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국제독서협회 ‘청소년문학 최다 인용’ 부분 선정 “아빠, 왜 이런 일이 저한테 일어나야 했을까요?” 2년 전 납치당한 제프― 그가 악(惡)에 저항했던 가장 현실적인 방법 아직 미성숙한 소년이 흉기로 위협당한 채 누군가에게 납치된다면, 그리고 알 수 없는 곳에 감금당해 풀려날 희망조차 없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반면, 2년 넘게 감금당한 채로 연명하다가 소년이 가까스로 풀려나게 된다면, 그는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가 가능할까? 만약 그것이 쉽지 않다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할까? ‘문지 푸른 문학’ 시리즈로 출간된 캐서린 애킨스(Catherine Atkins)의 <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When Jeff Comes Home)>는 열네 살 소년의 납치 사건을 다루고 있다. 저자의 고향 근처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기초하고 있는 이 이야기는 두 해가 넘도록 끔찍한 육체적, 정서적, 그리고 성적 학대를 겪은 후 가족에게 돌아온 소년의 심리와 그가 부딪혀야 했던 비극적인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두려움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주인공 제프는 범인이 체포되기 전까지 자신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비밀에 부치려 한다. 언뜻 보기에 범인을 변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제프의 행동들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것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자신을 변태 취급하는 동급생들에게 제프는 속 깊은 내면의 소리를 내지른다. “공평하지 않아, 이 바보들아. 나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었어. 너희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고. 그렇다면, 너희들이 이런 식으로는 대접하지 않을 텐데.” 애킨스의 데뷔작인 <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여러 면에서 문제적이다. 우선 납치당한 인물이 소녀가 아닌 소년이라는 점, 그것도 야구선수를 꿈꾸는 유망한 운동선수라는 점이 그렇다. 제프의 치명적인 몰락은 그의 불운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게다가 납치당한 이후 그가 건장한 체격의 남성으로부터 2년 넘게 성적으로 유린당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고려”하도록 만드는 이러한 설정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성적인 학대’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님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납치 이후 풀려나기까지의 생활은 묻어둔 채, 사회에 복귀하는 제프의 심리를 치밀하게 따라가는 구성은 한 개인을 비참하게 만드는 악(惡)이 비단 ‘철창’ 안에 갇힌 범죄자에 국한되지 않음을 극렬하게 보여준다. 제프가 범죄자에 대항해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를 되살리는 장면이 가족애(특히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에 의한 것임은 성장소설의 전형적인 코드를 따라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성장소설들에 비해 <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분명 소재 면에서 진일보한 면모를 보여준다. 번역자인 유제분 교수(부산대 영어교육과)가 교육대학원에서 현직 교사들과 함께 이 작품을 읽었을 때 “한국의 현재 상황보다는 앞서 나가지만, 앞으로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고, 특히 남학생들에게 읽혀야 할 작품으로 이해했다”는 언급은 주목할 만하다. 국제독서협회로부터 ‘청소년문학 최다 인용’ 부분에 선정된 것 또한 이러한 특별함에서 기인했을 터. <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색다른 감동을 통해 ‘성장’과 ‘극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옮긴이 해설 중에서 캐서린 애킨스Catherine Atkins의 <제프가 집에 돌아왔을 때When Jeff Comes Home>는 독자로 하여금 젠더Gender에 대한 고정관념을 다시 고려할 것을 독려하는 작품이다. 성폭력의 희생자를 여성이 아닌 남성 주인공으로 설정함으로써, 이 소설은 기존의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제프가 납치와 강간의 희생자라는 사실은 희생자를 일방적으로 여성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을 전복시킨다. 따라서 이 작품의 독서는 충격적이면서 긴장되고 때로는 괴롭기까지 하다. 더욱이 제프가 건장하면서도 유망한 운동선수였으며 중산층의 백인 청소년 남학생이라는 사실은 강간당한 희생자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기존의 남성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느 청소년문학 작품처럼 이 작품 역시 성인 되기, 즉 남자 주인공을 소재로 ‘남성 되기’를 다룬 작품이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열여섯 살 청소년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는 변환된 서체(원서에서는 이탤릭체)로 활자화되어 생생하게 전달되고 있다. 리얼리즘적 글쓰기는 아동문학이나 청소년문학에서 성 학대를 예방하는 훌륭한 독서를 유도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말하자면 심리주의적 리얼리즘 소설인 것이다. 작품의 프롤로그는 제프가 납치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제1장부터 제프의 납치 생활이 소개될 것으로 기대하던 독자의 예상과는 달리, 납치 생활 2년 반 이후 제프가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곧바로 이어진다. 전체 이야기는 2년 반 동안의 제프의 행적에 대한 FBI의 상상과 추적, 제프가 새로 가정과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겪는 정체성의 혼란에 관한 것이다. [……] 제프의 갈등과 혼동은 자신의 등에 난 상처 자국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납치범이 남긴 등의 채찍 자국은 제프가 납치와 강간의 경험에서 얻은 육체적 정신적 외상의 증표이다. 제프는 레이의 채찍질이 등에 남긴 상처가 보기에도 끔찍할 것으로 상상하고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의 끝 부분에서 아버지가 거울에 비추어준 자신의 상처가 생각만큼 끔찍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제프가 상상한 만큼 울퉁불퉁하거나 옹이 지지 않고 그저 가느다란 흰줄로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의 등에 남은 상처처럼 그가 완전히 치유되는 데는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제프가 생각했던 것만큼 치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가 주문하는 남성성이 지나치게 고정적이고 정형화되면 될수록, 과거의 트라우마(Trauma,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늪에서 빠져나올 길은 요원할 수 있다. [……] 동성 간의 우정과 동성애를 구별하기 어려워하는 청소년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성애적 남성성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주인공의 가장 절친한 친구인 빈마저도 제프에 대한 자신의 우정이 주위에서 동성애로 이해된다는 사실에 무척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러한 혼란을 청소년문학의 ‘동성애 금기’라는 엄격한 검열 기준으로 논의하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성인들의 공포 내지 강박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문학 작품들에 대한 성인 독자들의 민감한 반응은 모두 청소년문학이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 물음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많은 가치가 흔들리는 동시에 많은 것이 가능해진 포스트 시대에 청소년문학을 오로지 기존의 교육적 측면에만 국한하여 엄격한 검열의 틀을 고집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초콜릿 전쟁The Chocolate War>의 저자 로버트 코마이어Robert Cormier는 이 물음에 하나의 답변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네버랜드에 살게 될 뿐입니다. 그곳은 성장도 승리의 가능성도 없는 곳이지요.” 이혼, 성폭력, 동성애가 청소년문학에서 금기시되었던 1950~60년대와 지금의 21세기는 엄청난 시대적 차이가 있다. 청소년문학이라고 이러한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성장과 자기 정체성을 중시하는 청소년문학은 넓은 범주에서 아동문학으로 구분되기 쉽지만, 청소년문학 독자의 정신적·미학적 의식의 수준은 오히려 성인문학 독자의 그것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문학의 기능이 현실의 재현을 기본으로 할 때, 청소년문학 역시 현실 재현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옮긴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