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주디스 버틀러 and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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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가야트리 스피박 소개 대담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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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여성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와 가야트리 스피박 Gatayri Spivak이 주고받은 민족국가의 모순을 들여다보는 사유의 향연 세계적인 여성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은, 이 긴요한 대담을 통해 전지구화 시대에 민족국가에서 배제된 이들이 처한 현실과 상황을 들여다본다. 버틀러는 국가 없는 이들이 과거처럼 난민이나 디아스포라라는 범주로 규정될 수 없으며, ‘벌거벗은 삶’과 같은 은유적 환치를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이러한 자들을 만들어내는 국가권력의 작동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녀는 ‘국가 없음’이 한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의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권력이 적극적으로 특정한 이들을 배제함으로써 구축되는 현실로 본 것이다. 한편 스피박은 버틀러의 논의를 이어받으면서 정치경제의 맥락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특히 남반구 개발도상국 거주자들의 현실에 주목한다. 국가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능을 포기한 채 국가기관들이 민영화되면서, 국가 내에서조차 국가 없는 이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아렌트와 아감벤, 칸트와 헤겔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두 거장 철학자의 현실 인식은 마냥 암담하지만은 않다. 버틀러가 눈 밝게 주목했듯 캘리포니아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스페인어로 미국 국가를 불렀던 ‘불법체류자’들의 노래는, 그 역동적인 자유에 대한 갈망은, 분명 현재의 상황에 희망적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하나의 징조가 아닐까. 국가 없는 자들, 그들은 배제되었기에 자유로운가 주권의 영역을 넘어 국가 없는 자들에게 미치는 권력의 양상들 “우리가 지금 묘사하는 집단은 실제로 국가가 없는(stateless)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국가권력의 통제하에 있습니다. 이들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벌거벗은 삶’의 영역에 놓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의 삶에는 권력이 뼛속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권력과 법이 등치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_주디스 버틀러 국가로부터 추방되고 이탈되어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자들, 그들은 과연 국가에서 배제된 채 권력의 무중력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 주디스 버틀러가 민족국가의 문제를 논하면서 가장 먼저 질문을 던지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녀는 국가권력이 민족국가에 소속된 국민을 속박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속박을 풀어버림으로써 국민을 국가 밖으로 추방하기도 한다고 본다. 이때 주목할 점은, 국가가 수동적으로 특정 국민에 대한 속박을 풀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특정한 지위를 부여하면서 그들을 분리해낸다는 것이다. 즉 국가 없는 자들은 국가권력의 적극적 발동을 통해 생산되는 존재들이며, 국경을 경계로 한 외부와 내부의 구획은 국가권력의 작동에 있어서 필수적인 짝패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서 버틀러는 ‘국가 없음’을 20세기의 주요한 정치적 현상으로 보았던 한나 아렌트의 이론들을 검토한다. 민족국가가 민족적 소수집단을 추방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규정해왔던 정치적 구성체라는 아렌트의 견해에 버틀러는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 더 나아가 소수집단이 영토 내부에 봉쇄되는지 외부로 추방되는지, 또한 추방되는 이들은 항상 ‘민족적’ 소수집단이기만 한 것인지, 이 추방의 기제와 효과는 무엇인지, 이러한 국가는 과연 어떤 국가인지를 더 깊숙이 따져 묻는다.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조우하게 되는 이는 최근 들어 철학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다. 정치 공동체 밖으로 내던져져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국가권력에 노출되는 것을 아감벤은 ‘벌거벗은 삶(bare life)’이라 지칭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버틀러는 삶이 벌거벗는 게 과연 가능한지를 되물으면서, 국가 없는 자들이 다들 비슷비슷한 ‘벌거벗은 삶’의 사례가 아니라 특정한 법제적 권력에 의해 각기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임을 지적한다. 물론 주권의 이론적 장치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헌법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주권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모델을 제시한 아감벤의 논의는 상당히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논의 속에서는 정작 추방된 자들, 아감벤의 용어를 빌리자면 ‘호모 사케르(Homo Sacre)’의 삶이 어떠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을 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찾기란 어렵다. 버틀러는 국가 없는 자들의 결핍을 말하는 언어가 계속 주권과 벌거벗은 삶에만 국한된다면, 그 결핍의 현실에서 작동하는 다른 권력의 네트워크를 놓치게 되며, 결핍의 공간이 재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언어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모순의 장소에서 울려 퍼지는 자유와 권리의 노래 ‘불법’ 이민자들, 자신의 언어로 국가를 노래하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아감벤과 아렌트 중 누구도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이 노래를 충분히 이론화하지 못했으며, 이 노래를 온전히 설명해낼 수 있는 언어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론화 작업은 오감을 통해 생생하게 만들어지는 민주주의, 정치적인 영역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미학적인 표현, 그리고 우리가 ‘공적 영역’이라고 부르는 것과 노래의 관계를 다시 고찰할 것을 요구합니다.” _주디스 버틀러 2006년 봄, 캘리포니아의 주요 도시에서는 미등록 이민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를 벌여나갔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는 이민자에게 더욱 배타적인 시선을 내비치고 있었고, 라틴계 미등록 이민자들은 이에 맞서 길거리에서 스페인어로 미국 국가를 노래했다. 이를 눈여겨본 버틀러는, 이 사건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능성의 지점들을 짚어낸다. 스스로의 존재가 불법적이기에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을 수 없는 이들은, 거리에서 노래를 부름으로써 모순의 공간을 자유로운 집회의 현장으로 재구성한다. 이미 불법적 존재이기에 거리를 점거하는 불법을 행하는 것이 이중의 불법인 상황에서, 이들의 시위는 과연 부질없는 것일까. 미등록 이민자들은 법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없지만, 이들은 거리에 모여 자유롭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한다. 물론 이들이 시위를 통해 곧 자신의 권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권위에 대항하여 보여준 이들의 행동은, 기존의 방식을 넘어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과 지평을 보여준다. 한 나라의 국어로 불리는 국가를 다른 나라 말로 부른다는 것은, 또 다른 소수자들의 민족주의로 환원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체계에 대한 새로운 균열이자 의식의 도약이 아닐까. 또한 새로운 어딘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 표출하며 그것과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국가 내에서도 국가 없음은 진행되고 있다 전지구적 자본의 공세를 뛰어넘는 비판적 지역주의를 꿈꾸며 “비판적 지역주의는 민족주의를 넘어서 혹은 민족주의 아래에서 작동하면서, 동시에 국가와 비슷한 추상적인 구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적 지역주의는 단순히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그 사례를 모으거나, 스스로 행동할 수 없는 대중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공익소송을 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자신이 실질적인 헌법적 부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할 것입니다.” _가야트리 스피박 한편 가야트리 스피박은 아렌트가 자본보다는 계급의 측면에서 민족국가의 문제를 사유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그것이 아렌트의 시대에 적합했을지 모르나 전지구적 자본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재에는 이에 대한 사유의 각을 비틀어야 함을 역설한다. 스피박은 버틀러의 논의를 전지구적 정치경제의 맥락에서 재검토하면서, 오늘날의 ‘국가 없음’은 비단 국경 밖에 있는 난민이나 이주자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지구 남반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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