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오르세미술관은 왜 19세기 예술 작품만 소장하고 있을까?
모더니즘 작품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고백이다!
하지만 개인이 속한 시대를 이해해야만
우리도 그 예술가의 창조정신을 감각해 낼 수 있다.
● 오르세미술관은 왜 19세기 예술 작품만 소장하고 있을까?
19세기는 인상주의, 상징주의와 같은 중요한 예술 사조를 비롯하여 고흐, 세잔 같은 거장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다. 그 가운데서도 왜 특히 프랑스에서 이러한 모더니즘 예술이 꽃을 피웠을까? 무엇보다도 ‘개인성’과 ‘다양성’이 어우러진 결과이기도 하다. 모더니즘 작품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고백이다! 하지만 개인이 속한 시대를 이해해야만 우리도 그 예술가의 창조정신을 감각해 낼 수 있다.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예술가가 ‘개성과 고유성’을 꽃피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개성 있는 상상력을 존중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과감한 도전은 꼭 예술가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꿈에도 적용”된다. 이것이 바로 예술 공부를 하는 이유다!
대결의 역사가 있으나 승자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모든 목소리에 허용된 자리, 당연히 상반될 수밖에 없는 각각의 가치와 다양성 을 인정하는 곳. 제가 생각하는 오르세의 특징입니다. 오르세미술관 작품에 이런 특징이 생기게 된 이유를 저는 ‘개인의 탄생’이 있었던 시대 덕분이라고 봅니다. 오랜 시간 예술이 지켜야 할 규범이 고정되어 그림은 역사와 신화, 종교만을 주제로 하고 색과 구성에 혁신이 없었던 것은 예술을 향유하는 계층이 소수였고 예술 감상이 그들의 계급과 지위를 보여 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견고하던 이 체제 속에 예술은 학습해야 하는 것, 교양은 쌓아야 하고 전통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었죠. 혁명의 시대를 거쳐 더 많은 사람들의 권리를 가지는, 인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이 오자 예술도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주장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시대,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개인’이 점차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시대. 오르세는 바로 그 시대를 담당하고 있지요.
―『안현배의 예술수업 1: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 모더니즘』에서
●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라!
문화사학자 피터 게이는 너무도 다양해서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모더니스트들의 공통점으로 “관습적인 감수성에 저항하려는 충동”을 꼽는다. 『예술수업』은 이처럼 저항정신으로 무장한 혁신가들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안현배 미술사학자는 인상주의 그림들에 대하여 “밝고 생생한 색깔과 그 색깔을 과감하게 튀어오르도록 배열한 구성의 파격성,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듯 보이는 공간 사이에 채워 넣은 공기의 흐름. 바로 그것은 주제의 선택과 표현,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혁신이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한 혁신은 ‘전통에서 출발’하거나 ‘전통의 극복’ 위에서 가능하다. 우리가 예술 공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각가 장 밥티스트 카르포의 「우골리노」는 “그리스 조각 라오콘의 격정과 조화를 이해했고 제리코의 파괴력과 삼각형 구도의 틀을 잘 소화해” 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품이다. 앙투안 부르델은 자신의 조각 작품 「헤라클레스」에 대하여 “나는 피와 뼈와 살과 근육으로 표현된 인간을 묘사한 전통적인 방법을 넘어서는 형태를 만들어 내길 원했고, 이것은 그 질문에 관한 야심 찬 결과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원근법을 거부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탄생시킨 마네의 도전정신은 스페인의 바로크 미술에서 나왔다.
이탈리아 전통을 따르는 당시 프랑스 화단과 다르게, 스페인 미술은 인물의 표정이 강조되고 단순하지만 힘 있는 표현이 특징이었다. 생략된 수많은 세밀한 묘사들 대신 강한 주제 의식을 보여 주는 스페인의 인물화들을 보고 마네는 자기도 저런 그림을 그리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안현배의 예술수업 1: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 모더니즘』에서
● 미술사학자가 들려주는 예술과 사회 이야기
어떤 개인도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에서 분리될 수 없다. 모더니즘이 특히 프랑스에서 꽃 피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랑스혁명이 가져온 근본적인 사회심리학적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에 저항하려는 움직임과 그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려는 열정이 혼재하면서 다양한 욕망이 꽃을 피우게 된다. 저자는 전통을 고수하려고 했던 토마 쿠튀르의 「로마인의 타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이 그림은 정치적으로, 또 정서적으로도 1847년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기술의 발전과 경제적인 풍요가 가져오는 변화가 지금까지의 전통과 문명을 붕괴시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계급 간의 불균형으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혁명의 예고 등을 내포한 사회의 공기가 로마의 난교와 쇠락이라는 주제에 담겨 표현되는 것이다.
―『안현배의 예술수업 1: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 모더니즘』에서
『안현배의 예술수업』은 단순히 예술가 개인의 역량에만 집중하지 않고 개성과 혁신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인 배경에 대해 놓치지 않는다. 그러한 성찰은 예술가처럼 혁신을 꿈꾸는 우리에게 지금 시대에 어떤 도전을 해야 하는지 고찰하게 해 준다. “19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열린 모더니즘의 시대에는 자신만의 색깔이 없으면 절대로 성공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은 바로 우리 시대와도 겹치기 때문이다. 점점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져만 가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의 도전정신일 것이다.
끊임없이,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시험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늘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것, 세잔의 예술은 평생 그랬다. 이후 파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 고향으로 내려가 친구들을 실망시켰다지만, 또 귀향해서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경제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지만 그의 성실한 실험은 멈춘 적이 없다. 같은 시대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던 세잔의 본질은 진정한 예술가 그 자체였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현배의 예술수업 1: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 모더니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