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으로 구해 읽던 타이슨의 역작
2000년대 들어 비평이론은 적어도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했다. 대학원 수준에서만 다뤄지던 몇몇 이론가들이 학부 수업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는가 하면, 다른 학문 분과에서 주로 논의되던 일부 이론이 문학 연구에서도 기본 틀로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평이론을 대학(원)이나 학문과 연결지어 얘기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비평이론은 ‘상아탑’의 전유물인가?
이 책의 초판이 간행된 1999년부터 제대로 된 비평이론 개설서에 목말라 하는 독자들 사이에서 “원서로 구해 읽는” 추천서로 이름을 알린 타이슨의 《Critical theory today》의 제2판(2006)이 바로 이 책 《비평이론의 모든 것》이다.
이 책의 탁월한 점은 상아탑의 전유물로만 인식돼온 비평이론의 현실적 ‘효용성’을 <서문>과 제1장을 비롯하여 책 전체에 걸쳐 주장하고 설득한다는 데 있다. 비평이론을 왜 공부하는가? 비평이론을 공부해서 무엇에 쓰는가? 저자인 로이스 타이슨은 대답한다. “세계를 잘 들여다보는 데, 우리 삶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비평은 큰 쓸모가 있다!”
이 책의 구성과 독자층
이 책 《비평이론의 모든 것》은 비평이론이 문학 텍스트를 현실과 더불어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총 13개 장에 걸쳐 각 이론의 핵심 개념과 용어를 상세히 설명하고, 비평이론에 쓰이는 개념과 분석법을 문학 분석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보여 준다. 특히 각 장마다 해당 비평이론을 이용한 상세한 《위대한 개츠비》 분석과, 질문 형식으로 구성한 기타 문학 작품 분석 및 <더 읽을거리>, 해당 이론의 <중요한 이론서들>, <참고문헌>을 붙여 비평이론의 초심자부터 고급 독자까지 모두 유용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론 공부를 막 시작한 학생이든, 아직까지 이론을 충분히 접하지 않아 좀 더 이론적 관점에 익숙해지고 싶은 교수든지 간에, 이론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라면 누구나 이 책을 진정한 의미의 ‘기초’ 설명서로 삼을 수 있다.
11가지 이론 틀로 꿰뚫어 읽는 ‘위대한 개츠비’
이 책 《비평이론의 모든 것》은 주로 문학과 관련된 부분에 중점을 두고 비평이론을 개설한다. 저자가 밝힌 두 가지 이유는 이렇다. 우선은 대부분의 독자가 문학을 배우는 학생 또는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비평이론을 접하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고, 그 다음으로 인간 삶의 ‘실험실’인 문학은 모든 독자가 공유할 법한 인간 경험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제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 근거하여 저자가 책에 소개된 모든 이론을 차례대로 적용하여 아주 꼼꼼히 읽는 텍스트가 1925년에 발표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유명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다. 모두 알다시피 이 소설은 영미문학의 정전canon으로 언급되는, 이미 수많은 독자들이 읽고 감명받은 “위대하고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저자가 《위대한 개츠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여러 비평이론들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어떤 이론 틀에 끼워 맞춰 보는지에 따라 이 소설은 전혀 다른 관점을 드러낸다는 의미다.
자본주의에 주목할 것인가, 동성애에 주목할 것인가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비평에 틀로 《위대한 개츠비》를 바라보면, 이 소설은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아주 명쾌하게 보여 준다. 이 소설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형상화하고, 아메리칸 드림이 어째서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할 뿐 아니라 개인의 가치를 타락시키는 데 일조하는지 날카롭게 지적한다. 다시 말해,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자본주의 문화와 그것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 작업을 수행하는 소설이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레즈비언 · 게이 · 퀴어 비평이론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들여다보면, 소설의 극적인 장면들 곳곳에 은밀히 스며들어 있는 동성성애적 서브텍스트가 이 소설의 너무나도 명백한 이성애적 서사를 퇴색시키는 걸 알 수 있다. 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죄다 불륜에 끌리는가? 개츠비의 분홍색 양복은 왜 게이 · 레즈비언 기호로 작동하는가? 소설의 화자인 닉의 눈에 비친 개츠비의 모습이 흡사 흠모하는 여성을 묘사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왜일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 아닌 ‘여럿’의 관점
물론 이 책은 《위대한 개츠비》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818)에 대한 해체론적 해석,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월트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에 대한 게이비평적 분석,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에 대한 탈식민주의적 비평 등 다채로운 비평이론의 스펙트럼으로 다종다양한 문학 텍스트들을 비춰 본다. 이때 독자들이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텍스트와 이론을 끼워 맞추면서 양자의 세부 요소들을 왜곡하는 것이다. 자주 언급되는 개츠비의 ‘분홍 양복’은 명백한 게이 코드일수도 있지만,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상징하는 기호일 수도 있다. 이 책 《비평이론의 모든 것》은 비평이론을 이런저런 꽃들이 혼합된 ‘꽃다발’로 보라면서, 비평이론이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