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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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 블록버스터와 예술의 경계 컬트감독이자 흥행감독이며 영화계 거장이기도 한 팀 버튼의 인터뷰집이 국내 처음으로 번역되었다. 일러스트 동화집의 출간과 그간의 명성 등을 생각할 때, 이제껏 국내에 팀 버튼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단행본이 없었다는 것은 다소 의외다. 이 인터뷰집은 20년에 걸친 팀 버튼의 지난한 창작의 과정과 이제껏 감춰졌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준다. 그림을 좋아하는 내성적인 소년이 디즈니의 애니메이터 시절을 거쳐 할리우드에 입성하기까지, 그리고 <비틀쥬스> <배트맨>의 대성공으로 흥행감독이 된 후 블록버스터와 비주류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작가의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실렸다. 버튼은 우리 문화를 축복하면서 동시에 침을 뱉는다 <가위손> <크리스마스 악몽> <화성침공> <유령신부> 등 고딕풍의 블랙코미디, SF, 공포영화를 통해 기괴한 취향과 남다른 상상력을 표현하는 팀 버튼이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고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81~167쪽)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뷰어 브레스킨은 이렇게 쓴다. “자신을 ‘행복하고 운이 좋은 미친 우울증 환자’라고 말하는 팀 버튼은 진정한 몽상가다. 보통 우리 문화에서 찬밥 취급을 받는 만화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사람에게 ‘몽상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어쨌든 버튼은 현재 우리의 문화를 축복하면서 동시에 그 면전에 대고 침을 뱉는다. 그 점이 바로 그의 작품이 가지는 낯설지만 멋진 매력이다. 그는 화가 나 침을 뱉지만 그 침은 달콤하다.” 팀 버튼의 20년 세월, 14편의 인터뷰 이 책에 실린 14편의 인터뷰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20년의 터울을 두고 있다. 20년의 세월은 팀 버튼이 미숙하고 불안정하던 젊은 감독에서 차츰 생각이 깊고 여유 있는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앞쪽에 실린 인터뷰들에서 팀 버튼은 다소 방어적이고 신경질적인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는 게 무섭습니다. 항상 싫었죠. 뭐랄까, 제가 깨질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자신을 말로 표현하는 데 서툰 사람이고 ... 점점 실제의 자신과는 다른 모습으로 알려지고 ... 그건 슬픈 일이죠.”(79쪽) 그러나 후반부의 인터뷰에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가 하면(102쪽), 어린 시절에 품었던 남다른 판타지가 여전히 작품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인정(107쪽)한다. “제가 만든 영화 속 인물들이 저에게 가지는 의미 때문에 영화를 만듭니다. 사람들은 영화의 표면적인 의미나 만화 같은 특징들만 보기 때문에 그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죠. ... 모든 것에는 깊은 토대가 있기 마련이겠죠, 그러지 않고서 어떻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습니까? 영화를 만드는 건 대단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 뿌리 깊은 감정 없이는 할 수가 없어요. 그런 감정이 없었다면 저는 못해냈을 겁니다.”(90쪽) 또한 어린 시절과 부모, 연애, 가족 등 사적인 질문에도 통찰력을 가지고 답변할 수 있게 된다. “어린 시절에 고통을 많이 겪을수록 어른이 된 후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278쪽) “덕분에 제가 평범한 인간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괴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는 참 공통점이 많더군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이른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났죠.”(270쪽) 제도에서 살아남은 독창적 예술가의 전범 다소 의외일 수도 있지만 팀 버튼 인터뷰집은 아주 개성적이고 상처받기 쉬운 자아를 가진, 그러나 이 사회에 어떻게든 적응해 성공하고픈 사람들에게 공감과 ‘교훈’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읽다보면 팀 버튼에게는 오랜 세월 외곬으로 가꿔온 꿈과 신념도 있었지만, 이를 현실 속에서 지켜내려는 노력과 책임감 또한 강했음을 알 수 있다. “나와 세상 사이에 대립각을 세우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영화가 대규모 작업이라는 점을―사람이나 돈이 많이 들죠―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편입니다.”(234쪽) 인터뷰집의 대담들에는 쉽지 않은 과정을 겪고 오늘날의 위치에 오른 팀 버튼 개인이 그때그때 마주해야 했던 고민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감독이면서 동시에 독립영화 제작자의 자세도 유지하고 있는 한 남자의 참 모습이자 제도에서 살아남은 독창적 예술가의 전범이기도 하다. “저는 애매한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제가 스튜디오 시스템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고, 시스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운이 좋다고 이야기하죠. 하지만 저는 시스템에 속해 있지는 않습니다. 말하자면 아카데미 회원은 아니라는 의미죠. 시스템에만 폭 파묻혀 지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양쪽 모두에 친구가 별로 없기도 하고요.”(118쪽)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감독이 될 거라고 느꼈던 적도 없고요. 굳이 말하자면,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것을 통제하고 싶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항상 속으로 어떤 아이디어들을 통제해왔습니다. 영화감독이 된 것도 그런 충동 때문이었습니다.”(85쪽) 음침한 농담과 괴팍한 시적 상상력으로 신화가 되다 팀 버튼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딕풍 풍경과 악마 같은 광대,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외롭게 투쟁하는 인물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팀 버튼은 세계 영화사에서 하나의 신화적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예술 세계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극단적 이미지들의 상징 뒤편에는 평범한 미국의 교외 주택 지역에서 우울한 유년 시절을 보낸 내성적인 텔레비전 키드가 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영화들로 할리우드에서 성공하고, 비평적 인정도 받은 영리한 영화연출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 책에서 팀 버튼이 어눌한 듯, 비꼬는 듯, 진지한 듯, 농담인 듯 뱉어내는 말들의 조각과 몸짓의 흔적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영화뿐 아니라 현대의 문화적 지평 안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이 독특한 예술가의 진정한 내면에 이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