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처음인 것처럼 낯설었다 이동이, 움직임이 기적인 것처럼”
헤맴 끝에 찾아낸 생경한 얼굴의 ‘너’와 ‘나’
서로를 통과하며 넓어지는 찰나의 ‘우리’
균열하는 관계 안에서 함께의 가능성을 길어 올리는
오은경의 세번째 시집
2017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오은경의 세번째 시집 『둘이 거리로 나와』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621번으로 출간되었다. 두 권의 시집을 거치며 특유의 담담하고 사느란 시 세계를 구축해온 그가 “타자로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섬세하면서도 고독한 사유”(강동호, 『시 보다 2023』 추천의 말)로 써 내려간 시 48편을 총 4부로 나눠 묶었다.
그는 한 사람이면서 한 사람이 아니다.
이곳에 남은 그는
계속 다른 사람이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는 그를 모른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겠으나, 그는 자꾸 다른 사람이다. 내가 알 수 없는 사람, 한 사람의 여러 모습은 아니고 여러 사람의 단 한 사람 같은, 나와 다르거나 내가 아닐 수 없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람, 당신.
―「당신 중 한 사람」 부분
첫번째 시집 『한 사람의 불확실』(민음사, 2020)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피어오르는 불확실성에 대하여, 두번째 시집 『산책 소설』(현대문학, 2021)을 통해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일상을 둘러보는 일에 대하여 이야기한 바 있는 시인은 이번 시집 『둘이 거리로 나와』에서 모호함과 불안을 껴안은 채 바깥에 나와 있는 두 사람을 그린다. 이때 한 사람은 나머지 한 사람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도 그와 온전히 포개어지지도 않는다. 거리에 선 그들을 각각 ‘나’와 ‘너’로 호명하거나 ‘우리’로 한데 묶기보다 ‘둘’이라는 수사로 부르는 편이 적절해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때로는 ‘나’라는 구체가 너무나 선명”(「볕이 가득하던 날」)하다가도 “어디에도 나는 없”(「공중제비」)는 듯한 기분이 드는 오은경의 시적 감각 안에서 ‘나’와 ‘너’, ‘있음’과 ‘없음’의 경계는 흐릿해진다.
“‘너’가 떠나고 이제 아무도 곁에 남아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누군가가 ‘나’의 주변에 머물고 있는 듯한 기미를 떨칠 수 없는”(김보경, 해설 「‘우리’라는 불가능의 에로스」) 이상 “나는 너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보물찾기―달리기」)어지기 마련이므로, 오은경의 시 속 인물에게 “바깥에 나”오는 일은 “선택이라고 할 수 없”(「나는 모른다」)다. 인칭대명사로 쉬이 포섭되지 않는 어렴풋한 ‘나’와 ‘너’ 들을 수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이 불가피한 외출에서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따금 서로 손이 스쳐 “너와 손잡고 거리를 거닐” 때면 “진짜 즐”겁고 “안심”(「두 눈으로」)된다는 사실이다. 오은경의 ‘나’로 하여금 ‘너’와 함께 “‘있다’는 게 대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지만”(「떠나온 숲」) 계속해서 거리를 거닐도록 이끄는 힘은, 마치 확실한 ‘우리’처럼 느껴지는 짧은 순간을 향한 조심스러운 기대에서 비롯한다.
“나 역시/마음이 읽히기를 바랐으니까. 한 번쯤//틀리더라도(다르게 적히더라도)”
―‘나의 없음’을 ‘나의 있음’으로 전복하는 사물 되기
내가 의자라면
그녀가 없을 때 보이고, 그녀와 함께일 때 가려져야 한다. 숨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 시간이 계속 과거로 역행한다는 게 문제다.
그녀 없이. 나는 있다. ← 나는 또 의자가 된다. 이번에는 진짜 사물이 되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면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 이제 나는 내 정체가 무엇이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궁금하지 않게 되었다.)
2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
나는 의자였는데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의자가 걸어 다닌다는 것.
그리고 내가 멈춰 설 때
그녀는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묻고 새로 생긴 카페, 골목의 구석구석을 헤맨다. 그녀가 앞장서 나가면
내가 따라가 쫓는다.
―「둘이 거리로 나와」 부분
오은경의 시 속 주체들은 같이 있어도 함께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 그러다 이내 떠나버리고 마는 ‘너’라는 존재에 골몰하며 거리를 거닌다. 하지만 “숲속에 있으면서 숲을 알아차리지 못”(「갈림길」)하듯 ‘너’에 대한 앎은 ‘너’에 몰두해 있을 때 획득될 수 없고, 이에 ‘나’는 ‘너’에 대한 생각과 이입으로부터 빠져나와 ‘너’도 ‘나’도 아닌 다른 무언가의 관점을 취한다. “내가 그녀였다면”이라는 막연한 가정은 ‘나’를 지움으로써 “내가 의자라면”(「둘이 거리로 나와」)이라는 적극적인 수행이 되고, 사물이 된 ‘나’는 “다가가면/희미해지고 물러나면/선명해”(「얼룩」)지는 ‘너’를 있음의 자리로 소환하여 객관적이고도 집요한 눈길로 들여다본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네가” 사물화된 “나를 통과해/지나가는 순간” 애써 소거한 ‘나’가 다시 복원되고 그 외연이 “넓어진다”(「눈동자」)는 것이다. 시선을 두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너’만큼이나 커다래진 ‘나’ 앞에서 오은경의 ‘나’들은 ‘너’를 이해하려면 ‘나’에 대한 이해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새로이 존재하게 된 ‘나’는 “너를 통과할 때/되찾은 내 그림자”(「창문에 누워」)를 뒤축에 붙이고 사물이 아닌 ‘나’로서 ‘너’를 찾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온다.
“(새로운) 나를 찾아봐줘요 네게서 멀지 않을 테니”
―‘우리의 있었음’을 확인하며 또 다른 길 찾기
“보물찾기”라는 동일한 제목을 달고 시집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세 편의 시(「보물찾기―줄다리기」 「보물찾기―숨바꼭질」 「보물찾기―달리기」)는 오은경의 시가 걷기와 되기를 거쳐 ‘찾기’에 다다랐음을 환기한다. “본 적 없는데, 본 적 없는 상대를/찾을 수 있을까?”(「보물찾기―줄다리기」) 하는 의구를 품고서도 “마음의 비호 아래 이동”하는 오은경의 시 속 ‘나’는, 쪽지에 적혀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일단 그것을 찾아내려 애쓰는 아이를 닮았다.
“나를 움직여주”는 “장치”(「친구의 슬픔」)인 마음은 “더는 걷지 못”할 정도로 쉽게 “흔들”리는 탓에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큰 “힘이”(「마지막 글자」) 들고, 이에 “뭔가를 찾고 있”는 동안 “어려운 일은 전부 마음 안에서 일어”(「보물찾기―숨바꼭질」)난다. 이토록 불안정하게 요동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보물찾기를 지속하는 일은 상대의 에너지와 긴장을 기민하게 살펴야 하는 줄다리기, 꼭꼭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대상을 찾아 헤매는 숨바꼭질, 전력을 쏟아 담박질해야 하는 달리기가 된다.
낯설게 또는 익명으로 서술되는 ‘너’를 “꼭 찾아야”(「보물찾기―줄다리기」)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보물찾기가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너’를 잡으려 뛰는 달리기로 이어질 때 문득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이 마음은 다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보물찾기―달리기」) 하는 의문이 생겨나고, 그제야 ‘나’는 시집 도처에 드러나 있는 괄호를 경유하며 생략해도 무방하지만 부러 꺼내어 보이고 싶은 이면, 마음 한구석을 열어젖혀 고백해버리고 싶은 진심 들을 돌이켜본다.
“우리가 다니는 골목은 비좁아서 한 사람씩 통과해야”(「출발과 시작」) 하고, ‘너’가 “앞장서 나가면/내가 따라가 쫓는”(「둘이 거리로 나와」) 위태로움 속에 있다. 그러나 이 절실한 공간의 공유로부터 나란하지 않은 ‘나’와 ‘너’ 또한 우리였음을, 즉 과거의 갈피마다 발생해온 “우리의 있었음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길 찾기」)다. ‘나’의 결여와 구멍을 안고 있는, 아주 잠시간의 성근 마주함.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보경의 말처럼 “이 빈 부분이야말로 사랑의 증거이며 ‘우리’의 증거이다”. “발자국에 발자국을 포개며” 서로의 자취를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