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여행법

미셸 옹프레 · Humanities
1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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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인트라다(Intrada) 여행을 갈망하다 전에(Avant) 목적지를 정하다 욕망을 부풀리다 사이에 I (Entre-Deux I) 사이에 머물다 동안에(Pendant) 우정을 실현하다 기억을 매어 두다 순수함을 되찾다 나 자신을 만나다 사이에 II (Entre-Deux II) 한 장소를 다시 찾다 후에(Apres) 관점을 새롭게 하다 세상을 말하다 코다(Coda) 다음 여행을 꿈꾸다

Description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 여행하는 자 Vs 정착한 자 서로 대립하며 역사를 움직여 온 두 개의 흐름! 얼핏 마르크스를 연상시키는 이 명제를 정치경제학이 아닌 여행론의 화두로 삼는 게 가능할까? 『철학자의 여행법』을 쓴 미셸 옹프레는 “그렇다”고 말한다. 그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 대신에 꺼내 든 기준은 다름 아닌 ‘이동과 정착’. 이로써 인류의 복잡했던 역사는 ‘유랑하는 여행자들의 세계주의 대(對) 정착한 농민들의 민족주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간결하게 재정의된다. “이들의 대립은 아득한 신석기 시대부터 가장 현대적인 형태를 한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역사를 움직여 왔다. 이들의 대립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럽인을 비롯한 인류 대부분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10쪽) 두 세력의 대립을 묘사한 무수한 서사들 중에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구약의 카인과 아벨 이야기다. 그것은 양을 키우며 이동하는 사람(카인)과 농사를 지으며 한곳에 머무르는 사람(아벨) 사이의 대립이라는 것. 신은 아우를 죽인 카인을 저주하며 그에게 영원히 떠돌아다니라는 형벌을 내렸고, 이때부터 인류는 되돌아오지 않는 여행을 신으로부터의 처벌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통치 이데올로기는 유목민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며 폭력을 휘둘러 왔다. 정착한 아리아족의 이념이었던 나치즘은 방랑하는 유목민과 유대인을 적으로 지목했고, 러시아의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같은 이유로 남시베리아와 코카서스의 유목민들을 학살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 역시 사회가 거부하는 개인들에게 방랑, 거주지 박탈, 실업 같은 형벌을 내리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여행자들이 그만큼 사회에 대해 저항적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들은 이방인으로 겉돌며 살아 왔던 사회보다 자신들의 자유로운 성향을 더 사랑하며, 마치 연극배우처럼 살았던 도시의 안녕보다 자신들의 자율성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도시를 혐오했던 자라투스트라는 그러한 성향을 잘 보여 주었던 인물이다.”(16쪽) “여행을 선택하는 일은 스스로를 가두고 통제하던 것, 예를 들면 일이나 가족, 고향 같은 가장 명백해 보이는 족쇄에 대해서 형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17쪽) 여행을 저항으로 여기는 이런 관점은 서문에서 시작하여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재야 철학자이며 『반(反) 철학사』의 저자이기도 한 글쓴이의 이력을 감안할 때 결론은 자명하다. 떠남으로써 반역하라! 여행 전에 욕망을 부풀리고, 여행을 통해 자아를 만나고, 여행 뒤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말하라! 마르크스가 혁명이라는 집단적 실천을 강조했다면, 그의 명제를 차용한 미셸 옹프레는 여행이라는 개인적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자신이 유목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떠나게 될 것이며, 가장 최근에 끝낸 여행이 마지막 여행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이 우리를 데려가기 위하여 우리의 여정을 방해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154쪽) ‘사이(Entre-Deux)’ - 마법 같은 시공간 역사관과 더불어 이 책에 담긴 또 하나의 특징은 목차 구성이다. ‘짧은 서곡’을 의미하는 ‘인트라다(Intrada)’로 시작한 글은 ‘전에’, ‘사이에’, ‘동안에’, ‘후에’ 같은 여행의 단계들을 거쳐 음악이나 문학의 맨 끝부분을 뜻하는 ‘코다(Coda)’로 끝을 맺는다. 여행을 예술로, 즉 뚜렷한 테마와 여러 개의 악장과 현란한 변주로 구성되는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는 글쓴이의 사고방식이 목차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사이(Entre-Deux)’라는 독특한 단계다. 여행은 집의 현관문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순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 첫 단계는 ‘사이’에 존재한다고 그는 말한다. “더 이상 떠나온 장소에 있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우리가 갈망하던 장소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다. 공간적·시간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사회적으로 무중력인 상태에서 두 장소의 경계와 어렴풋이 연결된 채, 여행자는 마치 기이한 분위기가 감도는 섬의 해안에 다가가는 것처럼 ‘사이’ 속을 지나간다.”(49쪽) 이 매개의 시공간은 지금까지 익숙하던 인간관계의 법칙을 무시하고 새로운 법칙을 따를 것을 여행자에게 요구한다. 한편으론 우연히 마주친 여행자들과 (하이데거가 말한)‘수다’를 떨고, 다른 한편으론 문명의 기준이 사라진 상황에서 선천적으로 타고난 육체적 특성을 재발견하기 위해 애쓴다. 급격하게 주관성을 회복하며 스스로가 살아 있다는 기쁨을 깨닫게 되는 마법 같은 시공간이 바로 ‘사이’인 것이다. “‘사이’는 이곳도 저곳도 아닌 특수한 지리학, 뿌리 내린 것도 떠도는 것도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 고정된 것도 아니고 파악할 수도 없는 새로운 공간, 측정할 수도 흘려보낼 수도 없는 또 다른 시간, 안정적이지도 지속적이지도 않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54쪽) 상투적 여행론에 가하는 일침 ‘반역의 철학자’답게 글쓴이는 유명한 작가나 여행가들의 여행론에 대해서도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대목들이다. “효율적으로 순수한 여행을 하려면, 무엇보다 여행의 형태와 관련하여 과거에 가능했던 여행이 현재는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한탄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벗어 던질 필요가 있다.”(85쪽) “로마가 더 이상 로마가 아니라는 사실에 좌절한 여행 작가들의 글만 모아도 한 권의 애도 문집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 의해서 흉한 꼴로 변해 버린 사막에 대해 반세기 동안 한탄한 테오도르 모노도 바로 이런 경우이다.”(86쪽) “시대에 뒤떨어진 아주 오래된 형태의 여행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느림을 찬양하고, 빠름을 마치 모든 악의 근원이라도 된다는 듯이 증오한다.”(96쪽) 그는 지나간 과거 속에 존재하는, 따라서 우리에겐 금지되어 있는 장소를 갈구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한다. 나아가 “일시적으로 눈에 보이는 장소를 존재하지도 않는 영원성 속에 고정시키고 싶어 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89쪽)라고 반문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속도의 혁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허락해 주는 더 나은 것들을 인정하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한 지역의 언어를 배우고 현지에 머무르며 원주민의 삶을 경험하는 게 참다운 여행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대체 어떤 목적에서 그런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일까?”(79쪽)라고 되묻는다. 한 나라에 대한 이해는 얼마나 긴 시간을 투자했느냐가 아니라 때로는 순수한 주체성에서 비롯된, 짧지만 강력하고 비이성적이고 본능적인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본에 겨우 85일간 머물렀던) 롤랑 바르트는 극도로 민감한 감수성, 지진계와 같은 기질, 생기 넘치는 영혼, 신랄한 지성으로 일본에 대해서 (일본에 오래 살면서 에도 시대 문학에 대해 일본어로 정식 학위를 받은 서양인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더욱 깊이 있게 파악했다.”(81쪽)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6년 동안 일본에서 프랑스 대사를 지냈던 클로델이 시(詩)로 동양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경우도 있다. 때로는 예술가의 본능적인 눈이 힘겨운 지적 작업을 통해서 하나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지식인보다 훨씬 더 낫다.”(81쪽) “여행자는 이론적인 능력보다는 시각적인 능력을 더 필요로 한다. 시각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여행자, 즉 방랑하는 예술가는 마치 예언자처럼 보고 알게 된다. 자연스러운 충동에 의해서 아무런 설명 없이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여행자는 스피노자의 범주에서 세 번째 단계의 인식, 즉 사물의 본질에 대한 즉각적인 통찰과 직관을 실행하는 것이다.”(82쪽)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당연하게 여겨져 온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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