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루이 알튀세르
2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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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튀세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되는 유고집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다섯 번째 유고집은 다른 유고집들과 달리 알튀세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알튀세르 유고집의 탁월한 편집자이자 영어 번역자인 G. M. 고슈가리언은 현대출판기록물연구소IMEC에 위탁되어 있던 알튀세르 문서고에서 이 원고들을 발견해 작업한 뒤 2018년 9월 프랑스에서 최초로 출간했다. 한국어 번역 작업도 2개월 만에 이루어져, 한국 독자들 역시 거의 동시에 유고집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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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편집자 노트 ? 7 1장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무엇 11 2장 안토니오 그람시의 절대적 경험주의 53 3장 그람시인가 마키아벨리인가? 119 4장 그람시, 유로공산주의, 계급독재 151 미주 ? 162 옮긴이 해제 ? 189

Description

알튀세르의 미출간 유고집을 만나다 그람시를 정면으로 비판한 알튀세르 최초의 문헌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필독서가 될 것” 알튀세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되는 유고집 《무엇을 할 것인가?》. 이 다섯 번째 유고집은 다른 유고집들과 달리 알튀세르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었다. 알튀세르 유고집의 탁월한 편집자이자 영어 번역자인 G. M. 고슈가리언은 현대출판기록물연구소IMEC에 위탁되어 있던 알튀세르 문서고에서 이 원고들을 발견해 작업한 뒤 2018년 9월 프랑스에서 최초로 출간했다. 한국어 번역 작업도 2개월 만에 이루어져, 한국 독자들 역시 거의 동시에 유고집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1장 , 2장 <안토니오 그람시의 절대적 경험주의>, 3장 <그람시인가 마키아벨리인가>, 4장 라는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유고집은 유로공산주의의 철학적 뿌리로 제시된 그람시 사상에 내재된 난점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 역사 혹은 정치에 대한 그람시의 사상을 주로 ‘절대적 역사주의’ ‘절대적 경험주의’로 언급하며 알튀세르는 ‘상부구조론’ ‘헤게모니’ ‘시민사회’와 같은 그의 주요한 논의들을 치밀하게 검토, 비판한다. 생전에 출간한 텍스트들에서 그람시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언급한 것과는 달리 이 유고집에서는 그람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알튀세르는 그람시의 ‘절대적 경험주의’ 혹은 ‘절대적 역사주의’를 비판함으로써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의 이론가로서의 레닌을 재평가하고, 동시에 말년의 알튀세르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상가 마키아벨리의 중요성을 그람시와의 대조를 통해 부각시킨다. “그람시는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내다버리며……” 알튀세르의 그람시 비판을 세부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우리는 ‘유로공산주의’라는 노선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람시의 사상은 그 유로공산주의의 철학적 뿌리로 제시되었으며, 이탈리아는 물론 스페인, 영국, 일본, 미국 등 다수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한 바 있다. 다른 한편으로, 1976년 프랑스 공산당이 유로공산주의 노선에 입각해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을 포기하기로 했을 때 알튀세르가 이에 맞서 공개적으로 투쟁했다는 사실 역시 익히 알려져 있다. 알튀세르의 여러 유고집 중 하나인 《무엇을 할 것인가?》는 알튀세르의 바로 그 투쟁의 폭과 깊이를 매우 잘 보여준다. 이처럼 알튀세르는 그람시의 사상이 그 자신의 바람대로 전 세계의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는 정세 속에서 정치는 물론 역사에 관한 그의 논의가 실제로 무엇을 겨냥하는지를 상세히 검토하고 싶어 한다. 알튀세르가 보기에 그람시는 ‘절대적 역사주의’ 혹은 ‘절대적 경험주의’라는 빈약한 함정 속에 빠져 있다. 절대적 경험주의는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인식을 철학적 ‘이론’의 단순한 ‘적용’으로 개념화하는 심각한 위험을 피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분명한 이점을 갖지만, 그만큼이나 결정적인 이론적 취약점 또한 드러낸다. 구체적인 것이 역사적인 것이라고 제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것이 항상 변화한다는 점을 전제해야 하는데, 그것은 결국 역사를 단순한 변화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를 단순한 변화로 간주할 때 우리는 어떠한 함정에 빠지게 될까? 위와 같이 절대적 경험주의에 기초한 절대적 역사주의는 역사에 존재하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구조들 혹은 그 구조들이 그 구조들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들 아래에서 오랜 기간 지속된다는 점을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다.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라는 하나의 안정적인 구조를 말이다. 마르크스는 이 안정적 구조가 스스로를 영속화하는 수단으로 적대적 항들의 변화를 생산하는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점, 즉 안정적 구조와 변화의 유기적 관계를 이미 탁월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구체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결국 안정적 구조에 대한 이해라 할 수 있다. 흔히 그람시는 상부구조의 이론가로 매우 잘 알려져 있다. 하부구조의 한 요소로 선언되었던 ‘생산력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스탈린주의적 정책이 진행되었던 시대에 그람시는 상부구조와 국가의 역할, 그리고 스탈린주의적 정치에 대항하는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그람시의 상부구조론을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다. 알튀세르는 그람시가 하부구조에 어떠한 분석도 할애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상부구조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람시에게서 역사유물론은 말소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가 상부구조의 현상들, 즉 국가와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관심을 쏟은 첫 번째 이론가였다는 사실은 한편으로 그가 하부구조를 철저히 버려둠으로써 상부구조를 하부구조와 맺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성찰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따라서 그람시는 국가, 법, 이데올로기들이 ‘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있었지만 그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여기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답하지 못했다. 이런 분석은 ‘사태나 사물이 원래 그러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역사주의, 즉 하나의 경험주의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람시는 생산양식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을 ‘역사적 블록’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생산양식이 두 계급 사이의 근본적인 적대가 작동하는 장소인 생산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과 달리, 그람시의 ‘역사적 블록’은 ‘윤리적이고 역사적인 통일체’라는 완전히 다른 무엇을 환기한다. 그람시는 국가를 ‘유기적 지식인들’을 통해 ‘인민’에게 행사되는 헤게모니에 의해 통합된 윤리적 총체성으로 사고된 역사적 블록으로 개념화했지만, 이 인민들을 윤리적 국가의 ‘시민’으로 만드는 관념들과 실천들을 주입할 때 특정한 폭력이 행해진다는 점은 포착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이런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국가 형상에는 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한 것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모든 것이 상부구조로 환원될 뿐이다. 이러한 난점은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분하는 데에서 한층 더 심화되어 나타난다. 그람시는 공적인 연합체인 국가와 달리 시민사회를 국가 바깥에 존재하는 사적 연합체들 전체로 제시하며 표면적으로 국가와 시민사회를 구분지었다. 이 사적 연합체들은 공적이지 않고, 법/권리의 관점에서 국가와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사적 연합체인 시민사회를 ‘헤게모니적 장치들’로 형언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장치들의 구조라든지 기능에 대해 그 무엇도 말해주지 않는다. 마치 ‘우산은 비 내릴 때 쓰는 물건’이라는 (아무런 지식도 제공하지 않는) 동어반복처럼, 그람시는 ‘이 장치들이 헤게모니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헤게모니적인 것의 원인이 무엇인지, 헤게모니가 어떻게 보증되고 수용되는지 따위가 언급되지 않는다면 결국 헤게모니에 대해 말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렇듯 그람시는 헤게모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묘사의 층위에 머무르고 있다. 나아가 그람시가 보고 있는 국가의 두 가지 계기, 즉 국가에는 힘/강제/폭력/독재라는 계기와 다른 한편 헤게모니/동의/일치라는 계기가 존재한다는 인식에는 다음과 같은 모순이 존재한다. 헤게모니라는 계기가 가리키는 것은 결국 시민사회인데, 국가 바깥의 사적 연합체로 사고된 시민사회가 어떻게 국가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는지는 짚어내지 않는 것이다. 국가의 본질적 계기 하나가 국가 외부의 존재라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 대해 그람시는 어떠한 성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람시는 여전히 마르크스와 레닌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지 못했다. 그는 국가가 지배계급의 손에 쥐어진 도구이기도 하다는 점, 그리고 강제적 힘과 헤게모니에 대한 문제의식 뒤편에서 국가라는 수단에 의해 행사되는 계급독재라는 질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급독재에 대해 말하는 대신, 헤게모니 개념이 그 대체물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드는 쪽을 택했다. 시민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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