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빈틈, 중간세계사
오리엔탈리즘의 편견을 뛰어넘어
이제 큰 호흡으로 세계사를 단숨에 읽는다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선입견을 지적한 지도 어느덧 반세기가 되어간다.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는 과연 19세기 오리엔탈리즘의 굴레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튀르키예 역사 문화 연구가이자 국내 최고의 튀르키예 전문가 이희철의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은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을 함께 다루는 최초의 책으로,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부터 르네상스시대 이전까지 이른바 암흑기라 일컫는 중세의 비잔티움과 근대의 서막을 연 오스만제국을 재조명한다. 이로써 오리엔탈리즘에 가려져 있던 세계사의 빈틈을 메우고, 비로소 연결되는 동서양을 통해 한 맥락으로 흐르는 세계사를 보여준다. 전세계 19명뿐인 튀르키예 국립역사학회 역사통신위원인 저자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볼 때 늘 문화적인 타자였던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에서도 어김없이 역사와 문화는 언제나 서로 충돌하면서 발전의 원동력을 생성하고, 모방과 발견으로 전해지고 창조된다는 것을 입증하여, 역사에 대한 편견을 넘어 세계사를 보는 관점을 더욱 풍부하게 열어준다.
지극히 객관적인 서술의 강력한 흡입력
단절적으로 배워온 역사의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다
이 책은 비잔티움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역사, 정치, 경제, 종교, 건축, 예술 분야를 넘나드는 다학적인 융합 연구를 바탕으로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로 서술되고 있다. 중간세계에 대한 편견에 맞서거나 계도하려는 강박이나 목적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만 중간세계라는 존재는 문화와 문명의 상호 중첩과 영향 관계에 따라 자연스레 그러나 선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비잔티움과 오스만 두 제국에 대한 다양한 면모를 한 권의 책에서 순차적으로 훑는다는 것은 방대한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이 서술로 그려지는 역사의 범위는 단지 두 제국에 머물지 않고, 더 큰 시공간으로 확대되어 전해진다.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인 순간이나 상식과 연결되면서 세계사의 큰 그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단절적으로 배워온 역사의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경험 속에서 하나하나 세계사의 퍼즐이 맞춰지는 쾌감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왜 중간세계인가
왜 중간세계를 읽는가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의 저자 타밈 안사리는 인도 갠지스강 지역부터 이스탄불까지 연결되는 지역을 중간세계(Middle World)라 불렀다. 이 중간세계의 고대는 그리스·로마 강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의 시대였고, 중세는 비잔티움의 기독교 시대였으며, 근대는 오스만제국의 이슬람 시대였다.
중간세계는 1000년의 비잔티움제국, 600년의 오스만제국, 그리고 두 제국 사이 600년에 걸친 이슬람제국의 역사와 문화가 펼쳐졌던 곳이다. 그러나 동양도 서양도 아니고 동양이면서 서양 같은, 서양이면서 동양 같은 중간세계인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은 오랜 세월 유럽사 중심의 세계사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이 책은 세상을 움직이는 힘과 문화적 역량은 있었으나 세계사의 중심축으로부터 관심받지 못하고 고립되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간세계를 비잔티움제국과 오스만제국을 통해 재조명한다. 충돌과 대립의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이질적일 것 같은 기독교와 이슬람 제국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가치를 축적하고 발전시켜왔음을 보여준다.
세계사의 그늘에 있던 중간세계사를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이를 통해 세계사를 더욱 견고하게 파악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중간세계사,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은 너무 방대하게만 느껴졌던 세계사의 맥을 짚어 이해하고 즐기고 싶은 이에게 실마리가 되어줄 책이다.
중간세계사를 읽으니
또렷해지는 세계사의 흐름
콘스탄티노플이 이스탄불이라고?
오스만제국과 르네상스시대는 무슨 상관?
세계사 속에서 이미 배워 익숙한 비잔티움과 오스만제국. 그러나 두 제국이 같은 공간에 존재했던 제국이라는 점은 생소하다. 1453년, 메흐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으로 천년 기독교 제국 비잔티움은 종식되고 오스만제국이 출발했다. 이로써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이라는 새로운 지명으로 불리게 된다. 현재의 튀르키예가 있는 아나톨리아반도의 역사다. 이러한 역사는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교회로 대변된다. 성 소피아 교회는 비잔티움제국 때 건축되었다가 오스만제국 때에 4개의 첨탑인 미나렛이 추가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하여 사용했다. 이후 1923년 튀르키예공화국 창건과 함께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부터 다시 모스크로 전환되었다.
오스만제국의 출발은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를 지향한 르네상스시대의 개막과 무관치 않은 사건이 된다. 콘스탄티노플 함락이 임박해오자 비잔티움제국 내 그리스 고전학 연구학자들이 문헌을 들고 가까운 제노바, 피렌체,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도시국가로 망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콘스탄티노플을 통해 이탈리아로 넘어간 그리스 고전은 줄잡아 4만여 점에 이른다. 고전을 들고 이탈리아로 넘어간 학자들로 인하여 서양의 르네상스시대는 그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단초가 오스만제국?
대항해시대 하면 서구 열강의 탐험과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 떠오른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등은 가히 역사를 뒤흔든 지각변동의 축으로 주목받았다. 반면 이 책에서는 대항해시대의 단초가 소개되고 있다. 바로 오스만제국의 지중해 장악과 통제에 따라 해상무역로가 차단되고 향신료를 얻기가 쉽지 않았던 상황 등 대항해시대를 앞둔 당시의 시대상이 서술되고 있다. 이렇듯 세계사 곳곳에 미치는 중간세계사의 흔적은 역시 역사는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지혜가 요구되는 영역임을 알게 한다.
로마제국의 멸망의 촉매제가 튀르크계 훈족?
비잔티움제국의 탄생은 고대 서로마제국의 멸망 과정으로부터 서술된다. 이 속에서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비롯한 유럽 내의 지각변동이 언급되는데, 이때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이동하게 된 배경에는 튀르크계 유목민인 훈족의 촉매제 역할이 있었다. 절대권력 같았던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대사건이 중앙아시아에서 출현한 유목민족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우리 생활 속 아랍의 흔적들
고대 그리스 지식 부활의 중심지, 바그다드
7세기 아라비아반도에서 탄생한 이슬람은 창시자 무함마드 사망 이후 승계자의 자격에 대한 견해차로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게 된다. 이 또한 중간세계사의 영역이지만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은 분명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관심사이다. 중간세계사 속에서 설명되는 이 부분에 대한 배경과 구체적인 사실들이 전체적인 흐름 속에 소개되면서 명료한 이해를 돕는다.
그뿐만 아니라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통해서도 묘사되었듯이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한 당시 이슬람제국은 얼마나 놀라운 학문과 문화의 번성기를 구가했는지 알 수 있다. 특히 ‘바이트 알 히크마(Bayt al-Hikma, 지혜의 전당)에서는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등 종교에 상관없이 저명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철학·천문학·수학·의학 분야 등의 고전을 번역했다.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로 바그다드는 과학자, 예술인, 사상가들이 넘쳐났으며, ’바이트 알 히크마‘는 중세의 유럽에서 소외된 고대 그리스의 지식을 부활시키고 이슬람의 지적 부흥을 일으킨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렇게 이슬람이 세계의 지식을 아랍어로 번역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과학은 이슬람 세계에 그대로 유입될 수 있었다. 그리스 과학을 계승·발전시킨 이슬람 과학은 12세기 이후에 다시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르네상스 시대 개막에도 영향을 주었다. 유감스럽게도 이슬람과 아랍의 과학발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