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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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도 무감각한 도시인들의 잃어버린 생태감수성을 깨우다 한국 최초 영장류학자 김산하가 알려주는 생물다양성의 의미와 도시에서 자연과 공존하며 사는 법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은 말 그대로 다양한 생물과 함께 공존하며 산다. 열대우림에 사는 사람들은 뱀을, 북극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북극곰을 조심하지만 그들을 배제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 도시인들은 어떠한가?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어도 유리로 된 건물을 세우는 데 거리낌이 없고, 수원청개구리가 멸종 위기에 처해도 골프장을 만든다. 조류독감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며 수천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 하는 게 당연하고, 올림픽 경기장을 짓기 위해서라면 수백 년 된 원시림도 베어내는 게 당연하며, 생물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직업 선택의 자유 또한 축소된다. 생태감수성이 부족한 나머지 벌어지는 환경파괴와 생명의 사라짐, 이대로는 안 된다. 자연과 문명의 경계에 선 영장류학자가 생태감수성의 의미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법을 이야기해준다. ■ 책 내용 공룡화석에 넋을 잃던 아이들이 이 기형적인 생존경쟁에서 조금만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 중 한두 명이라도 커서 공룡과 관계된 일을 할 수 있다면, 이 땅의 직업은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 생물다양성이 확보되고 보존될수록 생태계가 건강한 것처럼, 사회도 여러 삶과 직종이 다양하게 공존할 수 있을 때 발전한다. -본문 중에서 당신도 생태감수성이 마비된 도시인입니까? 한국 최초 영장류학자가 말하는 생태감수성의 의미 꺅!! 길거리를 걷는데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린다. 치한인가? 유명 연예인이 나타났나? 아니면 누군가 복권이라도 당첨된 건가? 전부 아니다. 소리가 난 곳을 보면 비둘기 한 마리와 그 비둘기가 징그러워 어쩔 줄 몰라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에 대한 거부 반응은 비둘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령 버스를 탄 어느 중년 아저씨들은 창밖으로 잡초가 무성한 공터가 보이면 “저 땅은 노는 땅이야.”라고 말한다. 상가나 주택이 지어지지 않은 공터이기 때문에 풀이 자라고 작은 동물들이 그곳에서 뛰놀고 있어도 그 땅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노는 땅’이 된다.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도시에서 살고 있는 도시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가 인간이라는 단일종이 사는 곳이라 생각한다. 또한 야생에서 살 수 없는 우리 인간이 자연을 심하게 통제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보자. 조금만 더우면 에어컨을 가동하고, 조금만 추우면 보일러를 켠다. 낮에는 햇빛을 가리고 간접조명을 켜며, 밤에는 형광 조명으로 환하게 빛을 밝힌다. 비가 오더라도 바닥은 뽀송뽀송해야하기 때문에 지하철 역사에는 우산에 씌우는 비닐이 준비되어 있다. 흙으로 덮여있어야 하는 공원마저도 보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시멘트가 발린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밝으면 밝은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흙을 밟는 자연스러운 삶은 도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우리 도시인들은 점차 생태감수성을 잃어가고 있다. 생태감수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자연을 거부하고 파괴하는 오늘날의 현상에 대해 인간이 패권을 지닌 세상에서 경쟁력이 약하면 도태되는 것이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 아니냐고 잘못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글에서 직접 살아본 한국 최초의 영장류학자 김산하 박사는 진짜 ‘자연의 법칙’이란 단순한 약육강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은 무척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서로 경쟁하기도 하고 돕기도 하면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뽐내는 장소다. 그러나 도시라는 협소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은 생태감수성이 마비된 나머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진짜 ‘자연의 법칙’을 잊고 말았다.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생물다양성에 대하여 성격이 소심해서 커다란 덩치에도 불구하고 열대우림을 얌전히 돌아다니는 수마트라 코뿔소를 보자. 사냥을 많이 당해서 현재 약 100마리 정도 남은 멸종위기 종이다. 수가 적다보니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날 가능성도 적고, 그래서 연애를 하기 어렵다.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번식을 해야 한다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데 어쩌겠느냐고 하는 것은 수마트라 코뿔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생물들이 인간이 벌여놓은 일 때문에 연애할 상대를 잃고 서서히 멸종되고 있다. 멸종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일어난다. 인간들의 개발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서식지가 줄어든다. 살아 있다 하더라도 같은 개체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목청껏 구애의 노래를 불러도 상대를 만날 수 없다. 결국 혼자 남아 외로이 상대를 찾다가 생명이 다하고 만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인간은 다른 생물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침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평창 올림픽 경기장의 예를 보자. 스키 선수들이 내려갈 길을 터주기 위해 어마어마한 넓이의 원시림이 벌목되었다. 그 자리의 원래 주인은 나무들이지만 인류 화합의 대잔치인 올림픽에는 초대 손님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설악산은 국토의 5~6퍼센트에 불과한 국립공원으로, 이 공간만큼은 지지고 볶더라도 자연에 맡겨두기로 한 공간이지만, 교통약자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산양,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설악산 주민들에게도 케이블카 찬성 여부를 물어보았을까? 설악산은 이 동물들에게 집인데 말이다. 자신의 집에서 편하지 않은 다른 동물로는 지리산 반달가슴곰이 있다. 어렵게 지리산에 복원시킨 반달가슴곰은 삼겹살 때문에 ‘자연적응 실패’라는 딱지가 붙게 생겼다. 깊은 산속 대피소에서 삼겹살 냄새가 솔솔 풍겨도 절대로 접근하면 안 되는 줄 그 어느 곰이 알겠는가? 또한 입산 금지 구역까지 파고드는 등산객들 때문에 많은 동물들이 자기 집인데도 편하게 지내지를 못한다. 정조 대왕의 화성 행차를 지켜보았을 한반도의 주민, 수원청개구리 역시 골프장 때문에 자신의 집인 김포공항 습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인간 혼자서만 사는 지구가 아닐진대,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앞세우며 다른 생명과의 공존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러한 태도는 먹고사는 문제를 앞세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습으로도 발현된다. 돈벌이와 경쟁에서 이기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생물다양성이 확보되어야 생태계가 건강한 것처럼, 사회 또한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동물을 올바르게 대하고 뭇생명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다 도시인의 생태감수성을 깨우는 김산하의 야생학교 세월호 사건이나 다른 재난, 재해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돈벌이나 이익보다 생명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맞는 말이지만 그 생명의 가치를 인간에게만 협소하게 적용하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자연이 희생되는 것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결국 생명을 중시하려면 뭇생명을 중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것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쉽게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다. 야생의 자연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경제 등을 내세우며 우선순위 목록에서 아래로 내려 보내고는 했다. 하지만 우선순위 아래에 있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문제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이익을 우선으로 챙기는 사상 때문에 자연이 희생되고, 그렇게 저질러 놓은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지구온난화로 인해 올 여름은 최고온도를 연일 경신했다. 우리는 이상고온에 투덜대며 올 해 여름은 왜 이렇게 덥냐고 말했지만, 차라리 우리 세대는 나은 편이다. 지금 제동을 걸지 않으면 이상고온 같은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는 후세대에게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