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타듯 당신도 그러하기를
아늑하고도 농밀하고
아득하고도 정교하게
지상의 은밀한 밤, 그 매혹과 관능의 연대기
관능의 사전적 정의
국어사전을 펼치고 ‘관능[官能]’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1.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의 기능. 즉, 호흡 작용, 눈의 시력 따위. 2. 오관 및 감각 기관의 작용. 3. 육체적 쾌감, 성적인 감각. 하지만 관능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아마도 위의 의미보다 조금 더 복잡한 무엇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예컨대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감각의 작용 같은 것 말이다.
그리고 여기, 피상적 개념에서 벗어나 삶을 유지하는 감각작용의 총체로서 관능에 주목한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기억을 탐험하고 삶의 서사를 넘나들며 내면의 관능을 세밀하게 서술한 『관능적인 삶』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가장 지적인 에로티시즘을 경험케 한다.
‘관능적 글쓰기’로 세상의 밤을 사로잡은 그녀의 모든 것
지난봄부터 페이스북 사용자들 사이에서 화제에 오르며 파장을 일으킨 이가 있다. Sophie Ville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리는 이서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의 페이스북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방문자들이 찾아와 그녀의 글에 공감하고 열광한다. 사람들이 이토록 그녀의 글에 공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녀의 글은 솔직하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우리가 차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내뱉는 그녀를 보면 놀랍기도 하고 때론 경이롭기까지 하다. 또한 그녀의 글은 관조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과감히 자신을 드러내되 절대로 억지스럽지 않고, 자칫 외설스러워 보일 수 있는 부분조차 야릇한 매혹으로 다가오게 한다.
기억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글은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가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객관화된 시선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면, 이서희는 자신의 감정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그녀의 글을 읽으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진다. 그것은 마치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관능적 사랑 즉, 에로스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존재에 한 발 더 다가가게 하는 힘이 느껴지는 탓이다. 일견 간결하고 담담하지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치밀하면서도 관능적으로 써내려간 그녀의 글은, 그래서 읽는 이와 밀애를 나누듯 매혹과 기품이 공존한다.
당신에게 보내는 아늑하고도 농밀한 연애편지
나의 글은 연애편지입니다.
누군가를 향해 쓰는 줄기찬 귓속말입니다.
대상을 밝히지 않아 은밀한 글, 하지만
읽는 자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자신을 향한 글임을 알 수 있는 글.
모두 개인적인 속삭임이고 두드림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관능적인 삶』은 작가 이서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동안 써내려간 숱한 관계와 기억에 관한 글을 추스르고 기록한 책이다.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있는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보편적 공감을 끌어낸 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고요하고 흐릿하게 자리 잡은 기억의 저편, 온몸과 마음 깊은 곳에 잠겨 잊혔던 누군가의 흔적을 그녀의 글을 통해 보고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작가는 수많은 관계 속에 숨어 있는 매혹의 단서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는 점이다. 자신의 팔에 있는 하트 모양의 모반이 열린 사랑의 증표라고 여기고 연애적 인간으로 성장한 작가는 자기 안의 관능을 넘어서 타인의 숨은 매력을 찾아내 매혹하고 매혹당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삶이란 관능과 매혹을 관통하는 여정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작가는 다시 한 번 은밀한 부유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다. 외로운 밤, 그녀가 부친 한 통의 연애편지. 아, 어찌 이 열렬한 사랑의 메시지를 외면할 수 있을까. 그녀의 편지 속 세상은, 당신은, 얼마나 의외의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는지!
한국 여성으로서 험난한 사춘기와 청년기를 보내면서 도달했던 결론은 정말로 매력적인 여성이 되자는 거였습니다. 자신의 욕구에 솔직하고, 자유롭고,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으며,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여자. 섣불리 남들 눈치 보지 않고 그들 눈에도 괜찮은 여자일까 아닐까를 고민하지 않는, 나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여자 말입니다. 이런저런 실험도 해 보면서 나의 욕구에 눈을 뜨고 그것을 표현하고 누리는 행복을 배웠습니다.
도처에 저를 좌절로 이끄는 사건과 장치들이 널려 있지만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도 매력적인 여성으로 남고 싶습니다.
만약 하느님이 그곳에 계시다면 당신도 나에게 반할 만큼.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