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화 vs 나쁜 문화? 개념적 논의부터 팬덤, 퀴어 문화까지
20대 청춘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대중문화 이야기
20대는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이자 생산자이다. 그들을 타깃으로 한 대중문화 상품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으며, 문화 상품 제작자들은 SNS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그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해 향후 진행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문화 트렌드의 중심축인 20대에 대한 미디어 교육은, 과연 20대가 참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과연 20대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대중문화를 선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들은 자기만의 독창적인 대중문화관을 가지고 있는가? 대학에서 대중문화에 관한 강의를 진행하는 박진규 교수는 20대가 주인이 된 ‘대중문화 수업’을 주창한다. 저자는 대중문화 현장에서 시시각각 나타나는 열두 가지 핵심 주제로 토론 수업을 진행해 청춘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는 20대의 감수성으로 가공 없이, 천연 그대로 풀어낸 이 시대 대중문화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딱딱한 이론 강의가 아닌, 20대 대학생들이 일상 속에서 느낀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공유를 바탕으로, 대중문화의 주 소비층이 바라보는 대중문화에 대한 종합적 시각과 이해를 제공한다.
자신만의 대중문화관을 발견하고, 구축하고, 개발하도록 돕는 책
저자는 20대 학생들이 각종 문화적 쟁점에 관해 매우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나름의 의견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솔직하고 명철한 그 목소리들은 수면 위, 즉 공적인 공간에서 울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이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학생들은 그저 커뮤니티나 SNS 등 사적인 공간에서 뜨거운 공방을 벌여왔을 뿐이다. 저자는 대중문화에 대한 이론들만 다루고 20대의 속이야기를 끌어내지 않고서는, 우리의 일상과 괴리된 대중문화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1부 혼란스러워지기, 2부 생각의 지평 넓히기, 3부 나만의 대중문화관 탄탄히 하기라는 총 3단계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한 대중문화관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1부는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에 관한 개념적 논의에서 시작해 ‘대중은 누구인가?’,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등 지금까지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던 생각에 의문을 던지는 단계이다. 여태껏 옳다고 여겼던 가치와 생각들을 다시금 진지하게 고민하고 타인의 관점과 비교하면서, 비로소 대중문화를 폭넓게 바라보게 된다. 이 과정 없이는 대중문화 속에 내재한 모순과 비논리성, 비도덕성을 무심하게 지나칠지도 모른다.
2부에서는 불륜 드라마, 팬덤, 아줌마 팬 문화 등 개개인의 신념과 가치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주제들을 다루었다. 옳다고 믿어왔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이의 생각을 앎으로써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3부는 대중문화 속 성(性)에 대해, 그리고 퀴어 콘텐츠, 마니아 문화 등 소수의 대중문화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자신만의 시각을 만드는 단계이다. ‘나만의 대중문화관을 갖기 위한’ 여정은, 이 단계에서 한층 논쟁적인 주제들을 거치며 마무리된다. 이 책에서 학생들이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서로의 관점을 공개하고, 여러 주제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독자들은 ‘대중문화’와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는 이 시대에 주체적 존재로서 자신만의 대중문화관을 만드는 발판이 될 것이다.
대중문화 속에 함유된 정치성을 풀어내다
불륜 드라마 속의 여성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아이돌 스타를 쫓아다니는 이른바 ‘아줌마 팬’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어떤가? 동성애를 다룬 프로그램에서 그려지는 성적 소수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TV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온갖 오락·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면서도, 이러한 질문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뭐 이런 것들 가지고 그렇게 정색해야 돼?’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박진규 교수는 ‘정색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에게 버림받는 드라마 속 여성은 결혼 후 가정에, 남편에게 종속되기 쉬운 현실 속 여성의 모습을 반영하며, 아줌마 팬을 향해 혀를 차는 사람들에게는 ‘여자가 저 나이 먹었으면 가정에 충실해야지’라는 생각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리 잡고 있다. 미남 미녀 배우가 연기하는 게이나 레즈비언은 그저 극의 흐름에 양념을 쳐주는 장식품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고, 홍석천과 같은 소수의 동성애자들은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웃음거리, 놀림거리로 취급받기도 했다.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사람들의 모습과 삶은, ‘정색’해야 할 주제들이다.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100분 토론>이나 <9시 뉴스> 같은 ‘진지한’ 매체를 볼 때 취하는 태도와 드라마나 예능 등의 대중문화를 접할 때 취하는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뚱뚱한 외모로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를 보도하는 뉴스 기사에는 혀를 차면서도, <개그콘서트>에서 뚱뚱한 개그우먼이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웃음을 유발할 때면 거부감 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저자는 바로 이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문화는 그 특유의 가볍고 부담감 없는 외양을 내세워 우리의 경계심을 해제시키고 은연중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대중문화에 내재된 ‘정치성’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눈을 하고 대중문화를 봐야 할까? 우선 자신의 가치관과 대중문화관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분법적으로 좋은 문화와 나쁜 문화를 나누던 태도, 자신의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고급문화와 저급문화를 품평하던 기존의 태도를 되돌아본다면 그 여정의 끝에서 한층 진일보한 가치관과 대중문화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진규 교수의 는 20대 대학생들이 이와 같은 ‘나만의’ 대중문화관을 얻기 위해 한 학기 동안 토론한 내용과 그에 대한 저자의 주석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아직 가치관이 굳게 자리 잡지 않은 젊은이들을 위한 대중문화 지침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대중문화의 정치성’이라는 주제는 비단 젊은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생각해야 할 과제를 안겨준다.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이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름다운 모습일까, 추한 모습일까? 만일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대중문화에 비친 자화상을 바꾸어나가려는 우리에게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