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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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전깃불이 감춘 어둠을 만나다 미발표작 대거 발굴.수록한, 이연주 시세계의 결정본, 『이연주 시전집』 한번의 잠자리 끝에 이렇게 살 바엔, 너는 왜 사느냐고 물었던 사내도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왜 살아야 하는지 그녀도 모른다. 이연주, 「매음녀 1」, 부분. 제발 잊지 말아, 저 전깃불이 얼마나 큰 어둠을 감추고 있는지…… 이연주, 「신생아실 노트」, 부분. 이연주가 자신의 여성적 정체성을 분명하게 자각했던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치열성과 정직함으로 인하여 저절로 여성적 정체성의 추구라는 문을 향해 걸어갔던 모습을 확인한다. 좀더 버텼더라면, 그녀는 힘찬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그녀의 죽은 몸-잘린 혀 위에서 출발한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아주 잘 말하게 될 것이다. -김정란(시인) 환한 전깃불이 감추고 있는 커다란 어둠. 그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 만져지고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던 시인은 그 어둠에 대해 더 잘 말하기 위하여 가려진 어둠 그 자체가 된 것처럼 보였다. 시 「매음녀」 연작으로 문단과 세간에 화제를 불러 모았던 시인 이연주가 세상을 등진지도 20여년이 흘렀다. 그 오랜 시간동안 시인은 말이 없고 시인을 둘러싼 소문만이 무성하였다. 스캔들과 가쉽거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인 이연주의 이름은 너덜너덜해져갔다. 시간이 흘렀고 세상은 변했다. 몸부림치는 구절들보다 속삭이는 구절들로, 무거운 것들보다는 가벼운 것들로. 말장난이나 치며 비루한 삶을 견뎌나가자고 우리가 합의했던가? 이 나라에서 개인을 억압하는 국가의 폭력과 가장 쉬운 혐오/멸시 대상으로서의 여성의 실존적 조건이 부재한 적은 없다. 시인이 생의 끔찍한 측면에 지나치게 집착 혹은 의존하고 있지 않았는지 반문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시인은 바라보았거나 감내한 현실을 “고작 그 정도”로 밖에 시화(詩化)하지 못했음을 답답해했는지 모른다. 그 답답함에 대한 증거들은 남겨진 시편들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내부가 헐어버린 사원으로 가자”고 썼던 시인은 속편한 희망을 말하거나 요원한 구원을 기다리지 않았다. ‘시인’, ‘그녀들’이 되다 이연주는 단순히 ‘그녀들’을 동정하거나, ‘그녀들’의 비참을 보고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녀는 정말로 ‘그녀들’이 된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 그녀는 ‘그녀들의 육체들’이 된다. 얻어맞고 착취당하고 파먹히고 그리고 피를 빨린 뒤에 도시의 하수구에 내던져지는 혼이 없는 살주머니. 그 육체들은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일 뿐이다. 이연주는 그 육체들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었다. 그녀의 시적 자아는 스스로 매음녀가 되어 생의 바닥을 지렁이처럼 기어간다. 김정란, <이연주를 기억하며> 중에서. 그녀들을 동정하거나 보고하는 것이 아닌 ‘그녀들’, 나아가 ‘그녀들의 육체들’이 되기. 어쩌면 망각 되어가는 시 쓰기의 한 방법으로서의 ‘타자 되기’라는 방식을 통해 그 모든 의미에서의 총체적 폭력을 ‘불온하게’ 재현하고자 했던 시인. 그가 바로 ‘이연주’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우리는 기어코 ‘그녀들의 육체들’이 된 시인을 명징하게 만날 수 있다.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이연주, 「매음녀 4」, 부분. 유언, 혹은 예언으로 남은 시 쓰기의 현장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옷장 뒤 어디 옴팡한 구석에서 나는 것 같은, 거리의 골목골목에서 무엇이 물컥물컥 썩고 있는 것 같은 냄새 때문에,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쁘지, 기분이 나빠 견딜 수가 없구나. 이연주, 「외로운 한 증상」, 부분. 국가/자본에 의해 자행되는 성역 없는 폭력과 억압이 세련된 형태로 은폐되거나 고도화 되어 간다. 그에 발맞춰, 혹은 그보다 빠르게 우리의 감각들은 조금씩 더 무뎌져 간다. 우리가 예민한 감수성을 소유하지 못했다면 억압을 직접적으로 마주하거나 ‘알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 안의 신경질적 감각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살아가다 문득 우리를 둘러싼 ‘질서’의 세계가 끔찍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그 느낌의 근원을 추적하는 일. 시인 이연주가 남긴 시편들에는 그 추적하기의 치열함이 다다를 수 있는 살풍경들이 담겨있다. 그녀의 입을 통해 “낙엽이 되기까지”의 과정으로 진술되는 우리, 현대인의 삶을 보라. 모두가 습관처럼 어깨를 들먹이고 등불에서 빛을 훔쳐낸 자들은 고해소로 간다. 몇 십 알의 알약과 두어 병의 쥐약과 목걸대로 이용할 넥타이와, 유산으로 남기는 각자의 몫을 들고 바람은 액자의 틀을 벗긴다. 무수한 나뭇잎들이 떨어질 것이다. 엄숙한 햇살 한 점 밑에 나를 빠져나온 내가 뒹굴고 있다. 이연주, 「낙엽이 되기까지」 부분. 이런 프레임으로 세계를 바라보았던 시인의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가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은 거의 필연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세상에 남을 자신의 말, 혹은 말의 부스러기들(유언)을 시 쓰기라는 전략을 통해 끊임없이 고쳐 쓰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모든 폐기물들이 나와 함께 하수구를 흘러 내려간다 수런거리는 날들을, 내가 나를 덮고 온갖 찌꺼기들에 뒤섞여 유언 하나를 남긴다 땅 위에서는 아득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사람들의 아우성 벽을 쳐대는 희미한 혼령의 소리도 들려왔다 잃는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이미 바다의 틈 사이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죽은 쥐들과 살육당한 동물들의 뼈다귀와 독한 냄새를 피우는 배설물들과 나는 강을 건널 것이며 물고기들은 바다로 흘러 들어온 지상의 폐기물들의 살을 먹는 것이다 이연주, 「바다로 가는 유언」, 부분. 빗물받이 홈통 속을 흘러 내려간다 날은 몹시 어둡고 「넌 끝장난 거야」 번개를 동반한 우뢰가 불안한 내일을 알린다 까딱하면 머리통이 깨질 수도 어깻죽 하나가 달아날 수도 있다 거꾸로 내리꽂히듯 나는 쿠당 쾅쾅 주르륵 죽, 몸을 가눌 수가 없구나 어쩐담, 혈액은 이미 늙었고 쓰다 만 기록물들 차갑게 식은 내 살을 떠나고 있다 이연주, 「길, 그 십년 후 비 오는 날」, 부분 죽은 시인을 만나는 일 유언, 혹은 예언처럼 남아 있는 이연주의 작품들이 잊혀져가는 현실을 살며 최측의농간은 절실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행동하였다. 이연주를 두고 이렇게 잊혀지고 말 시인이 아니다 라는 말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나 누구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 시전집의 발간을 구체화 하는 과정에서 가장 지난하고 힘겨웠던 부분은 유족 ‘이용주’ 님의 소재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등기가 말소된 주소지를 찾아다니며 뜬소문에 불과한 이런 저런 말과 서류의 부스러기들을 부여잡고 허탕치길 수차례. 풀밭 동인 김진희 님의 제보를 통하여 극적으로 유족 ‘이용주’ 님과 연이 닿았을 때의 그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순간! 놀랍게도 이용주 님은 북디자이너로써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분이었다. 어려움 끝의 첫 만남에서 이용주 님은 시인과 관련한 이런 저런 추억들을 들려주셨고 시전집의 출간에 흔쾌히 동의해주시면서 직접 책의 디자인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