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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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문장의 창간사, 그 안에 담긴 시대와 지성 123편 창간사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 잡지사(史)는 문화의 연표다. 잡지는 신문 등 일간지에 비해 자본이 적게 들고, 분야와 독자가 한정돼 있으며, 뜻이 통하는 단 몇 사람의 주체만으로도 발간할 수 있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사회 환경 아래 특정한 독자층의 이익 내지 기호를 대변하는 누구나 창간 가능한 매체. 그래서 잡지는 어떤 매체보다 쉬이 시류를 타고 사조에 즉각 반응하며, 태어나기도 사멸하기도 쉽다. 과거에 묻혀간 잡지들은 정치 또는 문화적인 압력을 제 안에 새긴 채 표준화석처럼 당대를 증언하고, 살아남은 잡지는 그 자체로 문화사에서 적자일 수 있었던 이유를 증명한다. 역사, 특히 현대사를 논할 때 잡지가 주요 사료가 되어온 이유는 그래서이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은 『1960년을 묻다』 『대중지성의 시대』 『자살론』 『근대의 책 읽기』 등으로 한국 근현대 문학사와 문화사 연구를 확장시켰다는 평을 받은 천정환 교수가, 1945년부터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는 한국 현대 문화사를 잡지를 통해 바라보는 책이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한글 문자문화의 부활을 맞이하던 해방기부터 ‘체념’과 ‘자학’이 지성을 염해가는 2000년대까지, 우리는 어떤 시대를 거쳤고 어떤 문화를 일구었으며 무엇을 남겼을까? 이 책은 1945~49년, 1950년대, 196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시대를 나누고, 각 시대 안에서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잡지들을 추려 그 창간사에 투영된 문화와 지성을 읽는다. 왜 창간사인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잡지를 창간하는 일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퍼뜨리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잡지를 중심으로 앎과 삶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같은 것이 관여한다. 이 욕망은 권력욕이나 인정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먹물’에게 그렇다. 그래서 창간사에는 어떻게 세상을 ‘취재’ ‘편집’해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창간 주체들의 방향이 천명된다. 고로 대개 창간사는 ‘선언’이다. (…) 이런 사정들을 모아 생각하면 잡지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며 잡지를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출판인은 출판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이 책에 실린 지식인 잡지의 창간사들을 통해 우리나라 참여적 지성의 전통이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책을 엮으며」 잡지 창간호, 그중에서도 창간사란은 창간 주체와 사회의 관계가 가장 긴중하게 천명되는 곳이다. 잡지의 방향, 즉 존재 이유가 창간사에서 가장 먼저 언명된다. 창간사에는 잡지의 성격과 잡지 주체의 시대정신과 욕망이 가장 뚜렷하게 집약되어 있고, 그래서 창간사를 보면 잡지가 몸담았던 세상의 얼개가 보인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저자가 한국 잡지사를 개괄하고 도서관과 박물관을 드나들며 수백 종의 잡지를 검토한 노력을 집약한 책이다. 시대별로 나눈 각 부는 문화와 대중의 흐름을 개괄하는 저자의 경쾌한 글 뒤에 1945년 12월 1일 발간된 <백민>을 시작으로 <민성> <개벽> <사상> <현대문학>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새마을> <문학과지성> <야담과 실화> <선데이 서울> <보물섬> <키노> <페이퍼> <월간잉여> 등 민족지, 정론지, 문학지, 노동지, 오락지, 예술지, 만화 잡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126종의 잡지, 123편의 창간사를 실었다. 시대의 문제의식이 잘 반영되었는지에 따라 / 우리 문화사에 끼친 영향에 따라 / 독특하거나 흥미로운 문장인지 여부에 따라 신중히 가려낸 창간사들이 당시의 문화적, 문학적, 역사적 지형도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각 잡지 창간사는 일부 표기를 제외하고 원문을 그대로 옮겨 우리말과 글의 변화를 읽는 재미도 더한다. 또한 각 부 창간사 앞에 화보를 실어 당시 잡지들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도왔다. 해방 후 70년, 잡지의 수난과 번영 잡지로 더듬는 현대사의 ‘제목’들 “이제 조션이 해방됨과 함께 <개벽>이 다시 나온다. 개벽은 지난 1920년, 조선의 독닙운동과 함께 창간되야, 무릇 닐곱 해 동안을 싸워오다가 1925년 8월, 우리의 혁명가 여러분을 소개했다는 리유로 필경 저들의 손에 암살되였던 것이다. 여기에 긴 말을 하고 싶지 않거니와 도합 칠십이 호를 내는 중에 발매 금지가 삼십사 회, 거기에 또 벌금, 또 졍간, 오히려 부죡하야 그들은 우리의 손에 수갑을 채위 종로 네거리를 걸리고 잔학하게도 <개벽>을 우리들의 손으로부터 빼았었었다.” -<개벽>(복간) 창간사에서 해방 전에도 잡지는 있었지만 일제의 탄압 때문에 적은 수나마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해방 뒤 찾아온 자유로 나라도 문화도 새 출발을 알렸으나 사분오열된 이념, 한국전쟁의 전조로 이내 융성을 저버려야 했다. 하지만 혼란 속에도 잡지는 있었다. ‘운동으로서의 문학’의 극단을 보여준 <문학>(1946), 중립의 형성을 알린 <민성>(1945), 이념을 떠나 학문적 장을 형성하려던 <학풍>(1948) 등, 즉각적이고 접근이 쉬운 매체인 잡지는 저마다의 입장과 관심을 반영하며 시대의 입과 귀로서 기능했다. 여기까지는 해방기 잡지사의 단면이다. 이후에도 50년대 한국전쟁, 60년대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70년대 개발독재, 80년대 전두환의 강권 정치와 민주화 운동, 그리고 이후 IMF 체제와 ‘잉여’ 세대의 태동 등, 잡지는 끊임없이 대중과 호흡하며 시대에 진지한 물음을 하고 응답을 요구했다. 한 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의 무게에 어떤 잡지는 짓눌렸고, 어떤 잡지는 버티어 시대의 표상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잡지들은 거대 역사의 맥락에서 벗어나 취미, 교육, 여성 등 나름의 영역에서 일상과 취향의 문화를 일구었다.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은 크고 작은 지류가 혼재하는 문화사의 여러 측면을 잡지로써, 만화경처럼 보여준다. 상허 이태준이 발행한 <문학>을 시작으로 <현대문학> <지성> <산문시대>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실천문학> 그리고 일련의 노동문학 잡지들을 통해서 한국 현대문학사의 흐름을 읽고, <샘터> <씨알의 소리> <뿌리깊은 나무> 등의 잡지에서는 ‘유신’의 명암, 개발독제 시절의 기억을 돌아본다. <야담과 실화> <선데이 서울> <핫 뮤직> <키노> <보물섬> 같은 오락?문화 잡지는 또 우리 정서에 얼마나 큰 인장을 남겼는지, 이 책은 빛을 다하고 스러져간 잡지들을 통해 추억을 더듬을 기회도 마련한다. <선데이 서울>은 ‘잡지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답을 보여준 그런 잡지다. 이 잡지를 낸 서울신문사는 <선데이 서울>이 “회사원이나 중견 직장인, 사회 지도층, 가정주부, 근로자 등 거의 전체 층을 망라한 ‘4000만의 교양지’”라고 했다 한다. 재밌는 말이다. 교양의 개념이 바뀌면 이 말은 성립할지 모른다. 만약 여배우의 수영복 사진이나 여성의 성감대 위치, 국내외 유명 스타들의 이런저런 스캔들, 유흥업소 탐방기들도 ‘교양’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면 말이다. -175~176쪽, 「지성과 대중문화의 새로운 공간」 ‘똥종이’부터 스마트폰까지 출판문화 그리고 읽고 쓴다는 것의 의미 종이의 생산과 분배는 언제나 이 땅 출판문화의 중요한 물질적 변수였다. 책을 만들 만한 질 좋은 종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