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철학

에티엔 발리바르
4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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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분석, 재구성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정세적 변화를 날카롭게 분석한 에티엔 발리바르의 저작 《마르크스의 철학》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다. 이번 한국어판은 1993년의 《마르크스의 철학》 초판을 개정, 증보한 완전한 의미의 재판(2014)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재판 서문인 와 재판 후기인 가 추가된 이 판본은 독자들이 《마르크스의 철학》 본문의 논의를 최근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 특히 재판 후기는 《마르크스의 철학》 2장의 핵심인 마르크스의 철학에 ‘관개체성의 철학’ 내지는 ‘관계의 존재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촉발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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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of Contents

해제 에티엔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인가? :하나의 과잉결정에서 다른 과잉결정으로 _ 진태원 6 옮긴이 일러두기 :새로운 번역본 출간에 부쳐 27 재판 일러두기 31 재판 서문 :알튀세르적 마르크스주의에서 마르크스의 철학들로? 《마르크스의 철학》 출간 20년 후 38 1장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인가 마르크스의 철학인가? 59 2장 세계를 변화시키자 : 프락시스에서 생산으로 85 3장 이데올로기 또는 물신숭배 : 권력과 주체화/복종 139 4장 시간과 진보 : 또다시 역사철학인가? 205 5장 과학과 혁명 259 재판 후기 :철학적 인간학인가 관계의 존재론인가. ‘포이어바흐에 관한 여섯 번째 테제’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277 문헌 안내 1. 마르크스 자신의 저작들 344 2. 일반 저작들 346 3. 각 장의 이해를 위한 참고문헌 보충 348 부록 1 오히려 인식하라 357 부록 2 마르크스의 ‘두 가지 발견’ 365 부록 3 상품의 사회계약과 화폐의 마르크스적 구성 397 부록 4 수탈자의 수탈에 관하여 437 옮긴이 후기 마르크스주의에서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 : 에티엔 발리바르를 위하여 469

Description

마르크스주의의 종언 이후, 우리는 왜 여전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 발리바르와 함께 영원한 시작의 철학자 마르크스를 읽다 "이 책이 목표하는 것은 우리가 왜 21세기에도 여전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지를 이해하고, 또한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이해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가 철학에 대해 제기하는 질문들과 철학에 대해 제시하는 개념들을 통해 마르크스를 과거의 기념비적 인물일 뿐만 아니라 현재성을 지니는 저자로도 만드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분석, 재구성하고 마르크스주의의 정세적 변화를 날카롭게 분석한 에티엔 발리바르의 저작 《마르크스의 철학》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된다. 이번 한국어판은 1993년의 《마르크스의 철학》 초판을 개정, 증보한 완전한 의미의 재판(2014)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재판 서문인 와 재판 후기인 가 추가된 이 판본은 독자들이 《마르크스의 철학》 본문의 논의를 최근의 상황에 맞게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조정했다. 특히 재판 후기는 《마르크스의 철학》 2장의 핵심인 마르크스의 철학에 '관개체성의 철학' 내지는 '관계의 존재론'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촉발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애초 프랑스의 라 데쿠베르트 출판사가 대중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입문 총서'의 하나로 《마르크스의 철학》을 기획한 취지를 살려, 새 한국어판 역시 일반 대중이 마르크스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최대한 한국어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본을 만들고자 했다. 책의 주요한 분석 대상인 '주체화' '물신숭배' '관개체성' 등의 개념에 관한 설명은 물론 국내 마르크스 철학의 최근 연구 동향까지 파악할 수 있는 상세한 옮긴이 주석은 마르크스의 철학이 놓여 있는 다양한 지평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다루는 주제와 직결되는 발리바르의 논문 네 편(<오히려 인식하라> <상품의 사회계약과 화폐의 마르크스적 구성> <수탈자의 수탈에 관하여>)을 부록으로 구성해, 독자들이 본문의 논의를 심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 다소 까다롭고 난해할 수 있는 발리바르의 책과 논문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하면서도 밀도 있는 논점들을 제시한 해제(진태원) 역시 또 다른 측면에서 활발한 독해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종언 이후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 2018넌 한국에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돌아온'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마르크스의 철학》 재판의 한국어판 부제인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에 반해"가 주지하듯, 오늘날 다시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 혹은 발리바르를 통해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것은 다소 역설적인 함의를 갖는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혹은 전혀 유효하지 않아 보이는 현실적 조건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적 철학도, 사회운동의 세계관도, 마르크스에게서 만들어진 독트린이나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마르크스의 철학》의 저자인 발리바르 역시 정치경제학 비판 및 사회주의혁명론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적 주제를 접고 유럽 공동체 구성이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근대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관국민적 시민성 등을 모색하는 작업에 집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는 더 이상 마르크스를 읽어야 할 이유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만약, 마르크스주의가 발리바르의 작업들의 전면에서는 사라졌지만, 항상 작업의 주요 준거로서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가령 발리바르의 폭력론은 마르크스주의가 폭력 문제와 맺고 있는 '역설적인 관계'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의 착취를 둘러싼 계급투쟁이 현대 정치의 조건과 쟁점을 구성한다는 점을 이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치와 폭력이라는 대립물들의 결합이 함축하는 정치의 비극적 차원을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 발리바르의 분석이다. 이 실패는 20세기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 및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몰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발리바르가 공산주의라는 주제를 여전히 붙들며 예측 불가능하게 생성되고 있는 공산주의(들)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 말하자면, 이렇듯 발리바르가 점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 즉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마르크스주의적인 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역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몰두하는 주제들에는 너무 적은 논의를 할당하는 이 위치야말로, 오늘날의 독자들이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을 방증해준다. 과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마르크스를 다시 혹은 다르게 읽을 수 있을까? 마르크스를 다시 읽기 위한 방편으로 《마르크스의 철학》이 제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와 함께하는, 그리고 동시에 마르크스에 반대하는" 사유의 필요성이다. 곧, 철학자들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활용은 철학자 자신이 처해 있는 역사성을 의식하도록 하는 자기-비판적인 차원을 영원히 지녀야만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발리바르는 마르크스의 철학이 지니는 모순과 진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모순과 진동은 마르크스의 약점이 아니라, 철학적 활동의 본질 자체, 즉 그 내용, 스타일, 방법 또는 그 지적이고 정치적인 기능들을 질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마르크스 이후에 철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 역시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시대에 실제로 그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러하다. 마르크스를 읽는 몇 가지 단서: 반철학, 비철학, 단절 우리가 마르크스를 읽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주요한 난점 혹은 모순은 마르크스의 철학이 철학에 대한 대안으로서, 즉 비철학이자 반철학으로 제시되었다는 데 있다. 좀 더 엄밀하게 말해 이는, 마르크스의 철학이 일관된 전체를 갖지 않았다는 점을 뜻한다. 특정한 철학의 형태와 단절한 뒤, 마르크스의 이론적 활동은 그를 통일된 체계라는 방향이 아니라 독트린들의 다원성이라는 방향으로, 철학에 미달하는 것과 철학을 초과하는 것 사이의 영원히 진동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마르크스의 후계자들은 물론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발리바르에 따르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마르크스 철학의 이런 측면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철학에 대한 관념 또는 철학을 하는 방법을 변화시키도록 강제할 뿐만 아니라, 철학의 실천 자체를 변형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로 위와 같은 조건들이 우리가 마르크스의 철학들을 찾아야 하는 장소가 된다. 이를 위해 발리바르는 우리가 마르크스의 저술들을 하나의 '열린 전체'로 볼 것을 제안한다. '철학적 저작들'과 '역사학적 저작들', 그리고 '경제학적 저작들' 사이를 구분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이런 구분은 오히려 마르크스가 철학적 전통 전체와 맺어왔던 비판적 관계를, 그리고 마르크스가 이 철학적 전통 전체에 생산했던 혁명적 효과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결국 마르크스의 모든 저작은 철학적 작업이 배어 있는 저작인 동시에 철학적 전통이 철학을 고립시키고 한정 지었던 방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식을 활용하는 입장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마르크스가 그 누구보다도 '정세'의 철학자였다는 점을 상기해보아야 한다. 정세의 측면에서 보면 마르크스에게 몇 가지 주요한 '단절'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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