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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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려나온 한국 정치풍자의 레전드 진중권, 그를 우리 시대의 대표논객으로 만든 책! ‘지식 게릴라’ ‘전투적 지식인’ ‘한국의 대표 진보논객’ ‘풍자검객’ 등등 진중권에게 따라붙는 숱한 별칭들의 뿌리를 역추적하다 보면 15년 전 출간된 한 책과 만나게 된다. 바로『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전2권)다. 우파 지식인들이 구사하는 근엄한 논리에 감춰진 비논리를 발랄한 해체적 문체로 까발리는 풍자적 글쓰기는 가히 전무후무한 필법이요 통쾌한 전략이었다. 당시 이 책을 집어들었던 어떤 독자는 읽다가 너무 웃겨서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하고, 어떤 이는 방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고 한다. 진중권의 글을 가리켜 논리학 교과서에 실을 만하다고 한 강준만의 말이나,『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열 번 넘게 읽으며 글쓰기를 배웠다는 한윤형의 말처럼, 이제 이 책은 가히 우리 시대가 낳은 독특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초판 출간 이후 시의성에서 다소 떨어지는 몇 대목은 덜어내고, 새로 ‘뉴라이트’와 ‘일베 현상’에 대한 글을 더해 한 권으로 묶은 이번 개정판은 논객 진중권의 진면목을 새삼 일깨워준다. 더불어, 여전히 ‘극우 파시스트 연구’가 요구되는 우리 사회의 현재를 직시해보는 좋은 기회일 것이다. 상대의 칼로 상대를 치는 ‘되치기 논법’ 기막힌 언어유희와 패러디의 향연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책의 제목은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찬양 소설의 패러디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침 한번 뱉어줄게’라는 저자의 뜻이 담긴 제목이다. 하여 진중권이 이 책에서 우익인사들에게 원없이 선보인 ‘침뱉기’ 내공은 예컨대 ‘몽골인종주의+동양우월주의+군국주의라는 세 요소’로 이뤄진 조갑제의 박정희 신화가 전형적인 파시스트적 발상, 즉 ‘천재론’으로 포장된 오리지날 나치 이데올로기이자 천황절대주의를 외쳤던 일본 극우파들의 논리를 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들의 논리를, 이들 자신이 내세우는 논리로 반박”하는 방식으로 펼쳐진다. 비판의 대상이 한 말을 그대로 가져와서 그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박정희에게 대구사범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축복은 꼴찌로의 추락이었을지도 모른다.(조갑제) “꼴찌”를 해도 박정희가 하면 이렇게 민족의 “축복”이 되죠? “복” 터졌죠.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왜 그럴까요 그는 음지와 양지를 다같이 경험해 봄으로써 인간차별을 하지 않게 되고 인정의 기미를 파악하여 바닥 민심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조갑제) “꼴찌로의 추락”도 박정희가 하면 “인간차별” 않고 “바닥 민심”을 읽는 심오한 뜻을 갖게 되죠? 그 학교는 특별히 “꼴찌”한 학생에겐 장“바닥 민심을 읽”어 오라는 숙제를 내줬던 모양이에요. (-본문 10쪽에서) 파시즘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파시즘 이론 한마디 언급하지 않고 풍자로써 그 본질을 폭로하는 식의 글쓰기, 즉 극우 인사들의 주의주장을 담은 텍스트를 조목조목 반박해내는 ‘철학적 분석’이 현란한 풍자와 유머와 조롱의 문체에 실려 펼쳐짐으로써 수구우파들의 논리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극우 파시스트들의 ‘숭고’‘비장’‘운명’‘초인’‘영웅’ 따위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용어들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얼마나 ‘우스운 것’이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다. 이 글은 비판이 아니다. 이들(극우파)은 학적 비판의 대상이 될 주제가 못 된다. 그래서 난 이들을 문학적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 이들(파시스트)이 좋아하는 미학적 범주는 ‘숭고’다. 이들에겐 모든 게 비장하고, 모든 게 위대하고, 모든 게 숭고하다. (…) 대체 이들에겐 유머감각이 없다는 거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호르케를 생각해보라. 이 자는 ‘웃음’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을 불태운다. 상승기 부르주아들, 즉 전투적 민주주의자들의 미학적 무기가 ‘희극성’이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 이 비장하고 숭고한 봉건 파시스트들을 퇴치하기 위해 ‘웃을’을, ‘골계미’를, ‘풍자’를 무기로 사용하기로 했다. 호르케처럼 이들은 웃음을 두려워한다. (-본문 27-28쪽에서) 여기에다, 유쾌한 지적 유희의 극한을 보여주는 듯한 진중권의 솜씨를 맘껏 즐길 기회는 덤이다. 한 대목만 살짝 맛보자. 징, 징, 징기스칸…… 초원에서 들려오는 야성의 소리『조선일보』의 몽골전사들, 불패의 영장 조갑제 장군의 지휘 아래 개가죽 투구를 쓰고, 허리에 육포를 차고 이 사람, 저 사람, 엄한 사람, 피융피융 활을 쏘아대는 두그닥, 두그닥, 두그닥, 히히히히히힝. 이 분들이 탄 몽골산 준마. 몽골말들이라 이름이 좀 이상하네요. ‘이장희는 빨갱이다아아’ 함성을 지르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이동욱(昱) 騎兵의 말 → 昱騎之馬. ‘최장집은 빨갱이다아아아’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 돌진한다 힘이 빠져 결국 우리 전투마의 말발굽에 깔리고 마는 가련한 우종창 기자의 말 → 足下之馬. 이 꼴을 보고 분기탱천,『조선일보』덕에 ‘학자들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아아아’고 삑사리하는 몽골의 사오정 이한우 전사의 말. 말도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 可不之馬. 제 병졸들이 죽어 나자빠지는 것을 본 조갑제 장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말에 오른다. 턱을 가볍게 떨며 지긋이 아랫입술을 물더니 적개심에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초리로 힘차게 말을 몰아 돌진을 한다. 혈혈단기, 肉탄으로 적진을 향해 突진하는 조甲제 장군의 말, 그 이름 장하고도 장하도다. → 肉甲突之馬. 그마저 장렬히 戰死하면 이로써 전투 끝. 왜? 아, 그건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면 무서운 응집력을 보이다가도 그런 지도력이 사라지면 순식간에 흩어져 버리는 초원의 한 원리(조갑제)" 때문이지. 지휘관을 잃자, “강력한 응집력을 보이”던 몽골전사들 “순식간에 흩어져 버리”고 랄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흩어지는 잔당을 뒤쫓는 우리의 용감한 추적용 군마 → 逃亡歌之馬. 전사자로 뒤덮힌 몽골벨트에 지아비를 잃은 몽골여인들의 구성진 곡성이 울려퍼지면, 오열하는 이들 앞에 터벅터벅 다가서서 말없이 전사한 몽골전사들의 유해를 내려놓은 우리의 수송전용마, 그 유명한 → 鬱之馬. 그리고 은은히 울려 퍼지는 장중한 ‘전쟁 레퀴엠’. 울지마-하, 울긴 왜 울어-허, 그까짓 거 미련 때문에……. 戰士들은 戰死, 준마들은 포획. 국민 여러분,『조선일보』가 “말없는 다수”들을 ”대변”하게 된 건 이 참혹한 패배 이후부터래요. 준마를 모두 잃고 기껏 히히히힝 “말(馬) 없는 다수”를 대변하게 되었대요. 이한우 기자, 여태 농담하신 거죠? 논쟁할 수준이 안 돼서 딱 그 수준에 맞춰 응답해 드렸어요. 나 전화 끊어-여. 담에 또 봐여어. (-본문 459-450쪽에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진중권이 이 책을 썼을 때는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의 비극적인 역사는 이미 지나갔으며, 국가주의·전체주의·가부장주의 등을 내세운 극우 파시즘도 곧 사라져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최근의 정황은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그것도 희극으로. 자기 무덤에 침을 뱉으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다 늙은 유신정권의 주역들이 정치권에 복귀하고 있다.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고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이었던 김기춘이 비서실장에 임명된 것은 무서우면서도 우스운 일이다. 보육예산도 없는 서울 중구에서 박정희 기념공원을 만들려 하는 것은 세인들의 분노와 함께 실소를 샀다. ‘박정희 각하’와 ‘전두환 장군님’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이 ‘일베’라는 놀이터에서 히히덕거리고 있다. 국가기관의 정치개입과 언론통제 등 헌정질서를 어지럽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