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이렇게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듯
탐욕스럽게 읽어 내려간 소설이 또 있었던가.”_강화길(소설가) 추천사 중에서
강화길(소설가), 정해연(소설가) 추천
스스로 만든 감옥을 내던지며 웃다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수상 작가 청예의 SF 미스터리
★★★★★
자유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도발적인 이야기
SF x 미스터리 x 리얼리즘을 훌륭하게 버무린 서사의 향연
“억눌려 있던 그녀의 잿빛 마음이 형형색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진심으로 끝내주게 웃는다. 그리고 나도 웃었다. 근래 이렇게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어치우듯, 탐욕스럽게 읽어 내려간 소설이 또 있었던가.”
_강화길(소설가) 추천사 중에서
2년 만에 〈제9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우수상, 〈제4회 컴투스 글로벌 콘텐츠문학상〉 최우수상, 〈제1회, 제2회 K-스토리 공모전〉 최우수상, 〈2023년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까지, 초단기간 내에 연달아 문학상을 수상한 청예 작가.
포근한 로맨스 소설부터 미래 기담 SF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청예는 이윽고 본인 내면에 있는 질척하고 순수한 검은 감정을 내보이며 독자를 찾았다. ‘욕 먹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 그렇기에 강렬한 소설 『오렌지와 빵칼』이 허블에서 출간됐다.
사회생활 속에서 자기 검열은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가끔은 그것이 자신도 모르게 강화되고, 남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각박해진다. 검열의 범위는 타인으로까지 번진다. 각자의 정의가 강해질수록 권리처럼 행해지는 타인을 향한 재단과 편견은 그 범위가 넓어져 ‘노키즈존’, ‘SNS 마녀사냥’등 사회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우며 그것이 ‘선’이라 고집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말한다. “너무 단편적으로만 생각하는 거 아닐까?” 이 생각으로부터 『오렌지와 빵칼』이 시작됐다.
“웃음을 상실한 지가 너무 오래됐다”라는 서술로 시작하는 『오렌지와 빵칼』은 모두가 한 번쯤 겪어봤을 상황 속으로 독자를 이끈다. 현실감 넘치는 설정과 등장인물의 면면은 과장되었음에도 언젠가 만나본 것처럼 익숙하다. ‘정서 변화 시술’이라는 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든 장치는 감초처럼 기능한다. 욕망과 충동, 위선과 죄책감 사이에서 흔들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강렬한 반전이 찾아온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누군가는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스스로와 주변을 돌아볼 것이다. 가볍게 시작하고 무겁게 끝나는 소설. 여름철, 섬뜩함과 시원함을 함께 선사하는 이야기로 현실에서의 일탈을 꿈꾸던 독자를 만족시킬 것이 분명하다.
“나는 너를 존중할 수 있다.
단 네가 나를 존중할 때만.”
거꾸로 서 있던 스스로의 세상이 뒤집히자
드디어 숨쉬기 시작한 사람을 그리다
“유쾌한 필체로 유려하게 쓰여가는 이야기가 공감을 넘어 그것을 마치 내 얘기라고 받아들이게 한다. 소설 속의 ‘나’는 드디어 진짜의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모든 세상이 ‘네!’를 외쳐야 마땅하다고 강요할 때 ‘아니!’라는 소리를 내지르는 주인공을 보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_정해연(소설가) 추천사 중에서
『오렌지와 빵칼』의 주인공 오영아. 27세. 유치원 교사.
오영아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정의를 위해 그녀에게 동의와 양해를 요구한다. 잘 웃고 잘 배려하고 잘 참는 게 장점이었던 오영아는 부담스러워하면서도 그들의 가치관을 동경하며 또한 존중한다. 오영아는 환경과 동물과 연인을 사랑하는 건 ‘바람직하기’ 때문에 동참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오영아는 주변과의 갈등을 피하려 억지로 웃고 사과한다. 취미와 습관도 바꾼다. 무리하던 오영아는 결국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웃는 법과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는다.
“마음이 힘들면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 주변의 걱정에 힘입어 오영아는 심리치료를 결심한다. 뇌 시술을 연구하는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오영아는 4주 동안 효과가 지속되는 ‘정서 조절’ 시술을 받는다. 그 여파로 통제력이 완전히 사라진다.
스프링처럼 눌려 있던 욕망. 자기 합리화, 분노, 억울이 폭발적으로 튀어 오른다. 그녀는 파괴적인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다. 속으로 ‘시발 새끼’라는 욕을 한다. 담아뒀던 말을 토해낸다.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책과 더불어 쏟아지는 건 강렬한 해방감이다. 오영아는 당황하고, 이 시술의 정체를 알기 위해 다시 센터를 찾지만 시술 효과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답을 듣는다.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해방이 주는 달콤함에 중독되기 시작하는 오영아. 그녀는 자신을 ‘선함’으로 이끌어 준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묵은 감정을 쏟아붓기 시작한다. 정성 들여 쌓아 올린 ‘관계’라는 감옥을 부수려는 시도. 하지만 시술의 효과가 사라지는 날은 매정하게 다가온다. 그녀에게는 과연 어떤 종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사회와 관계를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우리는 결여를 채우는 게 가끔은 버겁다. 있는 그대로 수용되길 원한다. 비록 내 도덕성이 상대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도, 내가 이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지 못해도, 심지어 그 정의에 균열을 만드는 존재라 할지라도. 그냥 살아 있고 싶다. 있는 그대로”_‘작가의 말’ 중에서
사회인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절제하고 양보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걸 돕기 위한 기관이 존재하며, 그곳에서 일하는 직업인이 어른이 되지 않은 사람을 훈련한다. 그들은 ‘선생님’이라고 불리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들이 사회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는지 잘 모른다. 오히려 그들에게 당당히 요구한다. 보는 눈이 많으니 언제나 무결해야 한다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그 ‘모범’이라는 것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일까?
오영아는 유치원 교사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싸움을 말리기 위해 원아의 발길질을 맨몸으로 맞고, 학부모 여론이 나빠지지 않기 위해 자진해서 고개를 조아린다. 오영아는 불쑥불쑥 느껴지는 분노를 ‘나쁜 감정’이라고 치부하려 한다. 정도 넘는 절제와 예민함을 지닌 오영아. 오영아의 자기 검열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선함’의 굴레에 개인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치닫는다. 오영아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답답해진다. “그렇게 살면 안 피곤해요?”라는 순수한 아이의 물음에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페이지를 넘기면, 시술 후 고삐 풀린 듯 마음대로 행동하는 오영아를 보며 ‘어?’ 하고 뒷걸음치게 된다. ‘선생님이 저래도 돼?’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사실 주인공 오영아의 면면은 우리의 일부와 매우 닮아 있다. 친구의 헛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맞장구를 치고, 애인이 챙겨주는 음식을 마다하지 못해 먹고, 직장에서 싫은 소리를 들어도 반박을 삼키고 쓴 입으로 ‘죄송하다’고 말한다.
세상은 이상하지만, 관계를 위해 진심을 가리고 거짓을 말하는 일은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상한 세상에 적응하려면 목적을 위해 남을 이용하는 일은 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이런 우리가 모두 ‘나쁜 사람’일까? 반대로, 우리에게 거짓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 사람’일까? 『오렌지와 빵칼』은 과장된 설정과 상황을 통해 선해지고 싶은 욕망과 있는 그대로 있고 싶다는 욕망을 나열하며 독자에게 호소한다. 가끔은 혀의 즐거움을 위해 건강에 나쁜 음식을 먹고 싶다고. 가끔은 일하다가 속으로 욕지거리를 되뇌고 싶다고. 그런 나를, 부정적이고 충동적인 나를 받아들여 달라고. 세상에 대고 확성기를 든다.
오영아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녀는 과연 미친 걸까, 아니, 원래 모습이 미친 상태이지 않았을까. 답이 없는 질문이 샘솟는다. 오히려 오영아에게 과한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