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불타는 늪 / 정신병원에 갇힘

김사과 · Essay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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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최정점에 선 도시 뉴욕에서의 삶을 신랄하게 뜯어보고 성찰한 ‘문제적 작가’ 김사과의 에세이. 뉴욕은 겉으로는 현란한 소비문화의 천국이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원본 없고, 실체 없이’ 비어 있다. 작가는 이를 ‘사방이 하얗고 부드러운, 창문 없는 방’인 정신병원의 독방으로 규정한다. 독방의 바깥은 랭보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묘사한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도시 파리와 같고, 그곳의 소시민들은 현혹된 채 절망과 환멸이 기다리는 도시의 늪으로 빠져든다. 팬데믹이 모든 것을 뒤덮기 바로 얼마 전, 어쩌면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에 작가는 뉴욕에 살았다. 이 도시의 소시민 혹은 이방인들처럼 작가는 그곳에 머물며 뉴욕의 음악, 패션, 음식, 쇼핑 등 소비문화를 욕망하고 감탄하고 조소하다 번뜩이는 통찰로 텅 빈 미국의 실체를 발견한다. 그곳의 인간은 총알이 발사된 후 박히기 전까지의 윤리적 진공 상태 같은 ‘미국적 평화’ 안에서, 마치 수족관 속 사나운 면상의 매혹적으로 반짝이는 피라냐 떼의 일시적 마비 상태 같은 모습으로 산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우아해 보이는 미국의 소시민들은 “머저리 같아 보이는 촌놈에게는 즉시 사나운 시선을 내리꽂는”다. 작가가 단언하건대, ‘이 촌놈’이 자신과 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냉정한 사람들로 미국이 가득 찬 것은 트럼프가 도착하기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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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첫 번째 편지 I 바깥은 불타는 늪 도서관 실패기 도시는 나의 것 윌리엄스버그에는 우유가 없다 카지노 도시 II You Only Live New Pillow Talk DHL과 나 청교도의 저녁 식사 그랜드센트럴마켓에서 훔치기 III 내전 전야 우산 속 세계 2020년대의 파시즘 밀레니얼들을 위한 레퀴엠 아메리칸드림의 분열증과 망상증 Is There Anything Good about America? 마지막 편지

Description

뉴욕 산책자의 광증과 망상이 근대성을 사유하는 단단한 문장들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기이한 에세이의 탄생 원본이 없는 완벽한 인공의 세계, 뉴욕의 정신을 탐구하다 자본의 최정점에 선 도시 뉴욕에서의 삶을 신랄하게 뜯어보고 성찰한 ‘문제적 작가’ 김사과의 에세이. 뉴욕은 겉으로는 현란한 소비문화의 천국이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원본 없고, 실체 없이’ 비어 있다. 작가는 이를 ‘사방이 하얗고 부드러운, 창문 없는 방’인 정신병원의 독방으로 규정한다. 독방의 바깥은 랭보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묘사한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도시 파리와 같고, 그곳의 소시민들은 현혹된 채 절망과 환멸이 기다리는 도시의 늪으로 빠져든다. 팬데믹이 모든 것을 뒤덮기 바로 얼마 전, 어쩌면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에 작가는 뉴욕에 살았다. 이 도시의 소시민 혹은 이방인들처럼 작가는 그곳에 머물며 뉴욕의 음악, 패션, 음식, 쇼핑 등 소비문화를 욕망하고 감탄하고 조소하다 번뜩이는 통찰로 텅 빈 미국의 실체를 발견한다. 그곳의 인간은 총알이 발사된 후 박히기 전까지의 (아직 누구의 잘못도 없는) 윤리적 진공 상태 같은 ‘미국적 평화’ 안에서, 마치 수족관 속 사나운 면상의 매혹적으로 반짝이는 피라냐 떼의 일시적 마비 상태 같은 모습으로 산다. 누구보다 정의롭고 우아해 보이는 미국의 소시민들은 “머저리 같아 보이는 촌놈에게는 즉시 사나운 시선을 내리꽂는”다. 작가가 단언하건대, ‘이 촌놈’이 자신과 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는 냉정한 사람들로 미국이 가득 찬 것은 트럼프가 도착하기 전의 일이다. 작가는 뉴욕에서 느낀 바를 최대한 날것으로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어떤 형식에도 구속되지 않는 글쓰기를 선보인다. 쇼핑을 얘기하다 느닷없이 뉴욕의 뮤지션이 등장하는 반사회적인 엽편소설이 튀어나오고, 과잉된 감정은 오탈자를 용인하며, 비판적 성찰은 예리한 유머와 뒤섞여 나오다가 이 도시를 굴러다니는 환멸과 절망을 비추고 그 이미지들이 점멸하는 시구들로 글을 맺는다. 모순의 도시 뉴욕을 산책하며 겪을 수밖에 없는 광증과 그로 인한 망상이 근대성을 사유하는 단단한 문장들 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기이한 에세이가 탄생했다. “뉴욕에서 먹었던 모든 음식에서는 완곡한 왜곡이 느껴졌다. 그것은 혹시 정치적 올바름의 맛이 아닐까?”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절대 꺼지지 않는 불길에 휩싸인 집으로 뉴욕의 이미지를 규정하며 19세기 랭보가 쓴 착란과 절망의 시를 호출하는 첫 번째 글을 넘기자마자, 이야기는 시끌벅적한 대낮의 뉴욕 도서관과 패션 잡지를 한 장 한 장 찢어 만든 것 같은 거리 풍경으로 바뀐다. 정키 소굴 로워이스트빌리지부터 “진정한 도시남녀들의 전시장, 유행의 패싸움장”인 첼시, 과거 마약중독자들의 치료소였던 이스트빌리지의 영기靈氣 가득한 집까지 거처를 옮겨 다녔던 경험을 풀어놓으며, 철저히 신분에 따라 살아야 할 동네를 정해놓은 뉴요커들의 동네 구획을 소개한다. 관념적인 그들의 원칙에 따르면 ‘자유로운 아시안 여류 소설가’로 분류되는 자신은 응당 파크슬로프 같은 곳에 살아야 한다는 식이다. 윌리엄스버그에 살면서는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미국’을 발견한다. 작가는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빌려, 뉴욕은 전 세계인들의 원본 없는 ‘파생실재’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윌리엄스버그의 한 카페에서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주문하면 진짜 우유가 들어간 커피는 마실 수 없다. 아몬드밀크나 라이스밀크, 소이밀크가 있을 뿐. 그곳은 현란한 인공 정원의 세계다. 직접 가보는 것보다 구글맵에서 실체를 더 잘 볼 수 있는 곳. 보잘것없다고 알려진 뉴욕의 식문화에서도 텅 빈 소비문화의 한 단면을 발견한다. 일례로 작가는 고급 백화점 지하에 푸드코드 대신 향수 가게가 들어찬 광경에 의아해한다. 도시문명의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진열되어 있어야 할 백화점의 지하에서 번듯한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을 보고는 능청스럽게 가설을 세운다. “뉴욕에서 먹었던 모든 음식에서는 완곡한 왜곡이 느껴졌다는 힌트를 따라서. 그것은 혹시, 정치적 올바름의 맛이 아닐까?” 거기서 작가는 풍요로움을 종합하는 것, 즉 총체적 풍요가 불가능한 것이 그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미국의 청교도적 윤리를 생각한다. ‘완벽하게 올바른 방식’으로 ‘허공’에 떠 있는 뉴욕의 마천루를 떠올리면서. 일찍이 앤디 워홀이 말했었다. 뉴욕에서는 음식이 아니라 분위기를 파는 경향이 있다고. 워홀을 인용하며 작가는 옐프Yelp 어플리케이션에 올라온 레스토랑 댓글을 읊어준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식사 경험이었습니다.” 식사는 모르겠고, 식사 경험이 위대한 미국에 달린 베스트 댓글이다. 작가가 거닌 곳들은 원본이 없는 땅, 그래서 완벽한 인공의 세계를 축조할 수 있는, 허공에 뜬 성채로서의 미국이다. 그곳에서 “탄생의 순간부터 주도면밀하게 어떤 것들이 도려내진 것 같은” 잘 자란 미국 중산층들의 “매끈한 결여”에서 미국의 미학을 본다. “그 부지런한 결여에서 파생되는 이해도 자각도 설명도 불가능한 슬픔이 미국적 감상주의의 핵심.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팔에서 주기적으로 전해져오는 고통 같은 것.”(본문에서) “거울 속 가짜 석양, 단 한 번도 활짝 피어나지 못한 스스로의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광경을 지긋이 바라본다.” 앞서 1, 2부에서 현실 세계로서 뉴욕이라는 공간을 발로 움직이며 소비문화를 다룬다면, 3부에서는 좀 더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정신을 들여다본다. 단순히 어느 한 진영의 문제가 아닌 미국 정치의 근본 문제와 더불어 소셜미디어를 포함한 거대 미디어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만드는 2020년대식 파시즘적 세계, 그리고 그 안에서 히피 세대부터 그들의 자식 세대인 밀레니얼들이 어떤 정신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세대론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살아남았다, 오롯이 혼자서. 그게 밀레니얼들이 가진 유일한 믿음이자 존재의 이유다. 생존은 밀레니얼들의 유일한 업적. 탄생의 순간부터 펼쳐진 무자비한 배틀로얄에서 살아 남았다는 것. 주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혼자서 고독하게 살아남았다는 이 멜랑콜리한 느낌. 그 기묘한 정서가 그들을 마비로 이끄는 것이다. 그들은 예감한다. 영원히, 끝없는 인간 사냥이 펼쳐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 사냥터에서 자신은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이 또한 함께한다.”(본문에서) 밀레니얼들에게 내려진 ‘꿈을 실현하고, 정신을 고양시키고, 끝없이 경험하라’는 긍정주의 강령들이 히피 세대의 망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인식은 흥미롭다. 평화와 사랑, 자연주의와 자유주의 같은 것들은 모두 정신병원에 갇힌 채 약에 취해 만들어낸 망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비전을 많이도 팔아치웠고, 그들의 자식들은 선대가 약에 취해 상상해낸 라이프스타일 속에 스스로를 구겨 넣는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 개념들은 현란하고 광폭한 이미지들과 리듬에 취한 언어로 해체되어 각 장이 마무리될 무렵 한 편의 시와 같은 구절들 속으로 모여든다. 현대의 도시를 거니는 광인의 주술처럼, 혹은 예언처럼 미국의 탄생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을 지나 지금 밀레니얼이 감각하는 대도시 뉴욕의 실체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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