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풍부하고 독창적이며 도발적인 책”
고문, 전쟁, 창조성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다
고통, 언어, 창조를 연결하는 독창적인 사유를 통해 인간의 창조와 문명을 고찰한 일레인 스캐리의 야심작 《고통받는 몸》의 한국어판이 출간되었다. 출간과 동시에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받은 《고통받는 몸》 은 저자 일레인 스캐리를 단숨에 석학의 반열에 올리며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일반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로도 선정되었다. 《고통받는 몸》은 일레인 스캐리의 사유를 안내하는 핵심 저서로, 스캐리의 나머지 저작들에 나타나는 키워드와 아이디어가 전부 맹아의 형태로 이 책에 담겨 있다. 《고통받는 몸》이 다루는 고통, 상해, 고문, 전쟁, 핵무기, 동의, 재현, 상상, 창조 등은 이후 스캐리의 다른 저작들에서도 주요한 관심사로 등장한다.
고통의 경험과 고문에 관한 논의에서 고전이 된 이 책은 현재까지도 매우 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특히 육체적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과 공유 불가능성이 논의되는 부분 및 고통이 자아, 언어, 세계를 파괴하는 측면을 기술하는 부분, 몸이 겪는 고통의 측면에서 고문과 전쟁의 구조를 통찰한 부분은 관련 논의에서 빠짐없이 등장한다. 《고통받는 몸》은 기본적으로 언어는 물론 한 사람의 세계 전체를 파괴하는 고통을 들여다보고, 고통을 회복해 세계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여기서 스캐리는 고통의 발생 및 제거/회복이 ‘파괴하기’와 ‘창조하기’라는 두 가지 주요한 활동과 맞물려 이루어진다는 점을 시사한다. 독자들은 고통으로 인한 세계의 파괴에서 시작해 고통을 제거하고자 촉발된 인간들의 세계 창조로 움직여 나가는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스캐리는 창조를 고통을 낫게 하고 치유하는 집단적 노력으로, 다시 말해 타인과 함께함으로써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창조가 과도한 팽창으로 이해되는 시대에 이처럼 긍정적인 잠재력으로 창조를 사고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매우 낯선 것으로. 스캐리의 독특한 사유를 짐작케 한다.
* 몸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들을 포착하다
《고통받는 몸》의 세부적인 논의들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책이 쓰인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레인 스캐리가 《고통받는 몸》을 쓴 1970년대는 과연 어떤 시기였을까? 이 물음을 이렇게 바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1970년대는 인간의 몸에 어떠한 폭력과 위협이 가해지던 시기였을까?
《고통받는 몸》이 쓰인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은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로, 미·소 갈등과 핵무기 군비 경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1979년에는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해 미국 사회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집필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국제앰네스티의 고문 철폐 캠페인이었다. 1972년에 시작되어 10년간 지속된 이 캠페인은 세계 곳곳 독재정권하의 고문의 실상을 드러냈다. 이 캠페인을 통해 국제앰네스티는 신뢰받는 조직으로 크게 성장해 노벨상(1977년)과 유엔인권상(1978년)을 수상하게 된다.
이렇듯 《고통받는 몸》은 인간이 대규모로 상해를 입었고 입고 있으며 앞으로도 입을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당대의 상황을 기민하게 인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고통받는 몸》을 시작으로 스캐리는 인간이 겪는 상해와 고통, 그리고 그처럼 언어로 표현되기 힘든 것들을 표현하는 문제를 끈질기게 탐구해나갔다. 2001년의 9.11 사건과 뒤이은 ‘대테러 전쟁’ 의 맥락에서 나온 《누가 나라를 지켰는가》(2003), 《법의 지배, 인간의 실정》(2010) 및 핵무기의 위험과 그에 맞설 수 있는 민주주의와 법을 논하는 《핵무기 군주제》(2014) 등은 모두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쓰여진 저작들이다. 1970년대를 관통한 고문 철폐 캠페인부터 냉전 시기부터 이어지고 있는 핵무기 위험까지, 스캐리는 폭력과 상해로 인한 몸의 고통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고통은 표현될 수 있는가
“육체적 고통엔 목소리가 없다. 하지만 고통이 마침내 목소리를 찾을 때 고통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스캐리는 《고통받는 몸》이 다루는 주제를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육체적 고통을 표현하는 일의 어려움이 첫 번째 주제이며, 그다음으로는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발생하는 정치적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창조가 지니는 본성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어떻게 ‘창조’를 고통을 극복하는 하나의 윤리로 탐구할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육체적 고통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표현 불가능성은 《고통받는 몸》의 첫 문을 여는 논의가 된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은 너무도 자명한 현실이지만, 타인이 그 고통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통해 그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타인이 이해하는 그 괴로움은 실제 고통의 미미한 단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고통을 겪는 사람의 ‘고통스러워하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확신이지만, 그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고통에 관해 듣기’는 ‘의심하기’의 가장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스캐리는 고통을 언어의 문제에 밀착해 사유한다. 소포클레스 작품의 영어판에서 등장하는 ‘아!’ ‘아!!!’와 같은 외마디의 비명이 시사하듯, 고통 앞에서 언어는 철저히 부서진다. 고통스러워하는 필록테테스의 울부짖음과 비명이 영어에서는 상응하는 말을 찾지 못해 ‘아’ 같은 단일 음절로 표현된 것인데, 스캐리는 이것이 특정 언어의 표현 문제가 아니라 언어를 굳게 하는 고통의 완전한 경직성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한다. 스캐리에 따르면, 고통은 애초에 언어에 저항할 뿐만 아니라 언어를 적극적으로 분쇄하여 언어 이전의 소리와 울부짖음으로 되돌리는 본성을 갖는다. 이는 고통이 우리 의식의 다른 상태들과 다른 예외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연유한다. 말하자면 고통은 의식의 내적 상태가 외부의 대상을 수반한다는 인식 자체를 중단시킨다. 사랑, 증오, 두려움 등과 같은 상태들은 항상 무언가에 대해 형성되거나 무언가를 향해 있다. 우리가 ‘~에 대한 사랑’ ‘~를 향한 증오’ 등과 같은 목록들을 어렵지 않게 나열할 수 있는 이유다. 무한히 나열될 수 있는 이런 언어 목록들은 몸의 경계를 넘어 외부의 공유할 수 있는 세계로 이동해나가는 인간의 능력을 시사한다. 하지만 고통이 개입하는 순간 인간의 이러한 능력은 중단된다. 즉 고통은 지시 대상을 갖지 않는다. 바로 이 이 이유 때문에 고통은 다른 어떤 현상보다도 더 언어로 대상화되는 데 저항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언어적 대상화에 저항한다는 사실, 즉 고통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모종의 정치적, 지각적 문제들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이 정치적, 지각적 문제들을 살펴보면 고통이 ‘권력 문제’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통상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통에 관심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고통을 언어적으로 재현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이 곧 고통을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일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고통의 존재 자체가 아예 부인되기도 한다. 이처럼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은 고통받는 사람의 현실과 다른 이들의 현실 사이에 완전한 단절을 일으킨다. 나아가 우리는 고문과 전쟁에서 고통의 실제성이 고통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이전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고문과 전쟁에서 고통받는 몸, 상해를 입은 몸, 없애기 어려운 죽은 몸 등 몸의 논박할 수 없는 실제성은 자신의 원천에서 분리되어 권력의 이데올로기나 쟁점에 부여된다. 한 인간이 겪는 절대적 고통이 절대적 권력 및 전쟁 결과라는 허구로 대체, 전시되는 것이다.
* ‘함께’ 고통의 언어를 만들어내기
고통의 표현 불가능성은 역설적으로 고통의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들을 촉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