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4차 산업혁명 시대, 실리콘밸리에서 찾은 한국의 가능성
스탠퍼드 대학 사회학 교수가 본 대한민국
남들은, 남들처럼, 남들만큼이라도!
불안을 원동력 삼아 질주하는 사회, 평균의 틀 속에서 함께 불행한 사람들…
생동하는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정치·사회·경제·외교의 처방전을 찾다
멀리서 보아야 더 잘 보이는 것이 있다면 때로는 멀찌감치 낯선 시선으로 익숙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도가 필요할지 모른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아시아 전문가, 신기욱 스탠퍼드 대학 교수가 오롯이 한국 독자를 생각하며 한국어로 쓴 첫번째 책, 『슈퍼피셜 코리아』가 어쩌면 그런 시선을 확보하는 데 적합한 책일 것이다. 안팎으로 새로운 도전에 마주한 한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무엇을 과감히 떨쳐내고 무엇을 용기 있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실리콘밸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에 관해 썼다.
한국을 잘 아는 내부인인 동시에 국제관계의 역학 속에 놓인 한국을 보는 외부인의 시점에도 익숙한 저자의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 책은 지금껏 한국을 다룬 다른 책들이 주지 못했던 특별한 울림을 주는 책이 되었다. 저자는 30여 년 동안 미국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여러 대학에 두루 몸담아온 학자이자 전방위로 활동하는 아시아 전문가다. 2001년 스탠퍼드 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해 2005년부터는 스탠퍼드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생동하는 에너지를 매일 실감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됐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국이 성공적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며 이 책을 썼다. 동시에 저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한국 외교가 막다른 고비에 처할 때마다 한국과 미국의 국책 전문가가 앞 다투어 찾는 외교계의 구루(guru)이기도 하다.
한계에 직면한 ‘슈퍼피셜 코리아’가 도약해야 하는 이유
슈퍼피셜(superficial). 피상적인.
지금 한국 사회는 지독한 ‘피상성’ 때문에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은 평균이란 틀에 갇혀 숨막혀한다.
외국에서는 흔히 한국을 ‘재미있는 지옥’에 비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쉼 없이 일하고, 그러고도 밤새 술을 마시는 나라는 지구상에 잘 없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 재미있는 지옥이란 것이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을 뜻하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막상 안쪽을 들여다보니 피상적인 인맥, 피상적인 제도, 피상적인 과시에 허덕이며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질주하는 이들이 많아 보였다.
왜 한국에는 원칙에 대한 존중 없이 얕은 편법이 난무하는가? 외부인에게는 한없이 차갑고, 끼리끼리의 결속력은 지나치게 끈끈한 슈퍼피셜한 슈퍼 네트워크 사회. 이런 슈퍼 네트워크 사회에서는 “안 되는 것도 없지만 되는 것도 없다”. 19대 대선 기간 대선후보 캠프에는 ‘두더지페서’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수많은 교수가 몰려들었다. 학자의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교수의 지위를 유지한 채 정치에 기웃거리는 폴리페서가 그토록 많은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외국에서는 이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 스탠퍼드 대학 교수들은 매년 봄이 되면 지난해 교수로 활동하면서 ‘책무의 상충(conflict of commitment)’과 ‘이해관계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에 해당하는 일이 있었는지 보고할 의무가 있다. 공정하게 룰을 지키며 본질과 원칙에 충실하자는 취지다.
원칙은 없는데 피상적인 규제는 지나치게 많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국책연구소가 발주한 용역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갖춰야 할 서류만도 열 가지가 넘을 만큼 많다. 계획서와 예산안, 참여자 이력서 정도만 제출하면 되는 외국과 딴판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불필요한 규제는 요령과 편법, 예산 낭비와 효율성 저하를 가져오고, 형식에 치중하다보니 정작 중요한 내용은 오히려 ‘슈퍼피셜’해진다.
대기업들은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음에도 불공정 합병 의혹, 탈세 의혹 등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투명성이 결여된 치부(致富)의 결과다. 피상성은 개인의 삶도 더 불행하게 만든다. 어려서는 좋은 대학에 가려고, 어른이 되어서는 슈퍼 네트워크에 편입되려고 끝없이 발버둥쳐야 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를 불안으로 몰고 가며 매 순간을 절박하게 만든다. 어쩌면 한국은 공포와 불안을 에너지 삼아 굴러가는 사회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원칙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아 나라는 양극단으로 나뉘었고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통합을 너무 쉽게 말한다. 대통령선거 때 가장 빈번하게 난무하는 슬로건 중 하나다. 하지만 통합을 말하려면 분열의 이유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다. 섣부른 통합을 주문할 게 아니라 서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각종 부패와 꼼수부터 뿌리뽑는 게 먼저 할 일 아닐까. (58쪽)
실패할 권리, 남과 다를 권리
실리콘밸리를 생동하게 만드는 정신
혁신은 기술이 아닌 문화에서 나온다. 어떤 것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싶은지에 대한 상상이 존재한 후라야 비로소 기술로 그것을 실현한다. 그러니 사회 전반의 자유로운 분위기, 포용하는 문화가 없다면 한국 기업이 패스트 팔로어는 될 수 있어도 혁신을 주도하는 퍼스트 무버는 되기 어렵지 않을까. 실리콘밸리에서 찾은 청량제 같은 키워드들은 유의미한 영감을 준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 한국 기업들이 아직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소리를 듣는 이유는 한국 사람들이 똑똑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어쩌면 지나치게 똑똑해서 두려움과 걱정이 과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한계에 직면했다. 타인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전에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에 나서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
회복탄력성resilience: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한 경험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한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실패를 지극히 가치 있는 경험으로 여긴다. 트위터의 에번 윌리엄스는 2005년 설립한 오데오(odeo)라는 팟캐스팅 회사가 성공하지 못하자 마지막이라 여기고 떠난 2주간의 휴가에서 트위터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일화로 유명하다.
커미트먼트commitment: 커미트먼트는 ‘약속’ ‘헌신’ ‘전념’으로 번역되는데, 정말 본인이 하고 싶어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바치는 것을 뜻한다. 미국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선발할 때 화려한 스펙을 가진 학생보다는 운동이든 음악이든 봉사활동이든 오랫동안 열정을 갖고 한 가지 일에 전념한 학생에게 더 후한 점수를 준다. 이런 관점에서 인재를 키운다면 한국의 미래도 달라지지 않을까.
다양성diversity: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득이 된다. 미국의 많은 대학과 기업에서는 ‘다양성 책임자’를 두고 인종, 사회 계층, 성 정체성 등 여러 면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을 모으기 위해 애쓴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자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있는 조직에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나오는 유연하고 색다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중에서도 저자가 특히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다양한 것을 포용할 줄 아는 유연성이다. 사회적 맥락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무조건 타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이 그토록 외치는 ‘글로벌’ 시대에 다양성이란 화두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로마법만 강요하는 로마에는 이제 아무도 가지 않는 시대가 됐다. 한국 사회가 유연성을 획득하지 않는다면 해외 인재 유치는커녕 한국에 있던 인재마저 한국을 떠날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생긴 대로’ 사는 것도 명백히 죄가 될 수 있다. 남과 다르게 생겼으면, 남과 다른 방식으로 살면, 특별히 피해를 주지 않아도 다르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배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