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말하는 권력에 중독된 언어 이야기 우리는 보통 욕설, 막말 등을 언어폭력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언어폭력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쉽게 내뱉는 말 속에도 폭력이 존재한다. 긍정적이라고만 생각되던 ‘공정함, 성실함, 진정성, 권리, 순수’와 같은 말 속에 권력 기제가 작용하고 있다. 나도 모르게 권력에 중독된 언어로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권력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언어의 배반’이라 칭하기로 한다. 권력에 중독된 언어의 속살을 파헤치고, 더 이상 권력자를 대변하는 언어에 속지 않기 위해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뭉쳤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언어학과 정치학의 논리로 일상 언어의 속내를 드러낸다. 일상 언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공무원 시절 과장은 늦게 달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항상 저한테 ‘못해도 차관까지는 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요. 토요일, 일요일에 모두 출근하며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이죠.” 굴지의 기업가로 성공한 한 회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로 ‘성실함’을 꼽았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선생님으로부터 “성실해야 좋은 대학 가고, 성실해야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기업에서 신입 채용 기준으로도 면접관들은 “성실함을 보겠다”고 한다. 우리에게 ‘성실함’은 훌륭하고 좋은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기회주의자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독일 나치스의 한 명인 아이히만도 상부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었다. 이인국 박사나 아이히만의 성실함은 불편하기만 하다. 외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원자폭탄 개발의 책임을 맡았던 하이젠베르크가 상부의 명령에도 개발을 일부러 지연시켰던 그 ‘불성실함’이 더 좋은 의미로 다가온다. 진정한 의미의 성실함과 체제 순응적 성실함은 판이하게 다르지만, 구분되지 않고 일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언어의 순수한 의미는 퇴색하고, 사회정치적 논리에 따라 언어는 오용되고 있다. 잘못된 의미가 굳어지고, 권력가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침투하고 있다. 언어의 오용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용하는 것이 생각 속이나 시선 위에 머무는 가벼운 차별로 끝날 수도 있지만, 더 심각한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자기도 모르게 기성 이데올로기나 권력과 공범이 되어 소수를 외면하고 차별하는 다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사회적 약자라 하더라도 다수가 되어 언어 배반에 동참하는 순간 이미 약자가 아닌 것이다. 가해 행위의 책임은 무의식의 실수로 변명되며, 다수로 나눠지면서 희석된다.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고,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다른 인종이 아니라 틀린 인종으로 취급하고 학살했을 때가 그랬다. -본문 5쪽 권력에 중독된 일상 언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언어의 겉모양에 속지 마라! 우리나라 법관이나 경찰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공정한 절차에 따라 법을 집행했으며…”일 것이다. 그들은 공정한 절차에 따라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으며, 공정한 절차에 따라 삼성 비자금 수사를 종료했다. 겉으로 보기에 ‘공정함’이라는 단어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저자는 ‘공정함’의 속내를 살펴보기 위해 조선 시대에 있었던 재밌는 소송 사건을 예로 든다. 학봉 김성일은 공정하게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시 양반 이지도와 자신이 노비라고 주장하는 다물사리 간에 소송 사건이 벌어졌는데, 김성일은 명성에 어긋남이 없이 공정하게 조사하고 사건을 처리했다. 비록 그는 공정한 절차에 따라 그 직임을 수행했으나 당시 불공평한 노비제라는 사회 체제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양반 이지도의 손을 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본질적으로 비인간적인 노비제도의 혁파를 거부하고 사회적 불공정 체제를 온존한 양반 지배 계층의 그 기만성이 한낱 절차상 공정한 사례로 가려질 수 있을까요?”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지금의 우리 사회도 권력자들이 만든 불공정한 제도 안에 갇혀 있다면, 아무리 공정한 절차를 언급하며 법을 집행했더라도 그게 과연 공정한 일이었을까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공정 사회, 진정성, 국격, 권리, 평화’ 등의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이런 가치들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속내는 감춘 채 언어의 외형만 치장하고 권력 의지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편지를 주고받다 <언어의 배반>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같은 주제에 대한 언어학자와 정치학자의 각기 다른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정치학자는 언어가 권력에 중독된 역사적 배경이나 정치학적 분석을 내놓는 반면 언어학자는 언어를 기표(이미지)와 기의(메시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등 언어학적으로 언어의 왜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령 ‘좌빨’이란 단어에 대해 정치학자는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 정치에서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데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고의 수단”이라며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언어학자는 “‘좌빨’이라는 표현이 실체적 진실을 떠난 무의미한 기표임에도 그 이미지 속에 자신의 왜곡된 욕망의 기의를 끊임없이 삽입하고 타자에게 그 왜곡을 강요한다”며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언어가 품고 있을지도 모를 권력의 구조적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언어 표현을 끊임없이 따져봐야 한다. 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정치학자가 권력 구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설명을 하면, 언어학자는 언어 그 자체의 해체를 통해 구조를 분석해 나가기도 한다. 서로의 이해에 대해 공감하기도 하고, 조심스레 반문하기도 한다. 이것이 ‘언어’를 말하고,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언어학자와 정치학자가 ‘언어의 배반’을 극복하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