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아이티, 보편사

수잔 벅모스
2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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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철학’과 ‘아이티 혁명’이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두 주제를 서로 연결하여 서구 근대성의 유산을 해체하고 ‘보편사’의 새로운 구상을 제시하는 책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수전 벅모스는 독일 비판철학과 프랑크푸르트 학파 전문가로, 지난 2004년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으로 이미 국내에 소개되었다. 벅모스는 이번 신간을 통해 그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문제, 즉 헤겔 철학과 최초의 노예 반란인 ‘아이티 혁명’의 관계를 추적하면서 식민지 노예제에 대한 서구 근대의 의도된 망각을 파헤친다. 헤겔은 분명 아이티 혁명에 대해 알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미네르바』의 정기 구독자였던 헤겔이 1791년에 일어난 생도맹그(아이티 혁명이 일어난 섬의 예전 이름)의 혁명에 대해 몰랐을 리는 없다. 벅모스에 따르면 헤겔은 애초에 상호인정의 주제를 공동체 내의 인륜적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했으나 『정신현상학』(1807)에 와서는 그 주제를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그리고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과 연관시킨다. 이보다 나중에 펴낸 『법철학』(1822)에는 노예의 해방이 좀더 분명하게 “인륜적 요구”(93쪽)로 등장하며, 『주관적 정신의 철학』에서는 아이티가 직접 거론되기도 한다. 헤겔과 아이티의 연관을 두고 벅모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헤겔이 노예 혁명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심지어 노예 혁명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구상에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벅모스는 헤겔이 ‘노예’에 대해 말할 때 루소를 비롯한 유럽 계몽주의자들처럼 그 말을 하나의 은유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고대와 근대에 실제로 존재하는 노예를 가리켜 사용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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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부|헤겔과 아이티 서문 헤겔과 아이티 2부|보편사 서문 보편사 도판 목록 참고문헌 옮긴이 해제_ 보편사의 새로운 구상 찾아보기

Description

헤겔은 아이티 노예 혁명에 왜 침묵했는가? 식민지 노예제에 대한 서구 근대의 의도된 망각! 탈식민주의를 넘어,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 새롭게 되살리는 ‘보편사’의 기획 “ 「헤겔과 아이티」는 추리소설처럼 쓴 글이다.” _ 수전 벅모스 【‘엑스쿨투라’ 총서에 관하여】 ‘엑스쿨투라’는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문학동네가 새롭게 선보이는 인문 총서다. ‘쿨투라Cultura’란 애당초 ‘갈아엎다’ ‘농사짓다’ 등을 뜻하는 라틴어로, 오늘날 다양한 함의를 지닌 ‘컬처culture’란 용어의 모태가 되는 말이다. 이 총서는 무거운 관념의 외투를 벗고 다른 사유가 가능한 세계로 홀가분하게 지적 여행을 감행하자는 요청에서 출발했다. 오늘날 무한정 외연이 커진 ‘문화’는 다시 질문되어야 한다. 무엇이 ‘문화’인가, ‘문화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의 이면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가. 미학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인간적인 것, 이 모두를 포괄하는 담론의 자리가 필요하다. 기존 학계에서 놓쳤던 낯선 주제, 다가올 날을 예비했던 과거의 명저, 첨예한 논점의 최신 담론까지 다양한 저작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발 디딘 땅을 갈아엎어 기름지게 만드는 것이 학문의 소임이라면, 이는 보석같이 잘 다듬어진 담론만으론 불가능하다. 문화의 텃밭‘에서(Ex)’ 캐낸 사유, 문화의 교차로에서 찾아낸 ‘미지의(X)’ 담론으로 대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기하학적 완결성과 엄정성을 넘어 꿈틀대는 생활세계로, 현대의 도취적이고 마비적인 외관을 넘어 측면의 가능성과 내부의 복잡성으로 파고들려 한다. 이를 위한 담론의 장이 ‘문학동네의 엑스쿨투라’이다. 【출판사 리뷰】 헤겔 철학과 아이티 혁명 이 책은 두 편의 논문 「헤겔과 아이티」와 「보편사」, 그리고 각각의 논문을 위해 새로 쓴 서문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의 화두를 이루는 세 항은 제목에서 보듯 ‘헤겔’, ‘아이티’, ‘보편사’이다. 우선 헤겔과 아이티 혁명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헤겔은 젊은 시절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목격했고, 1807년 자신의 주저主著 『정신현상학』을 발표했다.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논의를 전개하는 것도 바로 이 책에서다. 중앙아메리카 서인도제도에 위치한 아이티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1791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 속에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1804년 최초의 흑인 공화국으로 건국되었다. 헤겔은 아이티 혁명을 알고 있었을까? 이 혁명이 헤겔의 ‘주인과 노예 변증법’에 영향을 끼치진 않았을까? 만약 아이티 혁명을 알고 있었다면, 왜 그의 저작에서 이에 대한 분명한 언급을 찾기 어려울까? 더 나아가 이후의 헤겔 연구에서 누구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에 답하기 위해 벅모스는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써내려가듯, 헤겔의 저작과 편지, 그가 구독했던 신문과 잡지(특히 프랑스 혁명과 아이티의 역사적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었던 독일 월간지 『미네르바』), 헤겔에 관한 다양한 증언과 연구를 종횡무진하며 진실에 다가선다. 그렇게 해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명확하다. 헤겔은 아이티 혁명에 대해 알았고, 식민지 노예제의 실상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헤겔은 왜 침묵했을까?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헤겔과 아이티의 연관’에 대해 헤겔 이후 서구 학문세계가 보인 철저한 침묵이다. 수전 벅모스는 식민주의와 노예제에 대한 서구 근대의 침묵과 망각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동안 우리가 알아온 헤겔 철학은 ‘아이티’와의 연관이 체계적으로 억압된 헤겔이었으며, 이 억압의 이면에는 헤겔만이 아니라 서구 학문 전반에서 작용하는 어떤 배제의 원리와 그로 인한 맹목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헤겔의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은 이 학문적 맹목에, 더 나아가 근대적 사유 자체의 맹목에 도전하는 일이다. 헤겔의 침묵, 서구 근대 사상의 침묵 헤겔은 분명 아이티 혁명에 대해 알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미네르바』의 정기 구독자였던 헤겔이 1791년에 일어난 생도맹그(아이티 혁명이 일어난 섬의 예전 이름)의 혁명에 대해 몰랐을 리는 없다. 벅모스에 따르면 헤겔은 애초에 상호인정의 주제를 공동체 내의 인륜적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했으나 『정신현상학』(1807)에 와서는 그 주제를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그리고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건 투쟁과 연관시킨다. 이보다 나중에 펴낸 『법철학』(1822)에는 노예의 해방이 좀더 분명하게 “인륜적 요구”(93쪽)로 등장하며, 『주관적 정신의 철학』에서는 아이티가 직접 거론되기도 한다. 헤겔과 아이티의 연관을 두고 벅모스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헤겔이 노예 혁명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심지어 노예 혁명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구상에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는 것도 아니다. 벅모스는 헤겔이 ‘노예’에 대해 말할 때 루소를 비롯한 유럽 계몽주의자들처럼 그 말을 하나의 은유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고대와 근대에 실제로 존재하는 노예를 가리켜 사용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부각시킨다. “유럽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노예제를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만 아니면 힐난했던 그 방식”(204쪽)을 헤겔은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헤겔은 실제의 노예들과 그들의 혁명적 투쟁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의 지적 이력을 두고 볼 때 어쩌면 가장 정치적인 표현이라고 할 만한 곳에서 그는 아이티의 그 충격적인 사건을 『정신현상학』에서 전개한 주장의 요체로 이용했다. 카리브해 연안 지역 노예들이 자기 주인에 대항하여 실제로 성공시킨 혁명은 인정의 변증법적 논리가 세계사를 관통하는 주제, 곧 자유의 보편적 실현의 이야기로서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 이 역사적 순간에 이론과 현실은 수렴되었다. (90쪽) 수전 벅모스가 인종 문제와 관련하여 헤겔을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벅모스는 헤겔에게 아프리카인에 대한 편견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헤겔은 『주관적 정신의 철학』에서 아이티 혁명을 언급하고 있지만 바로 같은 대목에서 흑인과 흑인 문화에 대한 인종차별적 관점을 드러내며, 아이티에서 기독교 원리에 기초한 국가를 세웠다는 데서 흑인들의 교화 가능성을 찾기까지 한다. 여러 정황과 자료로 볼 때 헤겔은 노예 해방을 지지한 급진적 철학자였지만, 동시에 흑인 문화의 고유성과 흑인의 문화적 소양은 보지 못한 ‘문화적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했다. 아울러 벅모스는 ‘헤겔의 침묵’을 지적한다. 그가 아이티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1791년부터 건국 이전까지 진행된 혁명적 상황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침묵 뒤에 독일과 프랑스 정권을 의식한 헤겔의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벅모스가 ‘헤겔의 침묵’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비판하는 대상은 ‘헤겔과 아이티의 연관에 대한 침묵’이다. 헤겔 연구자들이 견지해온 이 침묵의 한 원인은 다름 아닌 분과학문의 뚜렷한 경계다. 분명하게 정립된 분과학문 방법론은 그에 순응하지 않는 주제와 사실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한다. 그런데 이 침묵의 더 깊은 뿌리는 계몽주의와 그 학문적 후예들이 유지해온, 실제의 노예와 아이티 자체에 대한 침묵에 있다. 벅모스는 계몽주의자들이 ‘노예’와 ‘노예제’를 이성에 반하는 것으로서 비난하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노예와 그들의 참상에서는 눈을 돌렸다고 비판한다. ‘노예제’는 억압이나 굴종의 상태에 대한 은유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헤겔 학계의 주류는 실제의 노예를 시야에서 배제한 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논의해왔으며, 지난 200년간 ‘헤겔과 아이티’라는 주제를 제기조차 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벅모스는 여기서 비난의 화살을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돌린다. 루카치, 마르쿠제, 코제브 같은 20세기 “헤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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