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어워드 파이널리스트
★뉴욕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뉴스테이츠먼, 옵저버 선정 올해의 책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대도시의 기쁨과 위험을 만끽했던 여성들을 따라 걷는 여행
“도시를 활보하는 여자들이 등장하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책은 ‘걷기의 서사’를 온전히 여성들의 몫으로 할당한다.”―장영은(『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그녀가 한국의 어느 도시에 와본 적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우리에겐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로런 엘킨 방식의 기록을 우리의 도시에서 우리가 해볼 수 있을 테니까.”―김소연(시인)
“로런 엘킨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비판적 사색가 중 하나다. 그녀 세대의 수전 손택.”―데버라 리비(『알고 싶지 않은 것들』)
‘제2의 리베카 솔닛’ ‘그녀 세대의 수전 손택’
로런 엘킨이 그려낸 여성 예술가들의 초상
여성이 도시를 걸을 때, 혁명과 전복이 일어난다
걷는 행위는 오랜 세월 예찬되어왔다. 많은 사상가들과 작가들이 걷기가 지닌 다채로운 의미, 사색과 예술과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이 행위가 인류에게 갖는 의미를 탐구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공장소를 걷는 일은 대단히 성별화되어 있는 일이기도 했다. 여성이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는 길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던 시대, ‘거리의 여자(성매매 여성)’라는 낙인이 찍히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그리 먼 과거가 아니다. 그런 금지나 낙인이 없는 지금도 홀로 걷기는 여성에게 안전하고 자유롭기만 한 일은 아니다.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밤길의 잠재적인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대상화하는 시선을 감내해야 한다. 걷기의 역사와 의미를 총망라한 책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도 이와 같은 지적을 했다. 솔닛은 이 책의 한 장을 할애해 걸을 수 있는 공공장소가 여성과 소수자에게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를 살핀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은 리베카 솔닛의 이러한 작업에 발을 딛고서 이 주제를 더 깊고 넓게 파고든 책이다. 로런 엘킨은 여성이 도시에서 걸을 때 만나는 위험과 매혹을 탐구한다. 이 책의 원제는 ‘플라뇌즈(flâneuse)’다. 보들레르로 대표되는 근대의 도시 보행자, 천천히 걸으며 도시를 관찰하는 산보자를 뜻하는 말인 ‘플라뇌르(flaneur)’라는 남성형 명사를 여성형으로 바꾼 단어다. 단어의 성을 바꿈으로써 로런 엘킨은 이 남성형 명사를 둘러싸고 형성되어온 걷기의 서사를 전복한다. 여성은 어떻게 도시 환경에서 배제되어왔는가, 그럼에도 도시는 여성들에게 어떤 자유와 기쁨을 안겨주는가, 여성이 도시를 걷기 시작할 때 걷기라는 행위의 의미가 어떻게 뒤바뀌는가를 탐색한다.
엘킨은 분명히 존재했으나 지워져온 여성의 지성사와 문화사를 되찾기 위해 전 세계의 대도시를 두 발로 걷는다. 그리고 자신보다 앞서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베네치아를 누비며 위반하고 창조했던 여성 예술가들을 만난다.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 내린 ‘플라뇌즈’의 초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조르주 상드, 버지니아 울프, 진 리스, 소피 칼, 아녜스 바르다 등의 삶과 작품을 통해 엘킨은 도시와 여성의 신산한 동시에 짜릿한 관계를 생생하고 다채롭게 보여준다.
나는 만들어진 환경, 도시를 좋아한다. 도시의 경계나 도시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도시 자체에 관심이 있다. 도시의 심장. 여럿으로 나뉜 구역, 지구, 길모퉁이. 여성이 힘을 얻는 곳도 도시의 중심이다. 여성은 도시의 심장에 몸을 던지고 걸어선 안되는 곳을 걷는다. 다른 사람(남성)은 아무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걷는 그 한복판을 걷는다. 위반의 행위다. 여자라면 고어텍스를 입고 쭈그려 앉지 않아도 전복적일 수 있다. 그냥 문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된다.(41)
도시에는 항상 여자들이 있었다. 도시에 대해 쓰고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들고 등등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도시와 어울렸던 여자들이 많았다. [……] 도시를 돌아다니는 기쁨은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다를 바 없다. 플라뇌르의 여성 버전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해버리면, 여자들이 도시와 상호작용해온 방식을 남성의 방식 안에 가두게 되고 만다. 사회적 관습이나 제약에 대해 말할 수는 있으나 여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워서는 안 된다. 대신 도시를 걷는다는 게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여성을 남성적 개념에 맞추려 하는 대신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면 그럴 수 있을지 모른다.
아까 했던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 거리에서 보들레르를 지나쳐간 플라뇌즈가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28~29)
내가 이 책에서 그리는 초상은 플라뇌즈가 단순히 플라뇌르의 여성형이 아니고, 플라뇌즈라는 자체의 개념으로 인지하고 그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플라뇌즈는 밖으로 여행을 떠나고 가서는 안 되는 곳으로 간다. 가정이나 소속 같은 단어가 그간 여성에게 불리하게 사용되었음을 의식하게 한다. 플라뇌즈는 도시의 창조적 잠재성과 걷기가 주는 해방 가능성에 긴밀하게 주파수가 맞추어진, 재능과 확신이 있는 여성이다. 플라뇌즈는 존재한다. 우리가 앞에 놓인 길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영역을 밝혀나갈 때마다 존재한다.(44)
우리는 개인인가 군중의 일부인가? 우리는 두드러지고 싶은가 눈에 뜨이지 않게 섞이고 싶은가? 어느 쪽이든 뜻대로 하기가 가능하기는 한가? 성별과 무관하게, 우리 각자는 군중 속에서 어떻게 비치기를 바라나? 시선을 끌기를 바라나 시선을 피하기를 바라나? 현저한 존재이기를 바라나 눈에 뜨이지 않고 묻히기를 바라나? 돋보이기를 바라나 무시되기를 바라나?(13)
도시가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동등한 가능성을 허락하는 곳이라고 이상화할 생각은 없다. 컬럼비아대학교와 주변 동네 사이의 복잡한 역사만 보아도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공정한 세상을 만들 최선의 기회를 구할 수 있는 곳도 도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움직임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64~65)
나는 걷기가 어떤 면에서 읽기와 비슷하기 때문에 걷는다. 걷기를 통해 나와 무관한 삶을 엿보고 대화를 엿듣고 비밀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고 목소리가 너무 시끄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같이 가는 동반자가 있기 마련이다. 거리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도시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란히 걷는다.(42)
조르주 상드에서 아녜스 바르다까지, 새롭게 다시 읽는 여성 예술가들
로런 엘킨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고 여겼던 여성 예술가들을 읽어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19세기 작가 조르주 상드부터 얼마 전 타계한 누벨바그 감독 아녜스 바르다에 이르기까지, 엘킨은 여러 시대를 가로지르며 이들의 작품을 다시 읽고 이들의 또 다른 면모를 조명한다.
이를테면 엘킨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여성이 방 밖으로 나갔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 플라뇌즈에 관한 탁월한 에세이를 쓴 작가, 도시 공간을 온몸으로 감각하려 했고 여성과 도시의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한 작가로서 버지니아 울프를 소개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의 주요 텍스트로 읽히는 진 리스의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 세계가 파리라는 낯선 곳에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지극히 생생하게 펼쳐 보여준다. 남장을 하고 돌아다니고 수많은 애인을 거느린 것으로 유명한 조르주 상드는 혁명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자신의 작품 안에서 사회와 젠더에 관한 이상을 어떻게 펼쳐냈는지를 파고든다. 종종 헤밍웨이의 전 부인으로만 알려지는 마사 겔혼, 대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