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이 지구시대 유랑자로
20여년간 기록해온 사진과 글을 담은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출간
그 첫 번째 책 『하루』
티베트에서 페루, 에티오피아 등
지구 인류의 다양한 하루를 담아낸
37점의 흑백사진과 이야기를 통해
‘내가 살고 싶은 하루’를 그려보기를
한국사회를 충격적 감동으로 뒤흔든 『노동의 새벽』의 ‘얼굴 없는 시인’이자,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으로 민주화운동을 이끈 ‘혁명가’ 박노해. 1998년, 7년 6개월 만에 감옥 독방에서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된 ‘지구시대의 유랑자’로 ‘다른 길’을 찾아 걸어왔다. <박노해 사진에세이>는 20여년에 걸쳐 기록해온 그의 ‘유랑노트’이자 길 찾는 이들의 가슴에 띄우는 ‘두꺼운 편지’이다. 그 첫 번째 시리즈는 『하루』. 2014년 펴낸 『다른 길』 이후 5년 만의 새 책이다. 『하루』라는 평범하고도 경이로운 제목 아래 티베트, 볼리비아, 파키스탄, 인디아, 페루, 에티오피아 등 전 세계 11개 나라에서 시인이 마주한 다양한 하루가 37점의 흑백사진과 이야기로 펼쳐진다.
감사하고 감동하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하루
“나는 하루 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 박노해
손에 핏방울이 맺혀가며 흰 목화솜을 따는 파키스탄 소녀들에게,
캄캄한 지하 갱도에서 세상의 빛을 캐는 볼리비아의 광부들에게,
덕분에 나의 하루도 있었다고 ‘감사’할 수 있는 하루.
만년설산 시린 바람을 맞으며 저 높은 곳에 희망의 씨알을 심어가는,
300년의 푸른 숲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한 그루의 나무를 키워가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벅차게 ‘감동’할 수 있는 하루.
먼 길을 걸어 하루치의 물을 지고 오는 에티오피아의 어머니처럼,
폭음이 울리는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해 들고 귀가하는 아버지처럼,
사랑과 희망이 있어 기꺼이 그 삶의 무게를 ‘감내’하는 하루.
박노해 시인의 사진 속 ‘하루’에는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살아가는 지구마을 사람들의 하루가 담겨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상이 저마다의 신성한 의식이 되는 그런 하루가 펼쳐진다. 우리가 지나쳐온 하루가, 우리가 진정 원하는 하루가 나직이 흘러간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선물인 하루, 그 하루의 경이를 마주하며 오늘 이 하루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한 편의 시와 같고, 한 권의 사상서와 같은 책
“‘하루’. 참으로 평범하고도 경이롭고, 흔하고도 무서운 말이 ‘하루’다. 내가 나 자신의 하루를 살지 않는다면 무언가 내 하루를 앗아가고 만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를 연구해 써먹어 간다. 모든 악의 세력이 지배하려는 최후의 목적지, 세계화된 자본권력이 점령하고자 하는 최후의 영토는 나 개인들의 내면과 하루 일과가 아닌가. 지금 우리의 내면과 일상은 소리 없는 전쟁터다. 여기가 이 시대의 최전선이다. 그리하여 일도 사랑도 혁명도 그 모든 것의 목적은 지금 여기의 하루, 진정한 나로 살아있는 하루다.” (서문 「긴 하루의 생」 중에서)
그의 사진은 그의 사상이다. <박노해 사진에세이> 첫 테마가 ‘하루’인 이유가 여기 있다. 우리의 하루가 지닌 혁명성이 바로 여기 있다. 그리하여 작고 평범한 듯한 우리의 하루하루는 그의 사진과 사상을 통해, 훨씬 더 고귀하고 장엄한 것임을 느끼게 한다. 이는 ‘박노해 사진전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사진캡션과 결합되며 그 감동이 증폭된다.
시인이 사진을 찍던 순간 마주했던 삶의 화두와 사진 속 사람들이 들려준 지혜의 이야기들이 단 10여 줄의 글로 응축된 37개의 사진캡션. 우리 곁에 늘 빛나고 있었지만 알아보지 못하여 지나쳤던, 그리고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향하여 시인이 바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또한 이 책은 새로운 삶의 혁명을 참구해온 시인의 고뇌와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한 권의 사상서와 같다. 그 글들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이 지상에 이렇게 많은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 있다고, 나에게도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고, 우리 함께 걸어가 보자고 손을 내미는 것만 같다.
박노해 시인의 일생을 압축한 서문 「긴 하루의 생」
한 사람의 생애란 결국 하나의 이야기이며, ‘에세이’란 그 이야기를 남겨놓는 것이다. <박노해 사진에세이>의 첫 책인 『하루』 서문에는 박노해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인 「긴 하루의 생」이 실려있다.
「긴 하루의 생」은 시인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시작한다.
“긴 하루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면, 붉게 물든 감 잎사귀와 시든 꽃잎이 떨어진 마당을 쓰는 건 나의 일이었다. 대빗자루 자국이 난 정갈한 흙마당에 햇살이 빛나면 아침밥을 짓던 어머니가 마루에 나를 앉히고서 ‘애썼다. 차암 곱지야’ 미소를 지었다. 물동이를 인 누나 뒤를 종종종 따라 샘터에 다녀와 찬물로 얼굴을 씻고 학교에 갈 때면, 내 머리 위로 고추잠자리와 참새들이 나를 놀리며 따라다녔다. 작은 도서관에서 허기진 배보다 더 허기진 꿈으로 까만 씨알 같은 활자들을 읽으며 시간도 잊은 채 가슴 콩닥이는 모험에 빠져들었다. 동무들이랑 바닷물에 뛰어들어 놀다가, 정미소 마당에서 기마놀이 닭싸움 공차기 구슬치기를 하느라 해가 저무는 줄도 몰랐다. 밥을 먹고서 숙제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좋아하는 소녀에게 몰래몰래 편지를 쓰고 지우며 비밀스레 가슴앓이 하는 밤이었다. 호롱불 아래 묵주기도를 하는 엄마 무릎에 누워 깜빡 잠이 들었다가 어둠에 빛나는 총총한 별들을 바라보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세상모르게 단잠에 들었던 날들. 그 시절 우리의 하루는 긴 하루였다. 가난도 불운도 어쩌지 못한 충만한 하루하루였다. 달콤하고 기름진 것도 없고 재미난 기계도 없었지만, 그 결여와 심심함이 오히려 인간적 풍요와 관심을 북돋던 시절. 그토록 빛나던 긴 하루가 우리에겐 살아있었다.” (서문 「긴 하루의 생」 중에서)
그리고 시인이 특별히 풀어놓는 또 다른 ‘긴 하루’의 이야기는 “하루의 무게”를 절감한 군사독재 시절 고문의 체험이다.
“군사독재에 맞서다 안기부 지하 밀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할 때였다. 50여 명이 24시간 교대로 자행하는 고문장의 하루하루는 의지도, 생각도, 투지도 작용할 수 없는 오직 비명만이 가득한 새하얀 시간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간단했다. ‘단 한 명만 불어라!’ 그러나 만약 내가 한 명의 동지를 불고 나면 그들은 최후까지 밀어붙일 것이었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그것을 뚫고 나가는 나의 주문은 단 한 마디였다.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나 여기까지 살아왔는데, 그래 오늘 하루가 나의 끝이다, 내 생의 마지막 하루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 더! 죽는 최후의 순간까지 하루만 더!’ 그렇게 24일이 지났던 것 같다. 인생이건 역사건, 결정적 대목은 이 한 마디가 아닐까. ‘하나만 더’에 맞서 ‘하루만 더’. 사람은 ‘하나만 더’에 타협할 때, 그 하나가 꺾일 때, 하나하나 결국 자신을 다 내어주게 되는 것이니. 그리하여 나의 사명은 단 하루다. 우리 희망도 사랑도 혁명도 단 하루다. ‘하나만 더에 맞서 하루만 더’.” (서문 「긴 하루의 생」 중에서)
‘하루’라는 한 의미가 나오기까지,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걸어온 긴 여정. 그 길을 동행하는 동안 내가 진정 나로 살아있었던 ‘긴 하루’, 그 많은 하루하루 가운데 그립고 눈물 나는 ‘긴 하루’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아트프린팅과 영역글 동시 수록
박노해 시인은 처음부터 ‘흑백필름 카메라’라는 쉽지 않은 작업의 조건을 선택했다. 줌이 되지 않는 수동 카메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