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지배적 정치 이데올로기들,
즉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은
어떻게 세계 역사에 적용되고 작동했는가
이 책은 20세기의 지배적 정치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 보수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조명한다. 20세기 중에서도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자신의 저작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에서 ‘극단의 시대’라고 명명했던 1914년부터 1991년까지, 즉 제1차 세계대전 발발에서부터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다룬다. 물론 이 네 가지 이데올로기는 20세기 이전부터 계보를 가지고 있으며, 100년이 넘는 잉태 기간을 거쳐 태어났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20세기에 널리 스며들어 있어, 어떤 측면에서 모든 이데올로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가장 만연해 있던 근대 이데올로기였으나 이 책에서는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에서 계속 언급되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따로 분류하지 않는다.
저자 윌리 톰슨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상호 관련성에 주목한다. 사뭇 달라 보이는 이데올로기이지만 사실은 동일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으며 공통의 미래를 추구하기도 한다. 서로 상대방의 아이디어를 훔치기도 하고, 경쟁 이데올로기와 극명하게 반대되는 생각이나 행동을 의도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정체성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데올로기의 전개 상황에 대한 세밀한 접근은 20세기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네 가지 이데올로기의 지적 토대들을 다루지만, 무엇보다 이데올로기들의 역사적 적용과 작용을 고찰하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들에 대해 탐구하고 해석하지만, 이 이데올로기들을 당시 시대 상황에 연결하는 사회적 행동의 실체가 무엇인지 규명하고 있다.
당시 네 가지 이데올로기가 주되게 펼쳐지는 유럽과 러시아, 아메리카 등지의 역사가 비중 있게 조명되기도 하지만 동아시아에도 주목하고 있어 북한과 한국도 같이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제1부 대참사의 시대, 1914~1945
<제1장 경제 및 사회의 새로운 국면들>에서는 ‘이데올로기 시대’를 낳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물적 사회적 토대를 정리한다. 피바람 부는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업혁명이 세계를 탈바꿈시켜 놓은 이래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경제 위기가 터져 나왔다. 1929년 10월, 월스트리트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재난 수준이었던 경제마저 무너져 대참사가 닥쳤다. 일자리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 수십만 명이나 됐다.
<제2장 자유주의>에서는 20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를 조명한다. 당시 자유주의는 가장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정치 계급 거의 전체를 망라하는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제3장 보수주의>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뒤 보수주의가 새로운 동력을 찾게 된 과정을 파고든다. 전후 유럽 전역에서 일단 상황이 안정되고 국가 주민들이 공산주의 일반과 소비에트 정권의 공포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자, 보수주의는 힘의 근원들을 많이 되찾았다.
<제4장 공산주의>에서는 20세기의 공산주의가 현실정치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병리적 성격을 갖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소비에트의 공산주의자들이 이미 혁명의 길을 보여주었고,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혁명을 완수했으므로 그들은 옳아야만 했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소련은 세계의 마지막 희망이며, 따라서 모든 원수와 비평가들에 맞서 소련을 방어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심적인 우선 사항이 되어야 했다. 체제의 단점은 어떤 것이든 최선을 다해 무시되거나 부인됐다. 그만큼 모순적이고 비이성적이지만 같은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 바로 사후 ‘개인숭배’였다. 죽은 레닌은 이 개인숭배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이는 여전히 살아 있던 스탈린에게 자연스레 옮겨갔다.
<제5장 파시즘>에서는 파시즘의 대두와 확산을 다룬다. 1920년대에는 무솔리니의 파시스티(fascisti)를 모델로 만들어진 조직들이나 그것을 모델로 하려고 시도한 조직들이 유럽 전역에서 등장했다. 유럽 전역의 유산계급 사이에서 무솔리니는 거의 의심을 사지 않고 크게 인정받았다. 파시즘은 이 시기에 유럽 너머로까지 확산됐다. 파시즘의 대두는 보수주의 행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제2부 황금시대, 1945~1973
<제6장 경제 및 사회 여건>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복구 과정과 번영의 시기를 다룬다. 이는 미국이 패권국가로 자리 잡는 시기이기도 했다. 전후의 경제 기적은 1973년 중동전쟁과 석유 파동으로 끝나고 말았다.
<제7장 우파 자유주의>에서는 냉전 시대 미국에서 소련을 전체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비판하가 위해 조직적으로 등장했던 우파 자유주의를 다룬다. 이는 미국이 소련과 치렀던 문화전쟁의 첨병이었다. <제8장 좌파 자유주의>에서는 전후 물질적인 번영을 토대로 사회주의의 꿈을 실현하는 ‘복지국가’가 등장한 과정을 다룬다. 이 시기에는 경제가 중단 없이 계속 성장했고, 정부는 고용 유지와 사회복지에 전념했으며, 고용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인 노동시장이 배경으로 작용하여 물질적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전례 없이 크게 향상됐다.
<제9장 공산주의>에서는 전후 공산주의의 확산과 분열, 그리고 ‘공존’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이 시기 가장 극적인 상황은 1966년 마오쩌둥이 시작한 ‘문화대혁명’이었다 중국 바깥에서는 큰 영향이 없긴 했지만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대참사였다.
<제10장 보수주의와 파시즘>에서는 전후 보수주의와 파시즘을 다뤘다. 보수주의와 파시즘을 같은 장에서 함께 다룬다고 해서 두 이데올로기가 동일하다거나 필연적으로 가깝다는 것을 암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이데올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상당할 정도로 상호 조화를 이루었고, 연합국이 승리한 뒤에는 그 정도가 매우 다르긴 했지만 둘 다 다른 이들의 원한을 샀다. 공개적으로 선언된 보수주의가 공적 영역에 끼친 영향은 (영국을 제외하고는) 매우 제한됐으며 파시즘의 경우에는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정도다. 이 시기 눈에 띄는 것은 매카시즘이다.
제3부 위기, 1973~1991
<제11장 경제 및 사회 여건>에서는 베트남전과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변화를 서술한다. 베트남전으로 인한 과도한 전비 지출은 1971년 미국이 금본위주의를 포기하게 했으며 1973년 석유파동은 전후 번영을 사실상 종식시켰다.
<제12장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유착>에서는 신자유주의의 태동을 다룬다. 1980년 선출된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와 영국의 대처 정부는 이 두 나라에서 그러한 정책들이 시행될 수 있는 정치적 틀을 제공했다. 미국 행정부는 복지 축소 프로그램과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에 착수하면서, 동시에 기업과 자본에 대한 규제를 해제했다. 이로써 자본은 점점 더 범죄 조직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윤이 나오는 곳이라면 전 세계 어디든 휘젓고 돌아다니게 됐다.
<제13장 공산주의>에서는 소련 공산주의의 균열을 조명한다. 1968년 바르샤바조약군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 세계 공산주의 진영에 분열과 소란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다. 1956년 헝가리 침공에 이은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이 소련의 이데올로기가 신뢰를 잃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됐다.
<제14장 파시즘>에서는 파시즘의 부활 조짐을 다룬다. 1973년 이후 경제적 환경이 나빠지고 정치적 불안이 커지면서 신보수주의자들에게 기회가 왔듯이 파시스트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제15장 1991년 이후>에서는 포스트 공산주의 시대의 글로벌 세계를 다룬다. 각 국가와 체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