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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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 위인과 리더의 뇌에 침투한 질병이 만든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세계사 1. 그랜트 장군의 뇌에 침투하여 남북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오늘날의 초강대국 미국을 탄생시킨 숨은 원인 - 편두통 오늘날 미국이 세계 유일 패권국이 된 은밀한 배경에 한 전쟁영웅을 오랫동안 괴롭힌 질병 ‘편두통’이 자리하고 있다고 하면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사실이다. 그 전쟁영웅은 바로 북군 총사령관으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Ulysses Simpson Grant, 1822~1885) 장군이다. 60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4년 동안 진행된 남북전쟁은 엄청난 물량 공세와 압도적인 화력에 힘입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1865년 4월 8일, 남군사령관 리 장군은 북군사령관 그랜트 장군에게 사자를 보내 항복의 뜻을 전했다. 리 장군은 상당한 대가를 치를 것을 각오했다. 그랜트 장군이 ‘무자비한 학살자’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냉혹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랜트 장군은 “전쟁은 끝났소. 반란군이 다시 우리 국민으로 돌아왔소”라고 말하며 남군 장병을 포로로 삼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식량까지 제공해주었다.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으나 미국사와 세계사의 물줄기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남군에 대한 북군사령관 그랜트 장군의 관대한 처분이 남부와 북부의 더 큰 갈등과 분열을 막고 하나의 국가로 건재하게 함으로써 훗날 초강대국 미국의 기틀을 다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랜트 장군은 승전 이후 남군 장병들에게 왜 그토록 관대한 처분을 내렸을까? 그의 관용은 증오와 복수심을 훌륭하게 극복한 하나의 미담 사례로 역사에 남았는데, 그 결단의 이면에 극심한 두통 직후의 ‘정신적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랜트 장군은 마지막 격전 중에도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으나 리 장군의 사자가 도착했을 때 씻은 듯 두통이 사라졌다. 이 예기치 않은 상황이 그의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고, 그는 이튿날 회담장에서 리 장군을 만나 관대한 처분을 선언한 것이다. 한 전쟁영웅을 괴롭힌 뇌질환이 세계사의 물줄기를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순간이었다! 2. 바이마르 공화국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히틀러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질병 - 치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쳐 국민적 영웅이 된 파울 폰 힌덴부르크(Ulysses Simpson Grant, 1822~1885) 장군.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두 번이나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그의 두뇌에 ‘치매’라는 무서운 적군이 침투해 판단을 흐리고 분별력을 잃게 만드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힌덴부르크의 최측근 삼인방은 치매로 지각 능력이 퇴화한 그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며 국정을 농단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히틀러와 나치스가 권력을 찬탈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히틀러의 나치스가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할 즈음 치매에 걸린 힌덴부르크는 지적 능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 정상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적 능력과 함께 책임감도 곤두박질쳐서 나치스가 국방군을 집어삼키고 제네바의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는 등 중요한 안건을 음흉한 자들이 미리 준비해둔 서류에 그저 시키는 대로 서명하는 식으로 처리했다. 그 무렵 저잣거리에는 “대통령은 비서실장이 내미는 서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명하고, 먹다 남긴 샌드위치 포장지에도 펜을 휘갈겨 서명한다”라는 소문까지 퍼져 있을 정도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힌덴부르크가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노인성 치매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뇌를 유지하며 냉철한 판단력과 분별력을 잃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히틀러와 나치스의 불길한 등장과 사악한 준동을 막아냈더라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반대파 숙청을 위한 대량 살상도,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이라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비극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흑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 국가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매우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인물의 뇌를 파고든 평범한 질병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너무도 크고 끔찍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다. 3.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만들고 세계사의 판도를 바꾼 질병 - 고혈압뇌출혈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자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영웅이며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프랭클린 루스벨트. 그런 그가 한때 미국인들 사이에서 ‘사상 최악의 대통령’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며 손가락질 당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주된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동서 진영 대립이 격화하던 냉전 시대에 열린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고분고분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 아니라 미국인들 입장에서 회담 결과도 매우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루스벨트는 왜 미국, 영국, 소련의 주요 당사국은 물론이고 향후 세계사의 흐름과 판도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 얄타회담에서 그토록 실망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을까?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그 이면에 루스벨트가 앓았던 질병 ‘고혈압뇌출혈’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제로 얄타회담 당시 루스벨트의 혈압은 300/170mmHg까지 올라갈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당시 영국 총리 처칠의 주치의였던 찰스 윌슨 모란경의 회고록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해 있었다.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시들시들한 모습으로 입을 헤 벌린 채 앞을 보고 있었다. 돌아가는 정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시 루스벨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기록돼 있을 정도로 황당하고도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1945년 1월 하순 무렵, 루스벨트 대통령은 전후 처리를 둘러싼 스탈린, 처칠과의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소련 크림반도의 얄타로 향했다. 그 무렵 소련은 한겨울 한파가 몰아치는 계절이라 늙고 병든 루스벨트에게는 고난의 행군이나 다름없었다. 서방측 인사에 악의를 가진 스탈린이 일부러 그 시기에 얄타를 회담 장소로 고집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아무튼 2월 4일부터 역사적 회담이 열렸고, 이후 일주일 동안 몇 가지 중요한 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대부분 소련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되었다. 독일이 항복한 후 2~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소련이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고, 동유럽은 소련이 지배하며, 소련과 일본이 맺은 중립 조약을 파기하고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소련에 병합하는 등의 결정이었다. 이 중요한 자리에서 서방측 총수격인 루스벨트 대통령이 건강 문제로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미국과 영국이 소련에 크게 밀리는 결과가 빚어졌을 뿐 아니라 전 지구적 역학 관계도 바꿔놓았다. 매우 중요한 시기에 매우 중요한 자리에 앉아 있는 한 인물의 뇌에 침투한 질병이 세계사의 물줄기를 크게 바꾸는 또 하나의 장면이라 할 만하다. 이 책에는 측두엽뇌전증, 뇌하수체 종양, 편두통, 고혈압뇌출혈, 파킨슨병 등의 질환이 막시미누스 트락스 황제, 잔 다르크, 도스토옙스키, 링컨 대통령, 그랜트 장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히틀러, 마오쩌둥, 브레즈네프 등 21명 역사적 인물들의 뇌에 침투하여 중요한 순간에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하게 함으로써 세계사를 바꾼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이 책의 저자 고나가야 마사아키는 현재 일본 국립병원기구 스즈카 병원의 명예 원장으로 있으며, 파킨슨증과 ALS?근이영양증 등의 신경 관련 난치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뇌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