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차가운 세계를, 갈라진 세계를 용접하는 뜨거운 말들
“그늘이 넓은 나무”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철학자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바람이 담긴 말이다.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 ‘거리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 강신주는 어느덧 가지와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 가슴에 그는 몰래 폭탄 하나씩 넣어두는 것만 같다. 그것은 무언가를 파괴하기 위한 무기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무기보다 강한 폭발력을 지닌, 세계를 정화하는 작고 단단한 연꽃 씨앗과도 같다.
그리고 무심한 듯하지만 몸 안에 수많은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21년 동안 60권이 넘는 인터뷰 책을 출간했다. 그는 결핍과 허기 가득한 질문들을 주머니에 넣고 와서 철학자 앞에 가만히 놓아둔다. 두 사람의 치열하고 뜨거운 만남은 우리 시대의 찢긴 의식들, 갈라진 세계를 뜨겁게 용접한다. 좀 더 나이 들고 아픈 몸으로 만난 두 사람의 말과 생각은 “몸의 시간”을 통과하며 역설적이게도 더욱 힘 있어졌고 폭 넓어졌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혐오가 혐오를 부추기는 시대, 가족이라는 공동체마저 위태로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엽기적인 사건들, 팬데믹과 언택트 시대의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도 묻는다. 이에 더해서 강신주의 철학과 담론, 집필한 책과 작업 중인 책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쏟아놓는다. 이에 대한 답변을 통해 지승호는 “현상의 본질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다”라고 털어놓으며, 강신주라는 철학자가 “점점 더 본질을 파고들어 꿰뚫어가고 있다”고 긴 만남 후의 감회를 전한다.
“개인이 시장과 한 몸이 되고, 자본주의에 물든 이 사회에 강신주라는 치료제 혹은 해독제가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 책을 읽으시는 여러분과 함께, 강신주와 함께, 그리고 등불의 패밀리들과 함께라면 자유를 위한 싸움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공동체 의식의 회복을 위하여
강신주의 말과 생각은 불편하다. 내가 속한 세계가 “억압체제”이며 “거대한 요새처럼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현실을 까발려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과 생각은 뜨거우면서 동시에 상쾌하다. 사유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방향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고,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를 가능성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모든 가치를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어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자발적 노예, 출퇴근 노예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벤담적 사고를 지닌 이기적 개인이며, 모든 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로 포섭된다고 비판한다. 강신주가 드러내는 현실 속의 ‘나’는 이렇듯 무엇인가로부터 목이 눌려 있다. 이 불편함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강신주는 내 몸을 누르고 있는 형상을 들춰내고 그 압력을 온전히 느끼게 만든다. 다만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가능성 너머로 가는 실천의 길을 함께 제시한다.
“강자에게 복종하지 말고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다, 약자를 돌보는 것이 자유인의 자긍심이고 당당한 사람의 자긍심이라고 나는 말했어요. 어떤 강자라고 해도 그 사람이 힘이 세고 나를 억압한다고 하더라도 강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아야 자유인이라고 배웠으니까요. 당당하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공동체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고, 최제우가 말했던 하늘처럼 존귀한 님들의 공동체고,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들이 살고 있는 땅, 불국토(佛國土)예요. 원효가 꿈꿨던 불국토. 모두가 부처고, 모두가 하늘님인데 누가 누구를 지배해요. 누가 자유인의 목을 눌러요.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내 몸에 걸터앉을 수 없어요. 사자를 죽여야만 사자의 목에 발을 올릴 수 있는 거죠. 강자한테는 사자 같은 사람이어야 해요. 그것이 자유인의 전통이에요.” (316쪽)
강신주는 억압체제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가 “가슴속에 품어야 할 하나의 가치”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누군가를 지배하지도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라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타자와 소통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 소수 지배자가 되거나 그들 편을 들지 않고 지금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인문주의적 패밀리의 구축을 이야기한다. 결국 타인에 대한 애정과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할 부분은 특히 ‘스마트폰 사회경제학’과 ‘팬데믹과 언택트 시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강신주는 전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의 원인을 자본의 팽창과 세계화 그리고 몸의 로컬리티, 인간의 시간을 넘어서는 자본의 속도에서 찾는다. 그리고 여기서 “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전염병은 또 온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가속화되는 스마트폰 시장에 대해 깊은 우려를 전한다. 자본주의에서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그 필수품이 새로운 사치품을 만들고, 이 새로운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는 과정을 무한 반복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자연과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낡은 것은 버리고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향을 우리 사회는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있어요. 자본주의는 계속 신제품을 만들어서 사용가치가 다하지 않은 제품을 버리고 새로 사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산업자본주의가 작동하기 이전 시대에서는 어땠을까요? 낫이 다 닳아서 쓸모를 다했을 때 바꿨어요. 당연히 낫을 다량으로 소유할 필요가 없었죠. 집에 옷이나 신발이 쌓여 있지도 않았어요. 옷이 해지거나 신발이 닳을 때 옷이나 신발을 구하면 되니까요.” (125쪽)
강신주는 이러한 인간의 소유 욕망, 이기적 욕망에서 벗어나려면 각자가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유인의 정신을 가질 때 비로소 “타인 역시 존중의 대상 그리고 아낌의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또한 자유인들이 꿈꾸는 공동체의 이념은 노동하는 사람에게 생산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명령하는 상전을 뽑지 않는 것, 그리고 모든 대표자는 언제나 소환 가능하다는 원칙이다.
바람에 흩어지는 말과 생각들
강신주는 “억압체제 혹은 억압의 형식 자체를 응시했던 사람들과 연대하고, 앞으로 태어날 자유인들을 기다리는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은 억압체제의 지배 담론에 저항하는 ‘패밀리’의 구축이다. 그가 ‘등불의 패밀리’로 호명하며 연대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 최제우, 신채호, 로자 룩셈부르크, 기 드보르, 체 게바라, 카스토리아디스, 랑시에르” 같은 자유인들과 ‘파리코뮌의 전사들, 집강소를 지키며 산화했던 동학혁명의 농민들, 독일혁명의 전사들, 레닌과 트로츠키와 맞섰던 크론시타트 수병들과 시민들, 체 게바라와 함께했던 전사들, 68혁명에 참여했던 자유인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억압체제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익명의 동지들’이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꿈, 평의회 코뮌주의에 대한 꿈, 인문주의적 사회에 대한 꿈, 인간이 더불어 사랑할 수 있는 연대의 사회성에 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강신주는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로 불린다. 거기에 ‘바람의 철학자’라는 또 하나의 명칭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은 흔들림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스스로 꿈틀대며 끊임없이 이동하고, 세계를 쓰다듬으면서 동시에 자극하고, 구축된 질서를 흩어놓기도 하면서 생명을 움트게도 한다. 스스로를 “바람을 맞고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강신주는 그렇게 세계를 흔들며 또 다른 패밀리를 기다리고 있는 과정 속에 있다. 묘지 위를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시인 폴 발레리처럼 이 지독한 역설의 공간에서 굳어진 말들이 다시 흩날리기를, 썩은 자리에서 다시 풀이 자라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