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우울증

크리스토퍼 레인
3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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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이나 ‘불안’ 등 감정의 양상이 외적인 잣대에 의해 과도하게 ‘질환’이나 ‘장애’로 탈바꿈되는 문제를 짚어보는 책이다. 꼭 약물로 치료해야만 하는 정신질환이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상담치료나 정신분석요법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줍음’이라는 감정이 과도하게 ‘질환’이나 ‘병’으로 진단되어, 약물치료가 남발되는 현상은 우려할 만하다. 책에 의하면 그 배경에는 신경정신의학계와 정신분석학계의 오랜 갈등과 주도권 싸움이 있었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프로이트의 전통을 따르는 정신분석학계의 입장은 불안은 심리적 억압에 따른 현상이다. 반면 신경정신의학계는 불안을 뇌신경계의 이상에 따른 생리학적 결과로 본다. 레인은 정신의학계 내의 오랜 갈등과 경쟁 구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 같은 결과를 양산했는지를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누렸으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평가한다. 크리스토퍼 레인은 그 동안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 미국정신의학협회 기록들과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온 제약업계 간부들의 비망록 내용들을 소개하며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희박한 과학적 정당성과 때로 우스울 정도로 빈약한 논리를 바탕으로 현재 수백 가지의 질병들-특히 수줍음-이 정신장애로 정의되고 있으며, 약물 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정신의학적 대변혁이라는 미명 뒤에 진상을 숨겨온 객관적 연구의 허상을 무너뜨리며, 험담과 속임수로 얼룩진, 더욱 놀랍게는 기업 스폰서들에게 종속된 정신의학계의 현주소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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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서문 - 수줍음은 어쩌다 병이 되었나? 1장. 정신의학 vs. 정신분석 - 불안을 둘러싼 백년전쟁 2장. 진단 전쟁 - 감정이 병이 되다 3장. 결정적 승리 - 수줍음이 병이 되다 4장. 소비자를 겨냥하라! 질병을 팔아라! 5장. 반동성 증후군 - 행복을 약속한 알약, 불행을 낳다 6장. 약물만능사회에 저항하라! 7장.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 * 주요 약어 목록

Description

“당신은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게 아니다! 당신은 아프다!” - 누가 이러한 주술呪術을 거는가? - ‘행복을 약속하는 알약’을 건네며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인가? 1970년대, 소수의 유력 정신의학자들이 비밀리에 모여 정신의학 진단 지침, 즉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DSM)의 전면적 개편을 단행했다. 그 개정과 대폭적 확대 작업은 나선철의 얇은 소책자를 묵직한 장서로 탈바꿈시켰다. 이후 우울증과 사회불안증의 진단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제약업계는 뜻밖의 횡재를 누리고 정신의학계 전반은 거대한 이해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책은 지금까지 베일에 감춰져온 그 내막과 원인을 처음으로 이 세상에 드러낸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퍼 레인은 그 동안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 미국정신의학협회 기록들과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온 제약업계 간부들의 비망록 내용들을 소개하며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 그 진실은 이러하다. 희박한 과학적 정당성과 때로 우스울 정도로 빈약한 논리를 바탕으로 현재 수백 가지의 질병들-특히 수줍음-이 정신장애로 정의되고 있으며, 약물 치료가 요구되는 질환으로 간주된다는 사실이다. 레인은 정신의학계 내의 오랜 갈등과 경쟁 구도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 같은 결과를 양산했는지를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누가 이득을 누렸으며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평가한다. 또한 정신의학적 대변혁이라는 미명 뒤에 진상을 숨겨온 객관적 연구의 허상을 무너뜨리며, 험담과 속임수로 얼룩진, 더욱 놀랍게는 기업 스폰서들에게 종속된 정신의학계의 현주소를 폭로한다. 프로이트를 삼킨 알약 - 신경정신의학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완승! 지난 7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우울증 진료환자의 ‘항우울제’ 투여횟수는 52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또한 최근 4년 사이 정신질환에 대한 진료비는 74퍼센트가 증가했다는 뉴스도 있다. 경기도 안 좋고, 세상은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좋을 일이 많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항우울증제 투여‘횟수’나 ‘진료비’가 급속히 늘어난 것이지, 우울증 환자나 정신질환 환자가 그만큼 늘어났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항우울제 소비량이 늘어난 까닭이, 과연 ‘질환’으로서의 우울증 환자가 늘어났기 때문일까? 혹시라도 ‘현상’에 비해 ‘진단’이 더 급속히 늘어난 것은 아닐까? 이 책 『만들어진 우울증 : 수줍음은 어떻게 병이 되었나?』의 문제의식은 ‘수줍음’이나 ‘불안’ 등 감정의 양상이 현대에 와서 외적인 잣대에 의해 과도하게 ‘질환’이나 ‘장애’로 탈바꿈되었다는 데 있다. 책에 의하면 그 배경에는 신경정신의학계와 정신분석학계의 오랜 갈등과 주도권 싸움이 있었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프로이트의 전통을 따르는 정신분석학계의 입장은 불안은 심리적 억압에 따른 현상이다. 반면 신경정신의학계는 불안을 뇌신경계의 이상에 따른 생리학적 결과로 본다. 유명세로 치자면 프로이트의 지명도가 훨씬 높지만, 오늘날 정신치료의 현장에서 그는 거의 퇴물 취급을 받고 있고, 그 대신 “육체적 근거들의 문제가 정신 장애를 낳는다”고 주장한 크레펠린이 이 분야의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판세의 역전은 1970년대 진행된 DSM-Ⅲ, 즉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의 3판 작업이 결정적이었다. (DSM-Ⅰ은 3달러 50센트짜리 나선철 페이퍼백에 불과했지만, 1980년 출간된 DSM-Ⅲ 이후에는 정신장애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정신과의사와 보험사, 변호사들의 필독서로서 수백만 부가 팔렸다.) 개정 작업을 책임진 스피처 박사와 정신의학자들이 하나의 ‘증상’을 ‘장애’로 판정 짓기 어렵다는 정신분석학계의 입장을 전략적으로 무시하고, 정신질환 카테고리를 늘여갔기 때문이다. 약을 팔기 전에 먼저 질병을 팔아라! 우울증을 비롯한 사회불안증을 진단하는 의학적 근거가 DSM에 의해 마련되자, 환호성을 지른 곳은 제약업체들이었다. 진단이 늘고, 그에 대한 약물 처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무궁무진한 시장이 새로 개척된 것이다. 제약회사의 광고 마케팅 전략은 치밀했다. (책 속에 포함된 20여 컷의 항우울제 광고 캠페인 이미지는 약을 팔기 전에 “질병을 만들어내면서” 시장을 넓히는 제약회사의 전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 그들은 우선 제품 자체를 홍보하기에 앞서 “진단과 치료의 촉진책으로서 기자와 고객들, 경우에 따라서는 의사들을 교육”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항우울제 ‘팍실(세로자트)’을 생산하는 스미스클라인 비첨 사(현재는 글락소웰컴과 합병하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사회불안장애 환자들은 자신들이 경험하는 것이 극심한 수줍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또 이것이 대중의 일반적인 오해이므로” 정신질환과 정신건강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다시 가르쳐야 했다. 게다가 스미스클라인 비첨은 ‘미국불안장애협회Anxiety Disorders Association of America’를 은밀히 지원했는데, 놀랍게도 이 협회 산하에 DSM을 발간한 미국정신의학협회나 평범한 시민단체로 알려진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가 있었다. 불안 없는 영혼이 더 위험하다 꼭 약물로 치료해야만 하는 정신질환이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상담치료나 정신분석요법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줍음’이라는 감정이 과도하게 ‘질환’이나 ‘병’으로 진단되어, 약물치료가 남발되는 현상은 우려할 만하다. 이 책 『만들어진 우울증』에 따르자면, 신경정신의학계와 제약업체의 공모가 ‘감정의 영역을 시장화’하는 데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은 명확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걱정과 불안은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다. ‘과도한’ 불안과 ‘건강한’ 불안의 경계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 “내향적인 사람, 성마른 사람, 염세주의자, 비관주의자, 소심하거나 냉담한 사람 없이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의 열망이 되레 비정상적인 것은 아닌가? 책의 결론처럼 불안 없는 영혼, 불안의 징후를 알약으로 박멸하겠다는 사회가 오히려 디스토피아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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