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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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잎 한 장 허투루 보지 마라 잎의 광합성이 없다면 지구의 하늘빛도 달라질 것! 열매와 꽃에 가려진, 나뭇잎의 일생 속으로 버려지다시피 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물푸레나무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도록 만든 사람. 사흘만 꽃을 피운다는 빅토리아수련의 개화를 지키고자 잠들지 못하는 사람. 한 그루의 나무를 적어도 세 해에 걸쳐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25년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나무를 기록해온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나뭇잎 수업』이 출간되었다. 나무의 생태뿐 아니라 나무와 인간 삶의 관계를 다룬 단정한 글로 주목받아온 그가 이번에는 ‘나뭇잎’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저자가 그간 열매와 꽃에 비해 연구가 깊이 이뤄지지 않았던 나뭇잎의 생명 활동에 특별히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따르면 나뭇잎은 광합성, 증산작용, 운동 등의 활동을 이어가는 ‘생명의 창’이다. 잎이 에너지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나무의 생존, 나아가 식물로부터 이어지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불가능할뿐더러, 엽록소의 공기정화 작용이 없다면 대기의 빛깔마저 달라진다는 것이다. 『나뭇잎 수업』은 나뭇잎에 관한 가장 흔한 궁금증―가령 소나무잎과 전나무잎의 차이, 플라타너스가 가로수로 선택된 이유 등―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견 수동적으로만 보였던 나뭇잎의 왕성한 생명 활동을 조명한 식물학 교양서다. 저자는 잎의 구조와 가장자리 등 나뭇잎 관찰의 기본 요소부터 낮의 광합성에서 밤의 호흡에 걸친 나뭇잎의 24시간, 또 싹이 트고 낙엽하고 월동하기까지 사계절을 살피는 가운데 나뭇잎의 생애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탄탄한 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저자의 생생한 관찰 경험을 입말로 풀어간 이 책은 나뭇잎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에게도 친근한 나무 입문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꽃을 이루는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도 모두 잎에서 변화되어 생성됐다는 게 괴테의 주장입니다. 나뭇잎은 더 유리한 생존을 위해 잎은 포로, 꽃받침잎은 위화(가짜 꽃)로 변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는 거죠. (…) 잎은 식물의 생존 바탕입니다. 식물이 더 유리한 생존을 만들어가기 위한 모든 채비는 바로 잎에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_217쪽 가시를 내고, 소화불량 효소를 뿜고, 꽃으로 위장하고…… 환경과의 전투 끝에 이른 생존 전략 “식물에게도 하등동물 수준 이상의 지성이 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제자리에서 바람 불면 흩날리고, 눈 오면 눈 무게에 잎이 쳐진 나뭇잎, 나뭇잎은 그저 환경에 반응하는 수동적 존재이기만 할까? 저자는 오랜 관찰과 공부를 통해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나뭇잎은 곤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또 때론 주위 기온을 낮추기 위해 잎자루를 흔들고 있다는 내용으로 이 책의 첫 장을 연다. 다양한 식물들의 각축장에서 나뭇잎이 필수적인 양분을 생산하는 1차적인 방식은 증산작용과 광합성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생존의 위협 앞에서 나뭇잎은 어떤 활약을 펼칠까? 카스피해 인근 낙타가 많은 지역에 서식하는 이란주엽나무는 낙타에게 잎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낙타 키 높이만큼 가시를 낸다. 바늘잎이 가늘어 광합성 재료를 풍부하게 저장하기 어려운 소나무는 곁의 식물들에게 독을 내뿜는 방식(타감효과)으로 제 영역을 지킨다. 꽃잎이 작아 벌이나 나비 같은 매개 곤충의 눈에 띄기 어려운 수국은 꽃받침잎이 꽃잎처럼 위장해 풍성한 꽃차례를 자랑한다. 잎의 이러한 활약은 이동과 포식 등으로 목숨을 잇는 동물의 방식과는 다르지만, 전략과 전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충분하다. 나무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낙타가 다가서지 못하도록 가시를 돋워낸 겁니다. 가시가 아니라면 낙타는 잎사귀에서부터 어린 가지까지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겠지요. 잎사귀를 낙타에게 다 빼앗기면 나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들어야 할 잎이 없어지게 되니까요. 그래서 나무는 생존을 위협하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가시를 뻗어낸 겁니다. (…) 한곳에 뿌리를 내린 뒤, 꼼짝달싹 못 하고 모든 동물의 공격을 선 채로 당해야만 하는 나무들의 자구책이 재미있습니다. 또 꼭 필요한 만큼의 방어 수단으로 살아가는 나무살이의 효용성을 엿보게 됩니다. _222쪽 『나뭇잎 수업』에서는 우리 곁의 가까운 나무들에 대한 지식과 독특한 나뭇잎들의 생태를 접할 수 있는 점도 흥미롭다. 연잎의 물방울은 왜 스미지 않고 굴러다닐까? 다육식물이 공기정화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플라타너스는 어쩌다 가로수로 선택됐을까? 홍단풍에는 정말 엽록소가 없는 것일까? 잎 위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수련도 있을까? 저자는 다양한 궁금증에 대해 친절한 해설은 물론, 직접 찍은 사진과 일러스트를 곁들여 이해를 돕는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식물학 저작들을 접할 수 있는 것도 큰 수확인데 『공생자 행성』(린 마굴리스)을 통한 공생 이론, 『생명의 도약』(닉 레인)에 소개된 생명의 진화 과정, 『광대한 여행』(로렌 아이슬리)이 다룬 꽃잎의 탄생 등은 나무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주요한 참고문헌을 제공한다. 이 목록을 경유해 다뤄진 식물들의 기지를 보노라면 “식물에게도 하등동물 수준 이상의 지성이 있다”(『식물 운동의 원리』, 1880년)는 다윈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묘사화 잎의 정체에서 예수의 가시면류관에 얽힌 이야기까지 나뭇잎에 대한 인문 지식과 역사 지식의 향연 이파리에 쓰인 글귀 하나로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면치 못한 조광조의 기묘사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건의 발단이 된 ‘주초위왕走肖爲王’(조씨가 왕이 된다)이라는 글자가 적힌 나뭇잎이 무엇이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저자는 조선 중종 대 자라던 이 땅의 나무들 가운데 한자 네 글자가 쓰일 수 있을 만큼 잎이 넓은 나무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다 그 잎을 ‘오동나무’로 추측한다. 또한 법정 스님이 평생 아끼던 나무이자 당신의 수목장 나무로 잘 알려진 후박나무가 실은 ‘일본목련’이라며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이처럼 『나뭇잎 수업』은 식물학적 지식뿐 아니라 동서양의 전설, 역사 등 나뭇잎을 둘러싼 인문적 지식이 촘촘히 펼쳐져 한 편의 나뭇잎 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뭇잎의 생명 활동을 중심으로 나무와 식물, 나아가 지구상 모든 생명의 활동 원리까지 조망한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궁극의 지향점은 공생이다. 새 잎이 먼저 나온 잎의 빛을 가리지 않게 나는 것, 나무 한 그루가 여타의 나무와 적절한 거리를 두어 숲을 이루는 데에서 우리네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것이다. 자연계에서 식물은 제 몸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지만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생존은 공생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 나무살이와 사람살이의 공통점이다. 나무에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수관기피 현상이라는 게 있습니다(영어로는 ‘Crown shyness’라고 부르는 현상입니다). 대개의 숲에서 볼 수 있지만 특히 침엽수 숲에서 보다 또렷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지요. 수관기피 현상 역시 나무가 효율적으로 광합성을 하기 위한 생존 전략의 하나입니다. 나무의 빛을 수용하는 부분에서 빛을 알아채고 주변을 인식해서, 곁의 나무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전략이죠. 서로의 양분 제조 과정, 즉 광합성을 훼방하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겁니다. 그런데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숲에서는 그 거리를 유지하기 쉽지 않겠지요? 그러다 보니, 나무들은 좁은 자리를 마치 퍼즐 맞추듯 차곡차곡 채워가되, 서로의 햇살을 방해하지 않는 겁니다. _2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