기도 했다. 그의 해설이 독자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작가에 대한 이해와 공감, 텍스트에 대한 애정, 상대방과 대화하려는 겸허한 태도에서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보기 드물게 시와 소설을 아우르고 있다는 점도 그의 비평의 특장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평을 아끼는 것은, 그 비평이 한 글자 한 글자 아껴서 읽어야 할 정도로 섬세하고 정밀해서 오히려 시를 더 시적이게 하는, 어떤 면에서 몸으로 애정으로 시를 껴안은 채로 뛰어넘어서는(비상하는!) 미덕 때문이다. 작가와 비평가, 서로의 가슴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을 때 문학은 새로운 의미를 입지 않는가.
(…)
그는 분명 비평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평론가다. 평론가의 업이 시선으로 문단을 풍요롭게 해주어야 하며, 진득한 애정으로 문단을 일으켜야 하는 일이라면 신형철 비평의 품격은 오래도록 졸고 있는 문단의 칙칙함을 깨우기에 충분하단 생각이다.” _이병률(시인)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이 책에 완결성을 부여했다. 프롤로그에서는 “설사 시집과 소설책이 더이상 제작되지 않고 팔리지 않는 22세기가 온다 해도” 비평가는 “어디서든 ‘시적인 것’과 ‘소설적인 것’을 찾아낼 것이고 그것을 비평할 것”이고, 문학은 “진실의 윤리학”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필로그는 『소진의 기억』(문학동네, 2007)에 실렸던 글이다. “그에 대해서는 쓰지 않고 버티면서 그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 가슴 먹먹하게 전해온다.
이 두꺼운 책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4년 동안 그가 써왔던 것도, 724쪽에 걸쳐 하고자 하는 말도, 결국엔 문학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는 4년 동안 한국문학과 함께 걸었고, 앞으로도 쭉 함께 걸어갈 것이다. 문학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이 따뜻한 비평가와 함께한 시간은 얼마나 즐거웠고, 또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이건희
5.0
"나는 늘 몰락한 자들에게 매료되곤 했다. 생의 어느 고비에서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사람은 참혹하게 아름다웠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그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텅 빈 채로 가득 차 있었고 몰락 이후 그들의 표정은 숭고했다."
134340
4.0
그러니까… 평론은 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건가요? *신형철답게 멋진부분은 짱많음
조조무비
5.0
#✒️ 2008년 신형철의 전념을 다한 증명이자 지금까지 쌓아올린 신형철 비평 세계의 초석.
이정식
5.0
문학이란, 몰락의 에티카, 즉 몰락의 윤리학이라니. 몰락하는 자들에게 어떤 것이 있기에 저자는 그토록 매료된 걸까. 텅 빈 그들을, 저자는 어째서 가득 차다고 말하고, 숭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람 놀리는 건가, 싶은 문장. 물론 우리가 몰락의 당사자라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실재가 아니라 엄연히 문학이니까 가능한 문장이다. 문학은 삶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생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서 삶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리'가 탄생한다. - 저자의 표현에 암시가 되어있듯, 윤리는 도덕과 다르다. 도덕이 근원적이라면, 윤리는 동시대적이다. 도덕이 선-악의 강제적 규율이라면, 윤리는 좋고-나쁨의 상대적 규율이다. 도덕에서 인간은 철저히 도덕의 수동태로 기능하지만, 윤리에서만큼은 인간은 능동태로 존재한다. 윤리에서 인간은 늘 주체다. 주체가 좋아하는 것(대상/가치관)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행위가 '윤리적인 행위'고, 그 행위로 구성된 삶이 '윤리적인 삶'이다. - 이렇게 되면, 윤리는 존재하는 인간의 수만큼 개별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저마다의 좋음과 저마다의 나쁨. (물론 절대적인 기준으로서 '좋음-나쁨'이라는 건 있어야겠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성립할 수 있다. 나의 윤리는 너의 윤리와 다르다. 너와 나의 다름이 만나면, 둘 중 하나다. 나는(혹은 너는) 너에게(혹은 나에게) 흡수되거나, 충돌하거나. 흡수는 삼키지만, 충돌은 질문을 잉태한다. '너와 나, 누구의 삶이 더 좋은가'. 그러니까, 둘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 문학이 윤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저마다의 작품마다 '너의 윤리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거기엔 매혹적인 수많은 '다름'이 있다. 내가 문학을 읽는 건, 그 다름의 매혹에 넘어가버렸기 때문이고, 그 다름이 던지는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해서다. "너와 나, 누구의 삶이 더 아름다운가." 그중에서도 나는 실패하는 사람의 매혹에 자주 넘어간다. 적어도 이들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삶에 진실할 수 있다. 하나를 향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그들은 저자가 유려하게 표현한 대로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언제나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고, (타자가 아니라) '주체'다. - (역설적으로, 그러나 당연한 논리적인 결과로) 그들이 실패한다면, 그것 역시 '자의'에서 비롯된다. 뻔히 보이는 몰락의 길로 성큼 걸어 들어가는 자들. 몰락의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는 순간, 그 얼굴로 언뜻 스치는 표정을 문학은 포착한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스스로의 삶을 파멸로 몰아넣고,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영호의 절규는 아득했고,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대답할 수 없는 남편에게 '당신이 죽은 이유'를 자꾸 의문하며 남편에게 편지 쓰는 유미코의 표정은 서늘했지만 충만했다.) - 언제나 나는 그들의 몰락을, 아니 그들의 삶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나 어렴풋했고, 간신히 존재했다. 그래서 언제나 나는 그들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매번 간신히 다가갈 따름이다. 선-악의 도덕 논리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그 아득한 깊이. 텅 비었지만 가득 찼고, 처절하지만 고혹적이다. 음화가 선명하므로, 그 표정은 숭고하다. 그 표정은 질문한다. "너와 나, 누구의 삶이 더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가." 나는 역시나 쉽게 대답할 수 없다. - 그러나, 나는 마주 볼 수는 있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저 숭고한 그들의 표정을.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몰락을 마주 보는 일이다. 문학이 몰락하는 자의 표정을 담았다면, 독서는 몰락하는 자의 표정을 마주 본다. 독자는 늘 몰락의 목격자다. 그 사람의 표정을 보며, 독자는 함께 으스러진다. 문학이 우리네 삶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문학의 얼굴을 따라간다. 문학이 짓는 표정에 따라, 우리는 간신히 웃음을 터뜨릴 수 있고 따라 울 수 있다. 그 표정이 던지는 질문에 늘 자신 있게, 너와 나의 삶 중 누구의 것이 더 낫다고 대답할 순 없지만, 너의 몰락이 보여준 '삶의 윤리'를 내가 진지하게 내 '삶의 윤리'로 생각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 저자는 이러한 문학을 "몰락의 에티카"라고 했던가. 나는 이것을 "독서의 에티카"라고 감히 이름 붙인다.
박베이지
5.0
밑줄을 긋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한 페이지를 다 그어놓고 마는 것이다.
BB
5.0
이런 지성으로 영화를 보고 책을 본다는 게 너무 부럽다 얼마나 재밌을까
유빈
4.0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들은 지면서 이긴다.
샌드
4.0
처음에는 너무 안 읽히고, 어렵고 해서 나한텐 아직 무리인가보다 하고 내려놓고 있었는데 한번 쭉 읽어 보니 첫 글만 그랬고 다음 글부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읽어보는 개인 평론집이라 기대를 많이 했음에도 그 기대보다도 더 좋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었는데, 읽기 전에 생각했던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어서 뭐를 얻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더 많은 것들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 대한 전문 평론가의 접근 방식이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이끌 것인가 등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읽은 책들은 더 깊이 볼 수 있었고 읽지 않은 책들까지도 흥미를 붙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스럽기도 했습니다. 상당히 날카롭고 공격적인 느낌의 글체가 있긴 한데 그게 단순하게만 써졌으면 불쾌했을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워낙 담긴 것들이 많아 걸리는 것보다 흥미로운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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