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 여성/노동/계급이 연결된 35개 분야를 망라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정수,
국내 최초로 종합적으로 소개하다
● 기존 페미니즘의 한계를 뛰어넘고,
‘민주화’와 사회 ‘진보’의 사각지대를 폭로하다
●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시작되는 논쟁들(비정규직, 성별화된 노동, 재생산, 낙태,
동성애, 성노동/성매매, ...)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다
● 정보, 역사, 사례가 풍부한 다양한 글쓰기,
탁월한 번역으로 읽는 재미를 더하다
책 소개
이 책은 성, 섹슈얼리티, 가족, 인종, 민족, 재생산, 임금노동, 사회복지, 공공 정책 등페미니즘의 관심사를 아우르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35인이 각 분야에서 삶과 활동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축적한 글을 엮은 것이다. 절대다수가 노동계급인 여성이 살면서 복잡하게 맞닥뜨리는 가부장제+자본주의 사회에 근본적 물음을 던지고,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올 수밖에 없는 탁월한 분석을 해 낸다.
발전, 빈민(가난), 여성성과 남성성, 가족, 국가, 군대, 감옥 처벌에 속속들이 스민 각각의 신화들을 들추어 내고, 피해자/가해자, 이성애 중심주의 등 이분법적 질서가 낳는 성별화 효과와 은폐되는 진실을 밝힌다.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가진 각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각의 장점을 연결한 넓은 의미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구축한다. ‘개인’의 삶을 돌아보며 레즈비언 빈민으로 성장해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완전히 속하지 못했던 고백이나 월경 전 증후군과 노동 생산성의 사회경제적 해석, 에코페미니즘이 제시하는 새로운 지평 등, 어느 것 하나 가려 뽑기 어려울 만큼 주옥 같은 글들의 선집(앤솔러지)이다.
또 이 책은 기존의 운동, 사회 ‘진보’와 ‘민주화’가 겉보기와는 달리 얼마나 분리와 배제를 낳았는지를 뼈아프게 고발한다. 사회과학자들의 ‘몰성적’ 또는 ‘성 중립적’ 시각으로 높이 평가된 ‘민주화’ 이후, 실제 여성들의 정치적, 경제적 지위는 오히려 대폭 낮아진 사실을 밝힌다. 이 책에 따르면 감옥 개혁, 민주화, 시민사회의 발전, 비정부기구의 양적/질적 팽창은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저절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오히려 거꾸로 성별화를 강화했다. 이는 (자본주의-가부장제 사회의 지배 계급에게는) 효과적으로, 여성들 간의 분리를 낳았다. 비정부기구의 양적, 질적 팽창과 시민사회운동의 지위 상승, 이익타협적 정당 등 제도 정치화로 여성이 어떤 식으로 다시 한번 ‘공적’ 공간으로부터 ‘사적’ 공간으로 밀려나는지, 또 이러한 ‘발전’이 어떻게 활용되고 성별화를 굳히는지를 보여 준다. 이는 물론 운동사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은 또한 서구 중심적, 계몽적 시각이 ‘제3세계’에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무지와 편견,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저질러 온 실패한 정책들의 역사와 그 맹점을 살핀다.
다양한 억압과 저항의 사례도 소개되었다. 이 책이 쓰여진 미국의 ‘유색인’(아프리카계, 멕시코계, 아시아 페미니스트)들의 저항과 관련한 여성운동, 성노동자의 생존권과 자긍심을 지키기 위한 저항, 동성애/퀴어 연구가 운동에 기여한 점, 피임과 출산 등의 재생산 권리, 한국 마산에서의 여성노동자 투쟁, ‘제3세계’ 출신 전자산업 노동자의 환경정의 운동 등 풍부한 저항운동 사례를 볼 수 있다. 여기서 페미니즘 및 사회운동의 성장과 그에 따른 자본의 반격, 보수주의의 저항으로 인한 운동의 퇴보, 앞으로의 과제와 확장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성의 본성’에도 근본적인 성찰을 던지는 이 책은, 매우 진지하고 학술적인 논문부터 매우 생생한 소설처럼 가장 내밀한(그래서 가장 급진적이며 가장 정치적인) 개인의 성장 일기와 역사까지, 서로 다른 35개 분야에서 다양한 글쓰기로 이루어져 있다. 『미국민중사』, 『더 레프트The Left』를 옮긴 유강은의 유려한 번역은 읽는 맛을 더한다. 읽는 이는 이 책에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서른다섯 개 이상의 면으로 이루어진 입체를 그려 볼 수 있으며,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더하여 새로운 세계를 함께 만드는 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판 출간 의의
이 책이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최신 글’ 모음으로서 먼슬리리뷰 출판사에서 나온 지 꼭 10년이 되었으나, 오늘 한국사회의 모습은 이 책에서 소개하고 분석하는 내용들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퇴보한 부분도 많다. 성폭력 국회의원의 존재나 ‘나꼼수’ 비키니-코피 사건에서처럼 여성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며, 민주주의의 진보가 젠더의 문제를 조금씩 (유쾌하지 않게) 상기시키는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성별화 등 젠더와 계급의 문제는 본격 담론화하지 않았다.
이 책의 멕시코 마킬라 작업장 파놉티멕스의 사례는 ‘젊은 여성만’ 채용하는 한국의 성별화된 직종들을 연상케 하고, 노동자 의복과 신체 통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표식이나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자들의 성형수술 붐을 떠올리게 한다. 노조 조합원 여성의 가사노동은 이랜드, 청소노동자 등 ‘아줌마’ ‘어머니’라 불리는 노동자들을, 경공업과 가사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청계피복노조에서 (전태일과 같은 영웅을 낳게 한) 스러져 간 수많은 여공들을 떠올리게 한다. 적극적 평등 조치를 다룬 장은 툭 하면 불거져 나오는 공직자 여성할당제에 대한 딴죽과 연결된다. 미국 내 비유럽권 여성들의 투쟁과 소외의 역사도 한국 내 ‘다문화’/인종 문제뿐 아니라 계급적으로 분리된 여성들 간 연대에 참고할 만하다.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성노예 피해자 여성들을 민족주의적으로 활용하는 사례, 광주민중항쟁에서 ‘두부처럼 잘린 너의 가슴’ 운운하는 노래 가사 등 민주화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여성 지위의 한계도 마찬가지다. 모두 이미 오래 일상화된 문제이나 그 담론이 진지하고 깊게 이어지지는 못했던 척박한 토양에, 이 책은 하나의 중요한 보탬이 될 것이다.
모든 억압 체제는 연결되어 있다. 그만큼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자들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페미니즘과 전체 사회운동이 함께 확장해 갈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결국 한국의 페미니즘도,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나 ‘제3세계’를 보는 서구 중심 시각이 아니라 바로 여기, 지금의 우리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