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의 서사가 수명을 다해간다는 21세기 현재, 그럼에도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한번쯤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여기, 한때 그런 사랑의 극점에 닿으려던 젊은이들이 있다. 흡사 시지프의 몸짓으로 운명적 사랑에 닿고자 했던 세 사람, 은빈, 선우, 정애가 바로 그들이다. 예리한 통찰과 사유의 문장, 이숙인의 장편소설 『라일락 와인』은 우리가 한번쯤 꾸는 환각과도 같은 사랑, 현실에 부재하기에 더욱 절실한 신의 존재와도 같은 사랑, 동시에 인간이므로 끝내 부서지고 마는 아픈 열정의 궤적을 그린다.
단일화향조(單一花香調)의 절대향기를 좇는 조향사 은빈. 그녀는 타고난 후각의 소유자로, 라일락의 천연향처럼 무구한 사랑을 꿈꾼다. 그녀는 ‘신과 가족’이라는 어린 날의 낙원을 상실한 후,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용감하게 맞서지 못한다. 다만 자신의 내부로 숨어들어가 스스로를 헐어내고 잃어버린 것들을 복원하려 발버둥친다. 그 잃어버린 하나가 아빠처럼 믿고 따르고 싶은 연인 선우, 다른 하나가 타고난 감각으로 재현해야 할 절대향기의 추출, 그것이다. 그 둘은 그녀에게 언제나 하나이며 시작이자 끝이다. 그녀는 별의 순항처럼 계절의 이동처럼, 언젠가 반드시 섭리처럼 도래할 사랑의 그때, 마음과 발길이 통해 저절로 그와 마주할 절대절명의 한순간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오직 그것만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사랑의 방식이므로.
천상의 소리를 꿈꾸는 얼터너티브 로커 선우. 그는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모른다. 은빈이 절대향기를 좇듯 그는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근원을 좇느라 늘 숨이 가쁘다. 그 안에 그의 사랑이 있고 삶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를 이끈다. 그러므로 그는 어쩌면 은빈과 흡사한 영혼의 쌍생아이다. ‘문명의 얼굴을 한 야만’에 대항하는 자, 무릇 카인의 표지처럼 이마를 찢는 고통과 방황의 화인에 휩싸이는 법. 그들은 끝없이 세상과 불화한다. 선우, 그 노래하는 청년 또한 그랬다. 말로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세계를 꿈꾸었다. 지상의 모든 눈물과 비명이 사라지는 그런 세계를. 자신의 혼을 담아 외치고 죽도록 노래하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 하나조차 제대로 안을 수 없이 무력했다. 그는 마침내 어릿광대의 운명을 거부하고, 스스로 한번에 산화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하여 깊은 바다로 하강하는 비상의 그 순간, 그의 평생 꿈이 이루어진다, 반역하는 가객의 잘린 혀, 눈 먼 동공은 파편이 되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하늘에 걸린 별이 되고 달이 되어 빛난다.
마치 그것만이 구원인 양 사력을 다해 욕망 속으로 질주하는 정애. 그녀는 현존하는 세계를 부수고 다시 세우고 다시 또 부수는 일에 익숙하다. 그것이 그녀를 만드는 힘이다. 그녀는 매순간 회의에 빠지지 않고 결정한다. 미루지 않고 실행한다. 지금, 여기, 순간의 사건만이 전부이며, 너무 뜨거워 손 데일지라도 빛나는 것들은 움켜쥐어야 제 것이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하지만 그녀도 인간이다, 알고 보면 한없이 연약한. 피곤하고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하면 쉴 줄 알았는데, 조금만 더 쥐어짜면 잡힐 줄 알았는데. 자신이 전부라 믿는 것을 조금도 믿지 않던 두 친구, 선우와 은빈 때문에 그녀는 내내 불안하고 초조하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소외감과 좌절감은 그녀를 계속 자극하고 뭔가 확실한 것을 성취하도록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녀는 이제 내려올 수 없다,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없다.
돌아보면 젊음이란, 생의 한순간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몸짓에 다름 아니었다. 은빈, 선우, 정애, 그들은 모두 젊기에 사랑했고, 숨막히게 치열했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으며 하염없이 울부짖었고, 그리고 마침내 원하는 것을 끝내 얻었다, 비록 그 모든 것이 환각의 여정이었을지라도. 소설『라일락 와인』은 그 짧고 휘황한 젊은 사랑에 관한 정직하고 아릿한 기록이다. 쉽게 만질 수 없는 것, 다가갈 수 없는 것, 죽을 듯 살 듯 생명을 다 던져야 얻을 수 있는 것. 그렇다, 여기 이 사랑의 방식을 따라가보자.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 순결한 의미와 대면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