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오렌지빛이랄지

이상우 · Novel
3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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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문장과 독보적인 스타일로 한국문학에서 고유한 위치를 점한 소설가 이상우의 신작 소설집 『핌·오렌지빛이랄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수록작 「핌」과 「오렌지빛이랄지」를 공동 표제작으로 삼은 이번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작품에 각각 대응하는 이미지가 앞뒤로 삽입된 양면 책 커버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꽃나무와 지면 바깥으로 달려 나갈 듯한 바이크 이미지는 이상우가 『핌·오렌지빛이랄지』를 통해 그려 낸 세계의 모습과 꼭 닮았다. 선명한 과거와 텅 빈 미래 사이 인물들의 끝없는 헤맴으로 가득한 시간의 흐름이나 가상인지 실제인지, 환각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공간적 배경은 금세 어디론가 솟구치거나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핌·오렌지빛이랄지』에 수록된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흔적을 직간접적으로 감각하고 좇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래로부터 과거로 추방당한 난민, 그와 기억이 동기화되는 순간만을 바라며 연인의 데이터를 찾아 헤매는 기병대, 기병대의 도망을 돕고자 했던 형사 등 각 작품의 인물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반복되며 독자들로 하여금 특정 인물보다는 그들이 엮여 든 세계 전체를 조망하게 만든다. 인물들이 위치한 좌표 사이사이로는 산발적인 기억과 중요한 부분이 훼손된 이미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음악이 흘러들며 장면마다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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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머리 전달 함수 5 졸려요 자기 15 핌 55 좆같이 못생긴 니트 조끼를 입은 탐정 137 응우옛은 미래에서 왔다 159 레이 트레이싱 187 배와 버스가 지나가고 193 오렌지빛이랄지 247

Description

“바다 전부에 내리고 있는 빗소리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닿고 있을 것이다.” 흐르고 마주치며 희미한 현재를 살기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분명한 과거를 바라보기 찰나와 영원 사이, 가상과 실제 사이 텅 빈 미래를 기다리기 감각적인 문장과 독보적인 스타일로 한국문학에서 고유한 위치를 점한 소설가 이상우의 신작 소설집 『핌‧오렌지빛이랄지』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수록작 「핌」과 「오렌지빛이랄지」를 공동 표제작으로 삼은 이번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두 작품에 각각 대응하는 이미지가 앞뒤로 삽입된 양면 책 커버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꽃나무와 지면 바깥으로 달려 나갈 듯한 바이크 이미지는 이상우가 『핌‧오렌지빛이랄지』를 통해 그려 낸 세계의 모습과 꼭 닮았다. 선명한 과거와 텅 빈 미래 사이 인물들의 끝없는 헤맴으로 가득한 시간의 흐름이나 가상인지 실제인지, 환각인지 현실인지 모호한 공간적 배경은 금세 어디론가 솟구치거나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다. 『핌‧오렌지빛이랄지』에 수록된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흔적을 직간접적으로 감각하고 좇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미래로부터 과거로 추방당한 난민, 그와 기억이 동기화되는 순간만을 바라며 연인의 데이터를 찾아 헤매는 기병대, 기병대의 도망을 돕고자 했던 형사 등 각 작품의 인물들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반복되며 독자들로 하여금 특정 인물보다는 그들이 엮여 든 세계 전체를 조망하게 만든다. 인물들이 위치한 좌표 사이사이로는 산발적인 기억과 중요한 부분이 훼손된 이미지, 번지수를 잘못 찾은 음악이 흘러들며 장면마다 수많은 질문을 남긴다. 기억은 한 개인만의 소유물일까, 교체 가능한 데이터일까? 행운처럼 생겨나는 우연하고도 결정적인 마주침은 삶에서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고 체념해야 하는 걸까, 그것이 다시 가능해지도록 애써 봐야 하는 걸까? 이상우는 독자들이 고른 선택지에 따라 장면들이 달라지는 소설(「핌」), 화자의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들이 문장 사이사이 삽입된 소설(「오렌지빛이랄지」) 등의 형식 실험을 통해 독자들에게 일종의 체험을 제공한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의 전체를 조망하며 순간순간 고개를 내미는 질문들을 직접 겪어 내 보기. 『핌․오렌지빛이랄지』를 읽는 일은 곧 우리의 세계를 구성하는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신비를 몸소 감각해 보는 일과 같다. 죽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오늘 『핌‧오렌지빛이랄지』 속 인물들의 친구들은 그들의 곁에 있질 않고 막 너머에 존재한다. 죽음이 ‘영원히 그 대상을 직접 만나지 못함’을 의미한다면, 막 너머의 친구들은 곧 죽은 친구들이다. 인물들은 갑자기 사라진 친구의 실종 순간이 담긴 CCTV를 무한정 돌려 보기도 하고(「머리 전달 함수」), 동면 인간의 기억 복원을 위해 과거로 추방된 상대의 기억 데이터를 헤집기도 하며(「핌」), 자신이 출연한 영화의 음악 제작자가 클래식 전공자였음을 영화 화면을 통해 짐작하기도 한다.(「오렌지빛이랄지」) 이때 인물들은 막 너머의 친구들을 추모하는 대신 기억 속에서 그들을 치열하게 되살린다. 친구가 존재하는 곳이 영원한 과거인지, 다가올 미래인지 알 수 없기에 인물들은 친구와의 재회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인물들은 그렇게 친구들을 떠올리고 바라며 죽음과 함께 산다. 이는 언뜻 불가능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핌‧오렌지빛이랄지』의 인물들에게는 영원한 현재다. 엉뚱한 곳에 재생된 음악 『핌‧오렌지빛이랄지』의 모든 작품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다. 디제이가 골라 튼 곡이거나, 음악대학에서 흘러나오는 합주이거나, 영화에 삽입된 음악이거나, 주인공의 흥얼거림이거나. 음악이 흐르는 장면에서는 청자의 감상이 때때로 함께 튀어나오는데, 인물들의 반응으로 미루어보아 음악이 영 엉뚱한 곳에서 재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같이 구린 음악을 트는 동료 디제이”(「졸려요 자기」)라는 동료의 평, 그런 음악은 “제발 너 혼자 미술관에서나 틀라는” 작곡가를 향한 영화 제작자의 항변, 음대 건물에 “미친 수준의 연주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울리고 있는데도 1층에서 테이블 축구 게임을 돌리고 있는 학생들. 음악은 기대에 비해 수준이 한참 미치지 못하거나, 그 용도에 어울리지 않게 만들어졌거나, 마땅한 청자를 갖추지 못한 채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을 흐르고 있다. 어느 누구의 기억 속에도 남지 않겠다는 듯이,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흐르는 순간 그 자체에만 존재하겠다는 듯이. 펼쳐진 바다에 내리는 비처럼 죽음을 곁에 두고 지내는 인물들은 현재보다는 영원을 산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음악은 지독한 찰나 속에 존재한다. 이상우의 소설은 영원과 찰나를 끊임없이 교차시키며 진실에 가까운 삶의 감각을 창조한다. “스노클링 마스크를 벗으면 온몸 위로 바다 전부에 내리고 있는 빗소리처럼 그들은 서로에게 닿고 있을 것이다.”(「오렌지빛이랄지」) 하나의 빗방울이 바다의 한 지점과 만나는 순간은 다시 반복될 수 없을 찰나이지만 이는 바다가 다시 비가 되고 비가 다시 바다가 되듯 영원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빗방울처럼 찰나와 영원 사이 어디쯤에서, 문학만이 해낼 수 있는 실감을 선사하는 이상우의 소설을 읽는다. 흐르고 마주치고 기다리며 소설을, 그리고 삶을 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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