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 독일 관념론과 낭만주의, 현상학, 미학 등 예술과 철학을 아우르는 여러 사유 전통을 치열하게 연구해 온 젊은 철학자 김동규가 ‘사이’ 개념을 중심으로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을 해명한 책이다. 하이데거에게 예술철학이란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 예술을 분석하는 통상적인 ‘미학’(美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예술과의 만남, 예술과의 대화를 통해 예술의 언어를 철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리고 예술과 철학 양자의 ‘사이’를 사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술철학은 유용성을 따지고, 본질 자체보다 관념에만 몰두하는 사유를 배척한다. 하이데거는 서구 사유의 근원인 그리스어와 모국어인 독일어 낱말 자체의 시원(始原; 어원)으로 돌아가 어근 하나하나의 뜻에서부터 예술의 근원을 파헤친다. 지은이 김동규는 그 사유의 흔적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또한 그것을 우리의 사유로 옮기기 위해 우리말에 대해 치밀한 사유의 궤적을 밟고 있다. 존재와의 눈맞춤이야말로 진정한 존재사건이며, 시인과 사유가(思惟家)는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자각한 언어의 ‘파수꾼’이라는 시적 언어 덕분에 복잡한 하이데거의 사유가 한층 친밀하게 읽힌다.
사이-존재론으로 보는 하이데거의 예술론·언어론
―시짓기와 사유하기 ‘사이’에서 하이데거 예술철학의 심연을 읽다
서구 형이상학은 그 출발(플라톤)에서부터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배제하고, 보이지 않는 본질만을 추구함으로써, 예술을 철학에서 추방시키거나 기껏해야 사회질서에 이바지하는 이데올로기 기능을 할 때에만 그 ‘유용성’을 인정했다. 그리스 이후로도 로마·중세 시대를 거치면서 예술은 종교를 빛내 주는 시녀 노릇을 하면서나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술은 시민권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으며, 형이상학의 완성자 헤겔에 이르러서는 죽음을 선고받기(‘예술의 종언’)까지 했다. 헤겔에 앞선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미(美)에 관한 판단에도 보편성이 있다며 예술의 자율성을 옹호했지만, 이 또한 주관성에 머묾으로써 진정한 복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6~1976)는 이런 형이상학 전통을 해체하며, 예술작품을 창작하고 보존하는 경험이 진리(본질)에 다가서는 일임을 「예술작품의 근원」(1935/36)을 통해 해명했다.
『하이데거의 사이-예술론』은 고대 그리스 철학, 독일 관념론과 낭만주의, 현상학, 미학 등 예술과 철학을 아우르는 여러 사유 전통을 치열하게 연구해 온 젊은 철학자 김동규가 ‘사이’ 개념을 중심으로 하이데거의 예술철학을 해명한 책이다. 하이데거에게 예술철학이란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 예술을 분석하는 통상적인 ‘미학’(美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예술과의 만남, 예술과의 대화를 통해 예술의 언어를 철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 그리고 예술과 철학 양자의 ‘사이’를 사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예술철학은 유용성을 따지고, 본질 자체보다 관념에만 몰두하는 사유를 배척한다. 하이데거는 서구 사유의 근원인 그리스어와 모국어인 독일어 낱말 자체의 시원(始原; 어원)으로 돌아가 어근 하나하나의 뜻에서부터 예술의 근원을 파헤친다. 지은이 김동규는 그 사유의 흔적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또한 그것을 우리의 사유로 옮기기 위해 우리말에 대해서 치밀한 사유의 궤적을 밟고 있다. 존재와의 눈맞춤이야말로 진정한 존재사건이며, 시인과 사유가(思惟家)는 이를 자신의 운명으로 자각한 언어의 ‘파수꾼’이라는 시적 언어 덕분에 복잡한 하이데거의 사유가 한층 친밀하게 읽힌다.
예술작품, 세계와 대지의 투쟁 ‘사이’에서 형성된 진리의 ‘틈’
▶‘사이’ 개념으로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하다
플라톤은 거짓 모방과 감상, 신비와 광기를 통해 창작하는 시인(예술가)들을 ‘공화국’에서 추방하자고 주장했다. 시인들이 철학자가 통치하는 국가의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질서에 복종하는 경우에만 그 시민권을 인정하겠다는 단서를 달아서. 이후 철학자들은 철학적 사유 속에서 시학(예술)을 배제하거나, 철저히 종속시키는 위계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플라톤 이래 서구 철학(형이상학)은 실체화될 수 없는 존재의 생동적인 모습을 망각하고, 이성의 눈을 통해 ‘보여진 것’만이 존재자의 존재라고 규정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이데거가 보기에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를 근거짓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존재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구 형이상학이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아낙시만드로스·파르메니데스·헤라클레이토스 등으로 대표되는 시원(始原)의 사유자들은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을 함께 사유했다. 만물은 투쟁과 대립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며, 경험세계에 대한 형식적 통일을 우려한 헤라클레이토스의 ‘불의 철학’은 하이데거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존재는 존재자가 아니다”, 즉 ‘존재론적 차이’(ontologische Differen)를 통해 전통 철학을 해체했던 하이데거는 1930년대 중반 이후 그의 후기 사유에서 ‘사이’(Zwischen) 개념을 핵심 개념으로 사용한다. ‘존재론적 차이’ 개념은 한마디로 존재의 실체화(결국 존재자로 이해된 존재)를 막기 위한 개념인데, 그런 차이가 “현-존재의 거기, 진리, 존재사건, 관계” 등의 의미를 갖는 ‘사이’ 개념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서 하이데거에게 존재는 그때그때마다 차이를 낳는 통일적인 관계, 즉 모든 사이항들을 구분하면서도 이어주는 ‘사이’의 존재사건으로 이해된다. 이후 ‘사이’는 차-이(Unter-Schied; 사이-나눔)라는 개념으로 엄밀하게 규정된다.
▶작품의 ‘충격’에서 진리를 경험한다
지은이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예술·시·언어론은 철저히 ‘사이’를 통해 해명된다.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처음 ‘사이’ 개념이 등장하는 곳은 사물·도구·작품을 비교하는 대목이다. 하이데거는 예술을 진리의 실현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서 진리란 지성이 사물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진리의 그리스어 단어, 즉 알레테이아를 시원적 의미, 즉 비-은폐성으로 이해한다. 이 개념에서 하이데거가 밝히려는 것은 드러난 것 배후의 ‘감추어진 것’, 즉 알레테이아에서의 ‘레테’이다. 이것은 비-은폐성과 은폐성의 ‘사이’이며, 그 ‘사이’의 ‘투쟁’이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근원투쟁’이라고 명명하고, 그 투쟁의 틈 ‘사이’에서 모든 존재자가 현전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예술이란 바로 이런 진리가 작품 안으로 자신을 정립시키는 것이자, 동시에 인간이 그 진리를 작품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예술을 작품 내 ‘세계’와 ‘대지’의 ‘투쟁’으로 해명한다. 작품이 소재와 형식, 두 가지 층위로 이루어졌다 보면, 소재는 형식에 의해 결정되는 한갓 수동적인 것, 형식은 작품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능동적인 것이 된다. 이때 소재는 단지 작품의 형식에 종속되는 것으로 남는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소재란 대지에 속하는 것이며, 그 대지는 “자신을 폐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대지는 그리스적인 의미의 자연으로서, 스스로를 숨기고 간직하며 보호하는 존재다. 대지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둘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감추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 작품은 존재자를 개방시키는 세계와 자기 폐쇄적인 대지 사이의 대립·투쟁 속에서 형성된다. 세계와 대지 ‘사이’의 투쟁은 또한 서로의 성격을 명확히 하게 하면서, 진리의 ‘틈’(Riß)을 일으키고, 그 틈에서 작품의 ‘윤곽’(Umriß)이 형성된다. 이것은 하나의 존재사건이다. 이렇게 발생한 작품의 ‘형태’(Gestalt)는 우리에게 낯선, 그저 ‘있음’의 ‘충격’(Stoß)을 준다. 무언가가 그저 ‘있다’는 그 충격을 통해서 우리는 일상의 삶으로부터 빠져나와 존재의 진리 안으로 진입할 수 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예술작품 ‘창작’과 ‘보존’의 감동은 근원적으로 이런 존재 경험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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