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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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사람은 왜 한겨울에 선글라스를 쓸까? 이탈리아 사람의 선글라스 사랑은 유난해서 한겨울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세계 최대 선글라스 제조국 역시 이탈리아다. 종종 미국 브랜드로 오해받는 레이밴(Ray-ban) 선글라스는 사실 1961년 돌로미테 산악 지대의 소도시 아고르도에서 창업한 룩소티카(Luxottica)의 브랜드다. 룩소티카는 또 다른 유명 선글라스 브랜드 오클리(Oakley)도 소유하고 있다. 선글라스를 패션 아이템으로만 보면 계절을 무시한 선글라스 착용은 이상하지 않다.(207~208쪽) 로마에서 15년 넘게 현지 특파원으로 활동한 존 후퍼는 여기에 굳이 질문을 던진다. “혹시 이탈리아인이 선글라스는 좋아하는 것은 포커 선수가 선글라스는 쓰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자기 얼굴을 절반은 숨기고 자기만 다른 사람을 관찰하고 싶어서가 아닐까?”(208쪽) 남을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겉보기로 판단하는 것이다 가리고 싶어 하는 심리와 내보이는 연출에 신경 쓰는 행동은 묘하게 연결된다. 정치인의 패션을 비교하며 숨은 뜻을 해석하는 종류의 기사를 가장 철저하게 쓰는 나라가 이탈리아다. 총리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실비로 베를루스코니와 로마노 프로디의 룩(look)을 비교한 한 기사는 두 사람의 속옷까지 비교했다(베를루스코니는 삼각팬티를, 프로디는 사각팬티를 선호한다고 썼다). 옷차림에 대한 세세한 평가는 외국 정치인도 피해갈 수 없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낸시 펠로시가 연방 하원의원장에 선출됐을 때, 이탈리아 언론은 그녀에 관한 기사의 사진 캡션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내보냈다. “낸시 달레산드로 펠로시, 66세. 볼티모어 출생. 캘리포니아로 이주. 아르마니 브랜드 옷을 선호.” 더 노골적인 스타일 분석에는 스타킹 하나, 벨트 하나의 가격까지 기재한다.(88~89쪽) 이탈리아만큼 시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이탈리아인의 트레이드마크인 격렬한 손동작을 떠올려보자. 때로는 대화를 듣지 않고도 무슨 말을 하는지 손동작만으로 알 수 있을 만큼 풍부한 표현이 가능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은 외국인과 대화하며 감정을 제대로 읽지 못해 곤혹스러워하는 경우가 많다.(80쪽) 일상적으로 쓰이는 손동작만 100여 개에 이른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손동작은 덜 사용하는 편이다.(90쪽) 진짜 진실은 미확인으로 남는다 이탈리아 언론은 거의 암호 수준의 기사를 쓴다. 어느 재판에 관한 기사를 가상으로 구성해보자. 아마 이탈리아 기자는 “파리 한 마리가 판사의 머리 주변을 끈질기게 돌고 있다”로 시작해서 “그 운명적인 토요일에 공장 바깥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남자는 생산라인에서 몇 달째 반복해 발생한 문제점이 아니라 여자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특별한 여자. 바로 그의 아내였다”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거쳐 맨 뒤에 가서야 재판 결과에 해당하는 사건의 ‘요지’를 밝힐 것이다.(61쪽) 상징과 암시가 곳곳에 있는 이탈리아 기사의 또 다른 특징은 “포르토피노 살인사건: 무수히 많은 진실과 가장 최근에 떠오른 진실” 따위의 헤드라인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탈리아인은 진실이 하나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이는 진실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베리타’(verita)가 ‘버전’이라는 뜻을 동시에 함축한다는 데서 잘 드러난다.(60쪽) 이탈리아의 한 판사는 “진짜 진실은 미확인으로 남을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또 다를 수 있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의 최후에 관한 엇갈리는 ‘베리타’만큼 이 말을 증명해주는 사건은 없을 것이다. 무솔리니가 죽기 48시간 전부터 죽는 순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 버전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으며, 아마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지 모른다.(65쪽) ‘없음’에서 ‘있음’을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힘 이탈리아인이 진실을 일부러 가리는 데 능한 것인지, 가려진 진실에 매혹을 느끼는 것인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이 ‘없음’을 ‘있음’으로 둔갑시키는 데 재능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작된 전 세계적 냉전 시기에 이탈리아는 소련의 침공에 대비할 목적으로 30만 규모의 ‘육군 제3군단’을 베네치아의 평평한 배후지에 배치했다고 전해졌다. 육군 중장이 지휘관으로 임명되었고 파두아에 본부가 설치되었다. 병사들이 모집되었고, 연료와 탄약이 지급되었다. 오로지 ‘서류상’으로만 그랬다. 육군 제3군단은 실제로 존재한 적 없는 허구였다.(73쪽) 대규모 ‘환상’의 축조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무솔리니는 1938년 히틀러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자신이 베를린을 찾았을 때보다 더 인상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도로변 주택들이 단장되고 철거되었다. 이 정도에서 그쳤다면 별난 일도 아니다. 무솔리니는 길가에 가짜 나무를 심고, 판지로 된 가짜 초호화 빌라를 일정 간격으로 세우라고 명령했다. 히틀러가 본 대포 일부마저도 나무로 만든 가짜였다.(72쪽) 증인을 믿느니 도청을 한다 이탈리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수수한 대가를 제시하면 재판 당사자를 위해 거짓으로 증언을 해줄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재판은 그래서 모순되는 증거들로 엉망이 된다. 비명을 들었을 때 부엌에 있었다고 한 아내가 나중에 자기는 집에 없었다고 말을 바꾸고 친구는 슈퍼마켓에서 그녀를 보았다고 증언하는 식이다. 이탈리아 경찰이 사건 해결을 위해 ‘감청’에 열을 올리는 이유이다. 이탈리아에서 연간 발부된 감청 허가 영장은 국민 10만 명당 76건으로, 독일 15건, 프랑스 5건, 영국 6건, 미국 0.5건보다 훨씬 많다.(78쪽)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짓말은 이탈리아인 사이에서 일종의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이는 영리하다, 교활하다, 약삭빠르다 정도로 해석되는 ‘푸르보’(furbo)와 관련이 있다. “나는 정치인이 정직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들이 정직하다는 것은 바보라는 뜻이죠. 나는 ‘푸르보’가 이 나라를 다스리길 원합니다”(267쪽)라고 말한 한 이탈리아인의 발언은 단지 기성 정치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적인 탈세, 무허가 건축, 연줄과 추천을 통한 취업은 그러지 않는 것보다 훨씬 높게 평가받는다. 관례는 법보다 힘이 세다 이탈리아인은 “법이 만들어지기가 무섭게 탈법할 길을 찾아낸다”. 이탈리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노천카페는 대체로 무허가 건물이다. 처음에는 화분이, 나중에는 테이블이, 최후에는 바람막이 유리벽으로 완성되는 몇 개월에 걸친 대공사가 암묵적 용인 아래 이루어진다.(277쪽) 법망을 피하려는 기민함의 반대편에는 전통과 관례에 대한 융통성 없을 정도의 순종이 있다. 로마 시민은 특별한 이유 없이 목요일마다 뇨키를 먹는다.(123쪽) 기원도 불확실한 전통이 계속 그래왔다는 이유로 지켜진다. 베네치아에서는 거리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면허를 상속으로 획득하는 관행이 있어 그림에 전혀 재능이 없어도 상속받은 면허로 거리 미술가로 활동할 수 있다.(241쪽) 익숙한 것을 지키고 선호하는 경향은 이탈리아가 현대미술을 배척하는 태도에서도 엿보인다. 미래파가 태어난 나라이자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나라이건만 국립현대미술관은 2010년 5월에야 개관했다.(129쪽) 전 세계 유일한 직책 ‘간소화 장관’ 이탈리아 사법계는 복잡하고 느리다. 미궁 같은 법 조항을 정리하기 위해 “간소화 장관”이라는 직책이 있었을 정도. 1대 간소화 장관을 역임한 로베르토 칼데롤리가 폐기한 법률만 37만 5,000개에 이른다. “간소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전국적으로 1만 개의 법 조항이 새로 제정되었는데, 독일의 두 배, 영국의 세 배에 이르는 양이다.(56쪽) 재판은 수개월 또는 수년에 걸쳐 띄엄띄엄 열리기 일쑤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