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서경식
3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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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나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여행 에세이이다. 저자의 이탈리아에 대한 열렬한 관심은 전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미 알 만한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한 바 있고, 카라바조, 단테, 미켈란젤로, 나탈리 긴츠부르그,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왔다. 하지만 이 책에 엮인 내용은 조금 특별하다. 이탈리아 유대인의 역사, 1,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 저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이전과 연결되지만 주된 관심은 ‘근대 인문학의 황혼’이라고 할 법한 시대적 변화로 한 발 옮겨져 있다. 60대의 저자가 찾은 이탈리아는 어딘가 조금 달라졌다.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전쟁으로부터의 교훈,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망각하고 이전보다 더욱 더 천박해져간다. 인간은 애초부터 잔혹하고 어리석은 존재였지만 간혹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어떤 근대적인 시도가,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시도가 반짝 하고 빛났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은 계속해서 희미해져가지만, 그 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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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프롤로그 1장 로마 1 2장 로마 2 3장 페라라 4장 볼로냐·밀라노 5장 토리노 1 6장 토리노 2 7장 밀라노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Description

디아스포라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다시 찾은 인문학의 고향 이탈리아! “‘기행’인 이상 단순히 인문적인 사실과 현상에 대한 고찰에 머물지 않고, 설령 단편적이라 할지라도 직접 찾아가 그 지역의 풍토를 온몸으로 느끼며 과거와 미래로 상상을 펼쳐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나’라는 인간이 몇 번씩 찾아갔던 ‘이탈리아’라는 장소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았던 인간을 향한 마음의 기록이다. 당연히 ‘나’의 주관적인 프리즘을 통해서 본 이미지이며, ‘이탈리아’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나’를 말하는 것에 다름없다. 아아, 이탈리아. 항상 나를 지치게 만드는 이탈리아.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이제 다시는 갈 일은 없을 거야, 라는 생각이 드는 이탈리아. 그렇지만 잠시 시간이 흐르면 잊기 어려운 추억이 되어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이탈리아. 이런 생각은 인간 그 자체를 향한 애증과도 어딘가 닮았다.” _저자의 말 중에서 미켈란젤로에서 마리노 마리니, 단테에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까지, 이탈리아에서 인문주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탐색하다 1. 이탈리아에서 다시 인문학에 대해, 인간에 대해 묻다 이 책은 저자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해 다양한 예술가들과 예술작품을 만나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여행 에세이이다. 저자의 이탈리아에 대한 열렬한 관심은 전작을 읽어본 독자라면 이미 알 만한 것이다. 저자는 이탈리아의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수상한 바 있고, 카라바조, 단테, 미켈란젤로, 나탈리 긴츠부르그,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 이탈리아의 여러 작가와 예술가를 소개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써왔다. 하지만 이 책에 엮인 내용은 조금 특별하다. 이탈리아 유대인의 역사, 1,2차 세계대전 시기 이탈리아 저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이전과 연결되지만 주된 관심은 ‘근대 인문학의 황혼’이라고 할 법한 시대적 변화로 한 발 옮겨져 있다. 60대의 저자가 찾은 이탈리아는 어딘가 조금 달라졌다.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전쟁으로부터의 교훈, 역사로부터의 교훈을 망각하고 이전보다 더욱 더 천박해져간다. 인간은 애초부터 잔혹하고 어리석은 존재였지만 간혹 인간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어떤 근대적인 시도가,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시도가 반짝 하고 빛났던 시기가 있다. 그 시기의 기억은 계속해서 희미해져가지만, 그 시기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1943년 10월 16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이탈리아에서 첫 번째 유대인 일제 체포가 시작됐다. 이때 구속된 사람의 수는 1022명. 그중에는 비유대인 여성 한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이 돌보던, 몸이 자유롭지 못한 유대인 고아와 운명을 함께했던 것이다. 이틀 후 포로들은 가축 운반용 수레 열여덟 대에 실려 아우슈비츠로 압송됐다. 물도 음식도 허용되지 않았던 가혹한 이송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죽었고 사체는 이송 도중 정차장에 차례차례 버려졌다. 1022명 가운데 전쟁이 끝난 후 살아서 돌아온 자는 열다섯 명이었다고 한다. 고대도 중세도 아닌, 그리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옛 유대인 거리에서 달콤한 과자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내 머릿속은 처참한 이미지로 가득 찼다. 카라바조가 그렸던 세계와 겹쳐진다. ‘로마의 참극’은 유럽의 유대인이 경험했던 수난 전체에서 본다면 아주 작은 하나의 삽화에 불과하다. 로마라는 장소에 몸을 두고 있으면, 이조차도 고대부터 거듭되어온 수많은 참극 가운데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감각에 휩싸인다.(61) ‘시대정신’이라고 할까. 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20년대 ‘에콜 드 파리’의 공기를 전해주는 모딜리아니와 수틴의 작품은 확실히 어딘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0~1960년대 일본 사회의 공기와 공명하고 있었다. 빈곤과 질병으로 스러져간 천재들의 작품이 전후 일본에서 동경의 대상이 된 까닭은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속에 현세적이고 실리적인 성공을 넘어 삶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던 바람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40대 이하의 많은 일본인들은 모딜리아니와 수틴에게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듯하다. 과거 30년 동안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이 사회 전체를 석권했기 때문에 그런 식의 마음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랬기에 로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모딜리아니와 재회했던 나는 마치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 그리고 젊은 시절의 나 자신과 다시 만난 듯한 기묘한 생각에 사로잡혔던 것이다.(73~75) 카라바조는 전 생애에 걸쳐 약 열두 점에 이르는 목이 잘린 사람을 모티프로 한 그림을 그렸다. 참수에 매혹된 화가라고 해도 좋겠다. 나폴리에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비드」에 등장하는 골리앗은 자화상이다. 두 눈은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왼쪽 눈에는 생명의 잔광이 느껴지지만 오른쪽 눈은 이미 흐릿해져버렸다. 카라바조는 스스로에게 절망하면서, 한편으로 그런 자신을 철저히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화상을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히 ‘근대적인 자아’라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이 점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아, 얼마나 혹독하며 무참한가……. 카라바조라는 인물이 잔혹하다는 뜻이 아니다. 타협 없는 그의 묘사가 인간의 잔혹함, 현실 바로 그대로의 잔혹함과 길항하고 있는 것이다.(47) 미로 같은 좁은 통로를 더듬어 나아가보니 앞에 지하 감옥이 있었다. 천장도, 바닥도, 사방의 벽도 모두 돌로 만들어졌다. 해자 수면보다 위치가 낮아서인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에스테 가문의 당주 니콜로 3세(1383~1441)는 명문 말라테스타 가문 출신의 파리시나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는데, 그녀는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다. 어린 아내는 그의 사생아였던 우고와 불륜에 빠졌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이었던 두 사람은 이 지하 감옥에 유폐되어, 이후 참수에 처해졌다. 니콜로 3세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번째 결혼을 페라라의 에스텐세 성. 하지만 새로 맞은 아내도 파리시나의 망령에 시달리다 목을 매어 자살해버렸다고 한다.(119) 알폰소 1세는 친동생과 배다른 동생을 각각 수십 년이나 차갑고 습한 지하 감옥에 가두었던 셈이다. 게다가 같은 성 안에서 궁정의 의전은 물론, 연회 같은 일상이 계속 벌어졌다. 맛있는 음식에도 질렸을 때, 알폰소 1세는 잠깐이라도 지하 감옥에서 신음하는 동생들을 상상하지 않았을까? 분명 상상했을 것이다. 오히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떠올려보고, 그런 상상이 냉혹한 기쁨을 증식시켜, 맛 좋은 술로 도취된 기분을 더더욱 북돋웠으리라.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렇지 않은가?(121) 넓은 거리에 서서 살짝 고개를 들어 보면 하얗게 빛나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험한 산길을 반파시즘의 투사나 망명자들이 넘나들었을 것이다. “인간성의 이상으로 하얗게 빛나는 봉우리들.”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서 토리노를 방문했을 때 주위를 둘러싼 험준한 산들을 가리켜 나는 그렇게 불렀다. 지금도 산들은 변함없이 거기에 있지만 이상의 광휘는 위협받고 있다. 반파시즘 투쟁의 사명을 짊어지고서 전후 이탈리아의 풍요로운 지적 문화를 형성한 세대는 세상에서 거의 퇴장했다. 이제는 거칠고 천박한 포퓰리스트의 사나운 목소리가 사회를 휘어잡고 있다. 이탈리아만이 아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며 일본이야말로 한층 더 심각하다. 아우슈비츠의 해방 이후 40년도 더 지난 지금, ‘인간성’의 재건을 위해 힘겨운 증언자의 역할을 맡았던 프리모 레비가 살아 있었다면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그리고 무슨 말을 했을까.(231) 내가 아는 토리노, 그을린 듯 우울한 토리노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그저 여행자의 감상일까. 모든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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