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예술의 개념을 뒤엎은 혁명가, 뒤샹
현대의 전시장을 ‘쓰레기장’으로 만든 주범을 찾는다면 가장 먼저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손꼽힐 것이다. 그는 1917년 뉴욕의 한 전시에 남성용 소변기(<샘>)를 출품하면서, ‘액자 속의 그림’ 혹은 ‘좌대 위의 조각’이라는 기존의 예술 개념에 반기를 들었다. 기성제품을 예술화한 레디메이드readymade인 <샘>이 있었기에 후대 예술가들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 수 있었다.
<샘>의 신화는 뒤샹의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국내에서 뒤샹은 미술 전공자들에게마저 ‘레디메이드’의 작가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그의 주요 대작은 레디메이드와는 반대되는, 즉 장시간에 걸쳐 손으로 직접 제작한 작품들이었다.
시공아트 시리즈 52번째 책인 『현대 미술의 혁명가: 마르셀 뒤샹』은 국내에 널리 알려진 레디메이드 작품뿐 아니라 뒤샹의 다른 면모들도 상세히 밝혀낸 연구서다. 뒤샹의 생애와 함께 소개된 주요 작품들은 명성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뒤샹의 예술 세계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에로티시즘과 욕망의 문제를 다룬 <큰 유리>와 <주어진 것>,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은 성성 파괴적 작품 , 여성으로 분장한 뒤샹의 사진들인 <에로즈 셀라비>, 우리나라에서도 소장 중인 <여행가방 속 상자> 등이 도판과 함께 자세히 설명된다. 후기에 실린 ‘뒤샹의 후계자들’은 뒤샹이 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력을 증언해 줄 것이다.
예술의 개념에 테러를 가하다: <샘> 스캔들
1917년, 뉴욕에서는 참가비 6달러만 내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는 독립전이 열렸다. 예술가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샘>이라는 작품이 출품되면서 전시 위원회는 발칵 뒤집혔다. <샘>은 “R. 머트R. MUTT 1917”이라는 서명만 지우면 화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성용 소변기에 불과했다. 위원회는 격렬한 논쟁 끝에 소변기를 전시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마르셀 뒤샹은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뒤샹이 바로 R. 머트였던 것이다.
뒤샹이 소변기를 작품이라고 주장하기 전까지 예술 작품은 예술가가 독창적으로 창조한 미적인 사물이었다. <샘>은 독창적이지도 미적이지도 않았으며, 예술가가 만들기는커녕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제품 즉 레디메이드readymade였다. 하지만 ‘머트’는 세 가지 행위를 했다. 오브제(변기)를 선택했고, 그것에 새 명칭(샘)을 붙였으며, 새 관점(변기의 실용성을 제거하고 새 정체성을 부여함)을 부여했다. 이후 이 세 행위는 예술의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샘> 스캔들은 현대 예술의 반미학적 성향을 보여 주는 표본이 되었고, 뒤샹의 이미지에도 깊이 각인되었다.
반면에 <샘> 신화는 뒤샹의 전체 예술 세계를 가리는 부정적인 역할도 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뒤샹=레디메이드라는 등식이 성립할 만큼 다른 면모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현대 미술의 혁명가: 마르셀 뒤샹』은 뒤샹의 주요 작품들을 도판과 함께 살펴보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체 예술 세계를 충실히 밝혀내고 있다.
채워질 수 없는 욕망들: <큰 유리>와 <주어진 것>
<샘> 다음으로 잘 알려진 뒤샹 작품이 있다면 <큰 유리>와 <주어진 것>일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모호하고 모순적인 에로티시즘과 욕망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장시간에 걸친 노동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샘>과 같은 레디메이드 작품과는 반대 성격을 지닌다.
<큰 유리>(1915-1923)는 가 원래 제목으로, 에로틱한 제목과 달리 유리 안에 이상한 기계 장치들이 설치된 작품이다. 상단부의 신부 영역과 하단부의 독신자 영역으로 나뉘는데, 신부와 아홉 명의 독신자들은 서로에 의해 자극을 받지만 결코 만나지는 못한다. 이 작품은 1927년 브루클린의 전시를 마치고 옮기는 도중에 금이 갔는데, 뒤샹은 이 우연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깨진 상태 그대로 두었다.
<주어진 것>(1946-1966)은 뒤샹 사후에 그가 남긴 지침서에 따라 제작된 작품이다. 관람자가 처음 대하는 것은 손잡이가 없는 낡은 문이다. 문에는 작은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는데, 들여다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두 다리를 벌린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여성 누드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녀의 얼굴은 벽돌에 가려져 있는데, 관람자가 아무리 위치를 바꿔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관람자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으며 오직 훔쳐보는 자의 위치에 설 수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은 관람자의 반응을 상정하고 작품의 창작 행위에 포함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전위적이다.
예술의 권위를 무너뜨리다:
1919년, 뒤샹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인쇄된 엽서를 활용했다. 모나리자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하단에 ‘L.H.O.O.Q.’라고 쓴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받는 <모나리자>에 낙서를 한 것도 모자라 ‘L.H.O.O.Q.’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불경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였다. 이 제목이 프랑스어로 “Elle a chaud au cul(그녀의 엉덩이는 뜨겁다)”와 똑같이 발음되기 때문이다. 뒤샹은 이 작품을 “레디메이드와 성상 파괴적 다다이즘의 조화”라고 묘사했다.
고정된 성 정체성을 부정하다: 에로즈 셀라비
1920년, 뒤샹은 자신의 여성 분신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여성 분신의 이름은 처음에는 ‘로즈 셀라비Rose S?lavy’였다가 우연한 기회에 ‘에로즈 셀라비Rrose S?lavy’로 바뀌었는데, 이는 프랑스어로 ‘Eros, c'est la vie(에로스, 그것이 삶이다)’와 동음이의어다. 이후 뒤샹은 여성으로 변장한 자신의 모습을 만 레이의 사진으로 남기거나 자신의 양복을 입힌 여성 마네킹을 전시하는 등, 에로즈 셀라비를 적극적으로 작품에 등장시켰다. 심지어 일부 작품에 뒤샹 대신 에로즈 셀라비라고 서명을 하기까지 했다. 뒤샹의 여성 분신은 성차와 성적 정형화의 불안정성을 실험한 것으로, 이후 양성성을 표현하는 현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전시의 개념을 깨다: <여행가방 속 상자>
뒤샹이 깬 것은 예술 개념만이 아니다. 그는 전시 개념에도 도전했는데, <샘>이 평범한 사물을 예술로 인증하는 데 필요한 미술관 제도의 역할을 짚어 보았다면, <여행가방 속 상자>는 ‘들고 다니는 미술관’으로서 미술관이나 갤러리 중심의 전시 방식을 뛰어넘는 새 전시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여행가방 속 상자>는 뒤샹이 자신의 작품 69점의 복제본을 상자에 배치한 작품으로 고급형 24점, 일반형 300점 등 에디션 형태로 제작되었다. 2005년에 국내의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이 에디션 중 하나를 약 6억 원에 구입한 뒤 한동안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세기 미술의 흐름을 좌우하다
1950-1960년대에 이르면 뒤샹의 명성은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다. 제프 쿤스, 데미언 허스트 등은 뒤샹의 후계자임을 자처했으며, 플럭서스, 아르테 포베라, 미니멀리즘, 개념주의, 퍼포먼스, 대지 미술 등 뒤샹의 영향을 받아 연극성을 앞세운 미술운동들이 속속 등장했다. 1964년 11월, 요셉 보이스는 <뒤샹의 침묵은 과대평가되었다>라는 작품에서 뒤샹을 야유했지만, 이러한 반응마저 뒤샹의 강력한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이 책은 뒤샹의 중요성을 지적하면서 현대 미술의 연구자라면 그의 작품을 비판할 수 있지만 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