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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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꼭 한번 돌아가고 싶은 하루가 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의 작가, 미치 앨봄의 새 소설단 두 권의 책으로 한국에서만 150만부(세계 1,300만부)의 판매를 기록한 작가 미치 앨봄. 대단한 문학적 성취를 이룬 작가라 할 수는 없어도, 누구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새 작품 <단 하루만 더>는 그의 세 번째 책이자, 소설로는 두 번째 작품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어머니'. 가만히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름이다. 미치 앨봄은 이 만인공통의 주제를 매우 색다른 방식으로 엮어낸다. '삶의 상실감에 빠진 나에게 어느 날 어머니의 영혼이 말 걸어왔다'―작가는 이런 소설적 가정을 통해 사랑, 희생, 용서, 인연, 삶의 상처와 치유 등 우리들의 삶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가치들을 가슴 깊이 되새기게 한다. 미치 앨봄이 "죽음과 삶을 함께 끌어안는 따뜻한 휴머니즘 작가"(퍼블리셔스 위클리)로 평가받는 이유를 우리는 이 작품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다. ◆ 죽은 자가 산 자를 살게 하다 ─ 죽음을 통한 삶의 재발견죽음과 대면했을 때 우리 삶의 진짜 의미가 드러난다는 작가의 생각은 전작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에서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노교수가 옛 제자에게 들려주는 삶의 가르침("모리")이나, 남루한 인생을 살았던 놀이공원의 늙은 정비공이 죽은 후에야 자기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깨닫는 이야기("천국")를 통해 미치 앨봄은 '죽음에게서 도리어 위로받는 우리의 삶'이라는 역설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 책 <단 하루만 더>에서도 작가는 살아갈 의미를 상실한 주인공과 그의 죽은 어머니를 대면시킨다. 주인공의 망가진 삶의 원인이 그의 마음에 가시처럼 걸려있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혀내고, 그것을 어머니에게 용서받음으로써 그 역시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줄거리다. 물론 그 속에는 인간의 관계, 영혼의 구원, 삶의 본질, 가족의 해체와 결합 등 간단치 않은 주제가 숨어있다. 작가는 이 주제들을 '단 하루'라는 한정된 시간과 '어머니'라는 지순한 존재를 통해 제시함으로써 독자 스스로 감동적인 깨달음에 이르도록 안내한다. ◆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 아니다"죽은 사람의 꿈을 꿔본 적 있니, 찰리? 그리워한 사람과 꿈에서 만나는 것 말이야. .. 누군가 가슴에 있으면 그 사람은 결코 죽은 게 아니야.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도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단다."(188쪽)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린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주인공 찰리는 야구선수의 꿈도 이루지 못했고 아내와는 헤어졌으며 하나뿐인 딸은 주정뱅이 아버지가 말썽을 피울까 봐 결혼식을 알려 주지도 않아 사위 얼굴도 모르는 신세다. "철문이 코앞에서 닫혀 버리는 느낌"에 절망해 자살을 결심하지만 죽는 데에도 실패해 비참의 늪에서 헤맬 때 그는 이미 세상을 뜬 어머니를 만난다. 찰리의 환상이라고 생각해도 좋고, 죽음 직전에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흘러간다는 '임사(臨死)체험'이라고 불러도 좋다. 찰스는 어머니를 따라 옛 동네를 함께 걸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 안에 새겨진 부모의 흔적을 발견한다. 미국에서도 이혼이 드물던 1960년대, 찰스의 어머니는 마을에 한 명밖에 없는 이혼녀였다. 마을의 여자들에겐 경계의 대상, 남자들에겐 유혹의 대상, 아이들에겐 훔쳐보기의 대상이었고, 간호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고위 관리자의 '부적절한 행동'에 항의했다가 해고된다. 아직 어린 찰스는 그런 엄마가 부끄럽기만 하다. 하지만 "부모란 자식을 소용돌이 위로 안전하게 밀어 올리는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 아이들은 알 수가 없다. 찰스는 죽은 어머니를 만난 날, 자신과 여동생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어머니가 간호사에서 미용사로, 그리고 청소부까지 되었다는 사실과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 놓은" 부모의 이혼 사유를 알게 된다. 그 모든 정황을 알게 된 찰리는 어머니에게 줄곧 상처만 입혔던 과거를 괴로워하지만, 그런 찰리를 어머니는 따뜻하게 보듬고 용서한다.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은 그에게 결코 죽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이렇게 대화체로 진행되는 찰스의 이야기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는 책 끄트머리에 작은 비밀처럼 숨어 있으며, 이 반전을 통해 우리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인생의 강물에 우리가 운명적으로 몸담고 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 내 존재 안에 새겨진 "관계" 그리고 부모의 흔적"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평범한 게 뭔데 찰리?" "그냥 잊혀지는 거죠." "아니야 찰리, 아이들 덕에 우리는 잊혀지지 않지."(177쪽)이 작품은 한 서평이 표현했듯이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 너무나 강해서 죽음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에 바치는 헌시"이다. 그러나 미치 앨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을 가능케 하는 '관계'에까지 나아간다. 그것은 가족일 수도, 사랑 혹은 우정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은 그 시간이 지나갔다 해도 영원히 우리에게 머물러 있는 시간이다. 지나간 어린 시절의 추억은 추억 그대로 우리에게 살아있는 것이며, 추억 속의 사람도 내게는 현실로 숨쉬는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그 대상이 된다 해도 마찬가지다. 미치 앨봄은 이렇게 우리들 인간의 유한한 시간과 추억의 성질을 동양적인 인연과 관계의 문제로 승화시킨다. 그리움과 사랑이 인연이나 영원성의 다른 표현임을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소설은 늘 긴 여운을 가지고 우리 가슴에 남는다. ◆ 사랑과 희망의 크기는 후회와 연민보다 늘 크다"내 삶에는 취소하고 싶은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다시 살고 싶은 순간들이 많다는 뜻이죠. 그러나 바꿀 수만 있다면 꼭 하나 바꾸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딸 마리아를 위해서 말이죠."(237쪽)또한 이 소설에는 우리들 인간의 삶을 만들어내는 요소들에 대한 성찰이 깊이 배어 있다. 우리 삶의 한쪽 편에는 후회, 죄책감, 절망, 이기심, 자기 연민 등이 놓여 있고, 다른 편에는 사랑, 희생, 용서, 희망 등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전자가 우리 삶을 무자비하게 지배하는 그 만큼이나 후자도 역시 우리 삶의 분명한 현실들이다. 우리 삶이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삶을 패배시키는 힘만큼이나 그것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 혼자서가 아니라 관계에서 주어진다. 미치 앨봄은 이 작품에서 이러한 논법으로 우리 삶의 강퍅한 현실을 보듬어 안는다. 아픔과 연민과 회한이 가득한 상황으로 독자를 몰아가면서도 우리를 종내 따뜻한 눈물에 빠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당신에게 단 하루의 기회가 주어진다면?"이제 생각해보니 지나간 하루를 돌이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더군요. 그리운 사람, 사랑했던 사람과 단 하루만이라도 더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이미 그 하루가 주어져 있는 셈이니까요. 오늘 하루, 내일 하루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루는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하루죠."(248쪽)이 작품은 "단 하루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이라는 재미있는 가정으로 시작되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서 작가는 '하루'의 의미가 사실은 주인공에게 주어졌던 꿈과 같은 하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과거의 하루들이 오늘의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우리들의 하루는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인생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희생하는 하루 말이다. 미치 앨봄은 죽음과 삶, 과거와 현재, 후회와 용서, 부모와 자식 등등 무수한 반대항들과 시선들을 교차시키며 줄거리를 세심하게 짜 나간다. 가슴을 저미게 하는 감성적 필치 속에서도 인생의 깊은 지혜들을 너무나 자연스레 배치한다. 이 작품이 서툰 감상이나 상투적인 인생 훈화, 그 어느 쪽에도 빠지지 않고 문학적인 형상화에 성공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