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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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독재자인 게 틀림없는데, 떠들썩한 하루 동안의 환영 이벤트로 김정은의 이미지는 더 할 수 없이 미화되었다. 여론조사에서 77.5%가 김정은에게 신뢰가 간다고 답했다 한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은 누구이며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온 세계의 이목이 북한과 그 지도자 김정은에게 쏠리고 있는 지금,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가 밝히는 평양 심장부 이야기는 한국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에게 북한의 정확한 실상을 보여 줄 것이다. 우선 한반도 비핵화 문제. 북한 핵폐기냐, 한반도 비핵화냐 라는 용어 중 이번 남북정상 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택했다. 이것은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으로 결국 주한 미군을 몰아내겠다는 전략에 다름 아니다.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그것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 김정일은 "조선반도 비핵화란 북한만이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241~242) - 1차 핵실험 직후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북한 외무 차관 강석주가 나눈 다음의 대화에서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 - 북한의 핵실험에 가장 분노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1차 핵실험 사흘 후인 2006년 10월 12일, 중국 선양에서 외무성 1부상 강석주와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李肇星·리자오싱)이 비밀리에 만났다. 북한 외무성 회담기록문에 따르면 리조성은 강석주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인민은 조선 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대단히 존경하고 있다. 김일성 동지는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매우 전략적인 유산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조선 동지들은 그의 사상과 유산을 어기고 있다. 김일성 동지께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제시하신 것은 조선과 같이 작은 나라가 핵 경쟁에 말려들 경우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붕괴될 수 있음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같은 큰 나라도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에 말려들었다가 결국 붕괴되었다.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산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 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 그러자 강석주는 이렇게 되받아쳤다.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련의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 외교부장이 소련의 붕괴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경쟁 때문이 아니다.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 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우리처럼 당을 강화하고 사상 사업을 중시했다면 아무리 많은 군비를 쏟아 부었다고 하더라도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은 또한 김일성 수령님의 탁월하고 위대한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을 언급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 오직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보를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기 바란다.” 강석주가 사용한 이 논리는 이후 북한의 일관된 핵 논리이기도 하다. (p.240~242) ----------------------- 김일성 3대의 핵 집착 -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는 다른 방식으로 신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고, 그 방식이 핵과 ICBM, 공포정치였다. 신격화는커녕 지도자로서의 정통성과 명분마저 부족한 김정은이 결국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그리고 공포정치다. 이것으로 카리스마를 형성하고 신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체제는 물론 김정은 자체가 무너진다. 김정은이 그토록 핵과 ICBM에 집착하고 장성택 숙청으로 대표되는 공포정치를 휘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18) - 핵은 체제 보장을 위해 90년대에 갑자기 개발된 것이 아니다. 6. 25 와중에 피란민의 핵 공포를 확인하고 이때부터 김일성은 핵개발을 시작했다. 50년대에 이미 원자폭탄 개발 핵 연구소를 설립했고, 70년대 중반 이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핵무기 개발 전략)를 주장하며, 핵 불사용 정책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p.40~48) 태영호의 간절한 바램 - 2016년 12월 나는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면서 통일부 출입 기자단과 회견을 가졌다. 이때 나는 북한의 핵개발 완성 계획을 공개하고 이를 ‘핵 질주 계획’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7년에 감행한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는 나로서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 제스처를 보인 것은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핵 문제만큼은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면 좋겠다. (p.404~405) 철도 건설 문제.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철도 건설도 포함되어 있다. 6.15 공동 성명 이후 두 번째다. 그러나 태공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은 그것이 공허한 선언임을 보여준다. ----------------------- - 김정일은 6·15 공동선언 직후 러시아와도 협력의 제스처를 취했다. 2000년 7월 1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1박 2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의 지도자로서는 사상 최초의 방북이었다. 김정일은 이듬해 7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러시아를 답방했다. 김정일과 푸틴은 평양과 모스크바에서 각각 「조러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반도, 러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한다는 부분이었다. 남북 경제협력에 이어 한반도 종단철도가 연결된다면 북한에 엄청난 경제적 혜택이 들어올 것이 확실했다. 김정일도 이 계획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러시아 답방 1년 만인 2002년 8월 러시아 극동 지역을 다시 방문해 조러 모스크바 선언의 이행 문제를 협상하고 돌아왔다. 그런데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북한 체제의 한계 때문에 한반도 종단철도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러시아는 건설 의지가 확실했고, 한국은 언제라도 지원할 의사가 있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국 철도를 연결하는 수송로를 열고 컨테이너나 석탄과 같은 중량 화물을 수송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철도를 어느 정도 직선화하고 터널과 교량도 많이 건설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북한의 동해안 방어부대 대부분이 철도를 따라 배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한반도 종단철도가 건설되어 철도 현대화가 진행되면 대대적인 부대 이전이 불가피했다. 북한 군부는 6·25전쟁에서 전세가 역전된 원인을 인천상륙작전 때문이라고 보고 수십 년에 걸쳐 동해안 철도를 따라 방대한 해안방어선을 구축했다. 철도 현대화 사업이 벌어지면 해안방어선을 다시 구축해야 한다. 북한 군부는 이미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