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모욕 받은 마음 해독하는
‘재치 넘치는 대답’
철학 교수인 윌리엄 어빈은 스토아 철학을 연구하면서 모욕 수집가가 되었다. 그의 전작 《직언(A Guide to the Good Life)》의 한 장이었던 ‘모욕’은 쓸수록 분량이 늘어나 어느 순간 ‘이 장은 책이 되고 싶어 하는군’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만큼 모욕은 사회관계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나는 감정이자 행위이다. 그는 다양한 종류의 모욕을 소개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그중에는 언어적, 신체적인 모욕은 물론이고 짓궂은 장난, 묵살, 뒷담화, 누락에 의한 모욕, 암시에 의한 모욕, 우연한 모욕, 냉소 등이 있다. 역사적인 일화로 풀어낸 모욕 사례는 독자에게 훌륭한 해독제가 된다.
극작가 마크 코넬리도 이른바 앨곤퀸 원탁 모임의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가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모임의 다른 사람이 뒤쪽으로 다가오더니 코넬리의 벗겨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크, 자네 머리가 꼭 우리 마누라 엉덩이처럼 보드랍구먼.” 코넬리는 손을 머리로 가져가 직접 만져보았다. “정말 똑같은데, 정말 그래.” - 7쪽
또 다른 예로 여배우 일카 체이스를 들어 보자. 험프리 보가트가 그녀의 신간을 참 잘 읽었다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 책 누가 써준 거요?” 그녀는 대필 작가를 둔 게 아니냐는 뜻의 그 말에 화가 났지만 침착하게 응수했다. “좋아하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누가 대신 읽어준 거죠?” - 17쪽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함으로써 모욕을 줄 수도 있다. 한번은 호텔 밖에 해군 사령관이 서 있었는데 마침 술에 거나하게 취한 로버트 벤츨리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사령관을 도어맨으로 착각한 벤츨리는 그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 요청했다. 격분한 사령관이 자신은 도어맨이 아니라 해군 사령관이라 말하자 벤츨리가 대답했다. “좋아, 그럼 내 앞에 전함을 대령하시오.” - 63쪽
암시적인 비교로 모욕을 당하고도 이를 유리하게 이용하는 침착함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배우 이나 클레어는 영화배우 존 길버트와 결혼하고 얼마 뒤에 가진 인터뷰에서 유명인과 결혼한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가 대답했다.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제 남편한테 물어보시죠?” - 70쪽
비꼬는 칭찬으로 상대를 모욕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매복 모욕’이다. 그라우초 막스가 유머 작가 S. J. 페렐만에게 한 말을 보자. “당신 책을 집어 들고 내려놓을 때까지 배꼽 빠지게 웃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죠.” 베토벤은 다른 작곡가에게 이 방법을 썼다. “자네 오페라 마음에 들어. 거기에 내가 곡을 붙여야겠는데.” 시인 앙투안 드 리바롤은 다른 시인이 쓴 두 줄짜리 시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아주 좋아요. 그런데 지루하게 늘어지는데.” - 92쪽
사람은 왜 서로 모욕하는가?
진화심리학과 철학이 답하다
모욕은 우리 짐작보다 훨씬 깊숙이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왜 서로에게 모욕을 주는가? 모욕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이 고통을 막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남을 모욕하는 습관은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까? 이런 질문에 어빈은 모욕과 그 역사, 모욕이 사회관계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모욕 이면의 과학을 폭넓게 알아본다. 특히 진화심리학의 관점에 비중을 두고 풀어낸다. 모욕은 부인이 남편을 장난으로 놀리는 경우처럼 관계를 굳건히 다질 때에도 쓰이지만 상사가 남들 보는 앞에서 직원을 나무라는 등 사회적 위계를 강요할 때에도 쓰인다. 더 나아가 어빈은 예의 규범을 채택한다든가 혐오 발언을 법으로 금지하는 등 모욕에 대처하기 위해 사회에서 내놓은 여러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10장)
모욕이 고통스러운 여러 이유는 개인적 관계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간의 욕망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으로 모든 이유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한 여성이 낯선 사람의 잔인함에 대한 시를 써서 발표했다고 해보자. 얼마 뒤 그녀는 익명의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그녀의 시를 악랄하게 패러디한 시가 쓰여 있었다. 이 모욕에 그녀는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는 관계에 대한 평가절하로는 설명할 수 없다. (…) 고통의 유력한 뿌리가 될 수 있는 유력한 후보는 바로 그녀의 자아상이다. 이 여인은 자신이 괜찮은 시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서 받은 편지는 이런 자아상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그녀라는 존재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 154~155쪽
모욕으로 인한 고통이 최소화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해보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들이 남을 모욕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런 조치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 운동과 혐오 발언 금지법 제정 등의 형태로 취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사전에 막지 못한 모욕에 대한 민감도 역시 낮추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낮은 자존감이 모욕에 대한 민감도를 키운다고 하니, 이를 낮추기 위한 확실한 방법은 자존감을 높이는 운동에 돌입하는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이런 운동이 시작되었다. (…) 심리학자 로이 F. 바우마이스터와 그의 동료들에 따르면 이 탐험은 머지않아 ‘국가적 집착’이 되었다. - 176~177쪽
모욕은 왜 고통스러운가? 우리에게 사회적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이런 욕구가 있는가? 이런 욕구를 가진 조상들―즉,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 속에서 다른 개인과 관계 맺는 것을, 사회적 서열에서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조상들―이 그렇지 않은 조상들보다 생존하고 번식할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 마크 리어리는 체내 수분 수치가 아닌 우리의 사회적 지위를 감시하는 또 다른 생물학적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 194~195쪽
“당신이 바라지 않는다면
남이 당신을 해할 일은 없다.”
책의 출발점이 스토아철학에 있으니 저자가 스토아학파의 모욕 평화주의로 결론을 이끄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모욕의 주된 원인인, 진화론적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 서열 경기에서 한 발 물러나 내적인 평안을 추구하는 것은 일견 ‘공자 왈’처럼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모욕에 반응하지 않는 행위는 거저 이루어지는 것일까. 결국 우리에게는 덕의 실천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저자는 스토아 철학자들의 모욕에 대한 언급을 통해 독자들을 스토아학파의 핵심에 자연스레 도달하게 한다. (마지막 장은 저자 스스로 모욕 평화주의를 실천하고 깨달은 결과물이다.)
누군가의 모욕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그건 모두 우리 자신 탓이라고 스토아학파는 말한다. 우리가 제대로 된 가치를 선택했다면 어떤 모욕도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모욕이 우리에게서 진정 가치 있는 무언가를 앗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스토아 철학자 무소니우스 루푸스는 말했다. “무엇이 정말 좋고 무엇이 정말 수치스러운 것인지 모르는 사람, 자신의 명예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이들은 누가 자신을 쳐다보기만 해도, 비웃거나 때리거나 놀리기만 해도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사려 깊고 현명한 사람은 철학자가 그러해야 하듯 이런 행동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수치심이란 모욕을 받아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욕적인 태도로 행동할 때 느끼는 것이라고 믿는다.” - 278쪽
그렇다면 스토아학파는 사회적 지위와 부가 아닌 무엇에 가치를 두었을까? 바로 덕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리가 고대의 덕목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용기 있고 도량이 넓으며 공정하고 자기 수양이 잘되어 있어야 한다. 그들은 또 평정에도 가치를 두었다. 여기서 스토아학파가 추구한 평정이란 마티니를 석 잔째 들이켜고도 끄떡없는 평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