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가 주목하는 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풍경!
★전미비평가협회상 ★오 헨리 단편소설상 ★세계판타지문학상 수상 작가★
여기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가 있다. 남편은 저명한 화가이고 아내는 그의 뮤즈이자 모델인 두 사람은 아이 셋을 키우며 산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래전부터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단 한 번도 그 벽을 넘으려 하지 않았다. 사랑함으로 사람까지 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와 그의 믿음을 깰 용기도, 도망칠 용기도 내지 못해 거짓 일기를 쓰며 두 사람의 관계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여자. 소설 《그림자밟기》는 거짓과 진실, 절망과 희망이 반반씩 담긴 가짜 일기와 진짜 일기의 상호 폭로이자 대화이다. 전미 비평가협회상, 오 헨리 단편소설상을 수상하고 퓰리처상에 노미네이트된,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성작가 루이스 어드리크의 실패한 결혼 생활이 소설 전반에 고스란히 드러나 충격을 던진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의 문제. 당신은 나를 소유하려 해.
그리고 나의 실수. 나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어.
그림자밟기를 하던 밤, 끝내 닿을 수 없었던 우리의 깊은 어둠처럼.
남편 ‘길’이 찾아내기를 바라며 쓴 가짜 일기장을 캐비닛에 감춰두고, 진짜 일기를 쓰러 은행 금고로 향하는 아내 ‘아이린’의 모습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금고 옆에 마련된 조그만 사실(私室)에서 그녀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첫 문장을 쓴다. ‘지금 내겐 일기장이 두 권 있다. (중략) 아마 당신은 꽤 오랜 수색 끝에 내 빨간 일기장을 발견했을 거야. 내가 바람을 피우는지 알아내려고 줄곧 그걸 읽어왔을 테고. / 그리고 두 번째 일기장, 당신이 내 진짜 일기장이라고 부를 일기장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이 일기장이야.’ 사실, 아이린과 길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부부였고, 둘 사이에 이렇다할 문제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다만, 사랑은 소유되는 것이 아니었고, 마음 깊은 곳의 허무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진실뿐. 집착하는 남자와 그로부터 달아나기를 꿈꾸는 여자의 별 특별할 것도 없는 시작은 두 권의 일기장이 교차되면서 서로 속고 속이는 기괴한 전개로 이어진다. ‘레드 다이어리’ 속 아이린은 은밀히 남편을 속이고 바람을 피우는 척하지만, 은행 금고 속 ‘블루 노트북’의 아이린은 두려움과 자기 부정으로 괴로워한다. 두 개의 일기장을 급격히 오가는 과정은 심리 스릴러처럼 독자의 마음을 온통 빼앗고, 작은 반전이 숨어 있는 결말은 처연해서 아름답다.
“그날 이후 나는 두 권의 일기를 쓴다.”
자전적 소설로 현대 가족의 문제를 섬세하고 심도 있게 파헤친 작가적 용기!
《그림자밟기》는 루이스 어드리크가 열세 번째로 발표한 소설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핏줄을 물려받은 그녀는 자신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소재로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은 독특한 시와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러나 작가의 실패한 결혼생활의 면면이 이처럼 상세하게 담긴 작품은 소설 《그림자밟기》가 유일하다. 1981년, 어드리크는 다트머스 대학 시절 교수와 학생으로 만난 마이클 도리스와 결혼했다. 그들 또한 소설 속 ‘아이린’과 ‘길’처럼 모두가 부러워하는 커플이었고, 16년의 결혼생활 끝에 아이린과 길처럼 헤어지고 만다. 불안과 절망에 짓눌리는 어린 아내의 모습에는 어드리크 자신이 투영되어 있으며, 어드리크에게 집착하다 못해 알코올의존증에 빠지고 자살 기도까지 한 마이클 도리스는 물론 소설 속 남편 ‘길’의 원형이다. 작가는 훗날, 이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무척 두려웠으며 한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한편 고집스럽게 집필을 이어감으로써 자신의 이야기를 객관화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결혼과 가족이라는, 언뜻 견고해 보이는 사회적 테두리는 때로 아무리 밟아도 밟히지 않는 그림자처럼 연약하고 허무하다. 자신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매개로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의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든 작가의 진지한 용기에서 유럽 문학과 뚜렷이 구별되는 미국 문학만의 미덕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