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굉음은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
나를 열어 당신을 맞이하는 포즈
높고 낮고 넓고 깊은 색의 끝에 다다른 하나의 색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시인 조용미의 여덟번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이 문학과지성 시인선 602번으로 출간되었다. 고통 속에서 길어낸 상처의 미학을 선보인 『당신의 아름다움』(문학과지성사, 2020)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1990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 30여 년의 세월 동안 부지런히 쓰고 발표해온 그의 초록빛 언어는 여전히 싱그러우며 그 시간만큼 웅숭깊다. 이번 시집에서 조용미는 지극한 눈길로 무언가를 오래 바라본 자만이 그려낼 법한 생의 정취를 빚어낸다. “불을 끄고 누”워 “낮에 본 작고 반짝이는 것들”(「산책자의 밤」)을 생각하고 “꽃 진 살구나무 대신/살구나무 그림자를 유심히 본다”(「봄의 정신」). 그리하여 “사과나무의 어두운 푸른색에 깃든 신비함을 볼 수 있다면 더 깊은 어둠을 통과할 수 있다”(「물야저수지」)는 성찰에 도달한다. 그곳에는 이윽고 스러지는 존재의 나약함 대신, “그러니/조금만 더 존재하자”(「관해」)고 다짐하는 삶의 의지가 있다.
짧고 무의미하지만 두고두고 환기되는 어떤 미적 체험의 순간이 있다. 그래서 그 무의미함이 무의미를 뛰어넘는 심미적 경험이 되는 신비한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 빈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누군가와 함께 보았던 어둠 속 폐사지의 삼층석탑, 차창으로 지나치며 얼핏 바라본 과수원의 과일을 감싸고 있던 누런 종이들이 내뿜는 기운, 그런 것들에 나는 잔혹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몸서리치곤 했다. _‘뒤표지 글’ 부분
“고요한 색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색색 너머의 검정을 앓는 이
시인은 색채를 통해 이 세상을 감각한다. 이러한 행위는 화자의 마음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풍경처럼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모호한 감정에 뚜렷한 색채를 부여함으로써 더욱 선명하게 부각하는 이중의 효과를 발휘한다.
긴 의자 앞으로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이 펼쳐졌다 초록의 음영과 농도는 첼로의 음계처럼 높아지고 다시 낮아졌다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저 연둣빛 어둑함과 으스름한 초록 사이 여름이 계속되는 동안 알 수 없는 마음들이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다
_「초록의 어두운 부분」 부분
표제작인 「초록의 어두운 부분」에서 시인은 흔히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숲 어딘가를 통과하며 서로 다른 명도와 채도를 띤 무수한 초록을 찾아낸다. 한 덩어리로 보이는 각각의 존재에 개별적인 색깔을 부여한다. “초록의 거대한 상영관” 앞에 앉아 “뭉쳐지고 풀어지고 서늘해지고 미지근해지고 타오르고 사그라들고 번지고 야위는” 수많은 초록을 감상하던 “우리”는 뜻밖에도 “녹색의 감정에는 왜 늘 검정이 섞여 있는 걸까” 하는 시인의 물음을 맞이한다. “연둣빛 어둑함”이나 “으스름한 초록” 속에서 “신경성 위염을 앓”는다.
빛나는 아름다움 속에서도 기어코 어둠의 기척을 읽어내는 숙명을 타고난 이는 앓는 몸일 수밖에 없다. 「노란색에 대한 실감」에서 고요한 죽단화를 바라보는 화자는 “저것도 영영 아름답지는 않”으리란 사실을 깨달으며 “울렁거림과 편두통”을 느낀다. “몸을 다치는 꿈속의 기이한 날들이 계속”되는 날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일은 “소리를 지르며/깨어”(「칼」)나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시인은 색의 심연을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세상의 붉고 푸르스름하고 노랗고 흰 빛들이 나를 함께 나누어 가지도록” “기꺼이 허락한다”(「색채감」).
“언제나 다음 생을 믿을 만큼 나는 어리석었다”
끝을 모르는 지독하고 아름다운 존재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박동억은 이 시집의 존재를 반개(半開)된 것, 즉 절반은 ‘나’이고 절반은 타인과 얽혀 있는 공간으로 설명한다. ‘당신’을 받아들인 후에야 오롯이 ‘나’로 설 수 있다는 역설을 통해, “세상의 높고 낮고 넓고 깊은 색의 심연을” “오래도록 바라본”(「색채감」) 시인이 닿게 될 ‘하나의 색’을 기대한다.
시인의 시선은 근본적으로 존재의 색(色)을 향한 것이 아니다. 색은 세상과 얽히고 세상을 견디면서 쌓이는 총천연색의 관계성을 함축한다. 그리고 어쩌면 시인이 바라는 것은 그러한 색채의 세계를 넘어서 획득하는 투명한 몸, 몸에 구속되지 않는 몸이 아닐까. 그가 떠나기를 바라는 장소는 자신의 마음이고, 도착하기를 바라는 먼 곳은 슬픔도 기쁨도 존재하지 않는 무채색의 마음이다. 시인이 홀연히 떠나 닿기를 바라는 장소는 다채로운 존재의 색채 너머에 있는 투명함, 즉 고요이다. _박동억(문학평론가)
조용미의 시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하는 곳은 ‘투명한 몸’과 ‘무채색의 마음’에 가까워 보인다. 첫 시 「분홍의 경첩」으로 시작해 마지막 시 「색채감」에 이르기까지 “물소리, 메아리, 종소리, 다정한 말들이, 탄식이”(「귀」) 가득한 세상의 모든 소리는 “고요로 향하는 노선을 달리고 있다”(「십일월」). 그러나 이 시집을 읽는 이가 당도하게 될 곳은 결코 생명력이 다한 폐허가 아니다. “존재의 실현에는 죽음이라는 사건이 필요하다”(‘뒤표지 글’)는 시인의 천명은 고통과 비루함 뒤에 찾아올 새로운 아름다움을 예견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위태롭고 불안한 실존이다
모든 시간 속에 있는
찰나적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전혀 새로운 봄이다
_‘시인의 말’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