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세계 6위의 성매매 공화국에서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이 말하는
성매매 그리고 남성문화
암시장 전문 조사업체인 미국 '하보스코프 닷컴'은 지난 2015년 한국의 성매매 시장을 세계 6위(12조 9,000억 원) 규모라고 발표했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6 성매매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한국 남성 중 절반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의 성 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명실상부 '성매매 공화국'인 이 나라에서는 모든 남자가 성매매의 실질적, 잠재적 수요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성매매 문제를 바라보는 초점은 언제나 성 판매 여성에 있었다. 성매매 수요가 성 산업에 어떻게 기여해 왔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수요'의 차원에서 성매매를 이야기하는 남성 모임 〈수요자 포럼〉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졌다.
〈수요자 포럼〉의 첫 번째 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1 : 남자의 눈으로 본 남성문화》의 필자들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쉬쉬해 온 성매매 문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온 남성문화에 관해 말하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남성문화는 결코 성매매 업소 주변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성매매 경험이 없는 그들이 성매매를 말할 수 있는, 말해야 하는 이유다.
성매매 경험도 없는 그들이 수요자 포럼에서 성매매를 이야기한 건, 성매매가 단지 경험 당사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룸살롱으로 향하던 회식 자리에서, 섹스 경험 여부로 남성성을 판가름하는 남성 커뮤니티에서, 안면을 트기가 무섭게 위아래부터 따지는 남자들과, 불편함은 느끼지만 포르노를 놓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우리는 성매매와 분리되지 않는 남성문화의 면면을 마주합니다. ― 〈여는 글〉 중에서
남성 세계에서
'진짜 사나이'로 인정받기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문화방송의 〈진짜 사나이〉는 출연자들이 일정 기간 군대에 입소해 군인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진짜 사나이'라는 제목이 함의하는 것은, 남성이 군대라는 집단의 문화에 적응하고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냈을 때 비로소 남성성을 지닌 존재로, 남성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남성 세계에서 남성성을 인정받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남성성의 결여는 곧 '이등 시민'으로의 추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남성성을 확인하는 또 다른 영역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性)이다. 성매매를 포함해 섹스 경험이 없는 남성 역시 이등 시민으로 간주된다.
군대와 노동 현장에서의 경험은 똑같았다. 두 사회 모두 성매매 경험을 성인 남성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경험이 없는 남성은 '여자 하나 못 따먹는' 유약한 남성으로 취급받으며 집단 내에서 배제된다. (배성민, 15쪽)
남자들은 자신의 첫 경험을 공개하며 주변 남자들에게 진정한 '남성'으로 인정받게 된다. 첫 경험 시기가 어리면 어릴수록, 내용이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그 경험이 업소에서 한 성매매인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남성'으로 인정받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박상현, 21쪽)
익숙한 포르노
낯선 섹슈얼리티
한국 남성들은 아주 일찍부터 포르노를 접하면서 성장한다. 청소년의 성관계는 물론이고 이성 교제마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한국 사회에서 남성 청소년들은 여성과의 실질적인 관계 맺기가 아닌 포르노라는 왜곡된 렌즈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형성한다. 그리하여 성인이 되어서도 포르노라는 허구가 아닌 진짜 자신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서는 무지한 결과를 낳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아져 야동을 많이 봤습니다. 한 편을 보고 나면 다른 편이 보고 싶은 것을 참기 어렵더군요. 호기심에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찾아보았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들까지 보게 되었을 때, 이게 아니다 싶었죠. (82쪽)
일본 사회에서는 포르노를 너무나 많이,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다. 포르노가 홍수처럼 넘치는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일본 남성들은 마치 물에 빠지듯 포르노가 그려내는 '남녀 관계',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며 성장해왔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부터 자연스레 포르노를 보게 되었다. 그럼 나는 과연 어떤 '남녀 관계', 어떤 '섹슈얼리티'를 가지고 살아왔을까. (잇페이, 56~57쪽)
섹스에 있어서도 나는 자신의 느낌이나 만족도에 대해서 스스로 물어보지는 못했다. (...) 사십 년을 함께 한 내 몸에 대해서 모르는 것, 나 자신에게 묻지 않은 게 아직도 너무 많다. (하루살이 아재, 62~63쪽)
계속되는 미투 운동
성폭력에 둔감한 남성들
대다수 남성에게 성폭력은 '남의 일'로 인식된다. 그들에게 성폭력이 의미를 갖는 순간은 가족이나 애인이 피해를 당하거나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받을 때뿐이다. 그러나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이 문제의 타자일 수 없다.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다'는 항변보다 남성들에게 더 시급한 것은 '그렇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이다. 성폭력에 대한 자신의 둔감함을 인식하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
예전에 교제하던 여자친구가 등교길에 전철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모르는 남성이 자기 신체를 만지는 공포감, 그 트라우마 때문에 엘리베이터 등 좁은 공간에서 남성과 둘만 있게 될 때 너무 무섭다고도 고백했다. 만나고 몇 년이 지난 그날에야 나는 여자친구의 경험과 공포심에 대해 알게 되었다. 동시에 성폭력 문제에 대해 둔감하고 무관심하게 살아온 '나'를 통감하게 되었다. (잇페이, 57쪽)
성매매는 무엇인가?
질문을 닫지 않기
어떤 나라를 잠시 여행했다고 해서 그 나라를 전부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성매매 경험이 있다고 하여 성 산업 전반과 성매매의 사회적 맥락까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매월 성매매를 이야기해 온 이 책의 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성매매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이 문제를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질문을 멈출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31년을 살아오면서 내가 성매매에 대해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단지 성 구매를 하지 않는다고 자족하면서 살아온 것이 부끄럽다. (박상현, 100~101쪽)
그동안 상상만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다 보니 현실감각이 없었다. 업소도 마찬가지다. 성매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업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오직 상상으로만 그려볼 수 있는 세계가 아닐까. (정종우, 131쪽)
"섹스는 무엇인가? 그리고 성매매는 무엇인가?" "돈을 받고 성을 파는 절대다수는 어째서 여성인가?"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금 이 질문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정답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인지도 모르겠다. (허주영, 118~119쪽)
성매매 그리고 남성문화
그것은 남성 자신의 이야기
학자도 활동가도 아닌 필자들의 글은 정교하거나 날카롭지 않다. 매월 〈수요자 포럼〉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도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남성들이 오랜 시간 쉬쉬해 온 성매매 문제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해 온 남성문화에 관해 말하기를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